[여성시대] 한해를 마무리 하며
2024.12.30
![[여성시대] 한해를 마무리 하며 [여성시대] 한해를 마무리 하며](https://kordev.rfaweb.org/korean/weekly_program/woman_era/year-end-12262024094806.html/@@images/2b232c6f-ea56-41a4-8310-f3d3cf93f3f0.jpeg)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청취자님들에게 지난 2024년은 어떤 한해였나요? 시영이에게 참 의미 있는 한해인 것 같습니다. 연초에 남한 국영방송에서 설날특집으로 고향에 계시는 청취자님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렸는데 12월의 마지막도 고향에 계신 청취자님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으니까요.
또한, 올해는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위해 미국 출장도 두 번 다녀오고 일본 출장도 두 번 다녀오고 한국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2024년은 한해는 특별하게 자주 고향의 친구들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늘 마음 아픔과 그리움, 격분이 엇갈리지만 하나의 소원은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계신 청취자님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날이 꼭 오리라 믿으면서 올해도 너무 고생이 많으셨다고, 참 열심히 사셨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차례상을 설에 지내지만 우리 탈북민들은 고향의 풍습대로 12월 31일 차례상을 올리는데요. 시영이는 한해 동안 하늘나라에서 응원해주신 아버님께 차례상을 차릴 준비를 꼼꼼히 한답니다. 며칠 전 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올해는 차례상을 더 열심히 준비하자고요.
이종 4촌인 우리 형제는 저는 아버지의 차례상을, 동생은 엄마의 차례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의 집에서 차례를 올리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와 이모의 차례상을 동생 처지에서는 이모부와 어머니의 차례상을 차리는 셈이지요.
멀리 고향을 떠나 대한민국 서울에 살지만 우리는 늘 고향에 계신 가족들 친구들, 친인척들이 그립습니다. 배부르게, 따뜻하게, 이쁘게 또 멋지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미안함은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리움 역시 매일매일 더해갑니다.
12월 31일 오후 시간부터 저의 집은 북한이 고향인 여성들로 북적거리는 데요. 고향에서 먹었던 다양한 음식을 만들고 또 한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친구 언니들이 모여서 서로를 격려해주고 다음 해도 더 돈독하게 보내기 위해 파티를 벌인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이라면 어려운 일이지만 모든 게 풍요로운 이곳에선 음식솜씨만 있으면 즐거운 파티 상을 차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북한 양강도가 고향인 언니들이 주를 이루는 저희 모임에서 올해 음식준비는 북한에서 국숫집을 경영하셨던 언니가 맡았습니다. 언니는 올해 파티에서 북한 음식으로 준비한다고 하셨습니다.
북한식 꽈줄, 송편, 인조고기밥, 두부밥, 감자떡, 농마국수 아마도 며칠 전부터 과줄은 이미 만들어 상자에 넣어두셨고 송편과 감자떡도 미리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놓으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당일 아침 인조고기밥과 두부밥을 만드시고 농마 가루를 가지고 집에 오셔서 분 틀에 눌러 산국수를 먹인다고 하네요.
겨울 김장김치가 맛있게 된 언니는 갓김치에 무짠지와 배추김치를 가지고 오신다고요. 정말 기대되는 파티입니다. 또한, 우리 모임에서 올해는 좀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절대 비밀인데요. 저의 모임에 50살 넘으신 나이에 올해 석사 북한으로 말하면 준박사 자격을 취득하신 언니가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신 언니를 위해 우리 모임의 이름으로 상장과 상금을 준비했거든요. 이곳 대한민국은 북한과 달리 국가에서 주는 상장도 있지만 개인들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상장도 만들고 상금도 줄 수 있는 권리가 있거든요. 상장, 트로피, 상금 세가지를 준비하는데 상장내용이 너무 중요하잖아요.
너무 많은 글을 쓰고 싶었지만 북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연필보다는 호미를 더 많이 들고 살았던 언니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치마보다는 무릎이 나온 바지를 더 많이 입고 고생하신 언니의 일생을 쓰고 싶었습니다.
북한에서 학생으로 여성으로 하루도 온전히 살아오지 못한 탈북여성 이곳 대한민국에서 50이 넘은 나이에 학생으로도 여성으로도 당당하게 살았노라 이를 친구들이 너무 축하하고 앞으로 50년을 응원하노라 라고, 사랑한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써주었습니다.
트로피는 유리로 되어있는데 무궁화 꽃 모양을 닮았습니다. 유리 트로피에도 상장에 쓰인 글이 새겨져 있고요. 가장 중요한 게 자본주의에서 돈이잖아요. 우리 동생들과 언니의 친구들 즉 우리 모임 언니들이 상금을 준비했는데요. 청취자님들이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것 같지만 그래도 알려드릴께요.
상금의 액수는 바로 200만 원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2,000달러 정도입니다. 북한에서 러시아에 노동자로 파견되어 3년 이상을 일하면 $2,000달러를 겨우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 200만원이 그리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3년 이상을 벌어야 하는 큰돈도 아닙니다.
우리는 열심히 사신 언니에게 조금의 성의를 모았고 그 마음들이 쌓여 그리 크지도 않지만 작지도 않은 돈을 준비했습니다. 언니의 한 학기 등록금의 반 정도 되는 이 상금이 언니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다음 해 더 열심히 살아가실 언니를 응원하는 마음은 충분히 전달될 것 같아 기쁩니다.
상장이 전달되는 날까지 준비한 동생들이 비밀을 철저히 지켜야 하지만 우리 청취자님들에게는 솔직하게 말해드리고 싶어서 시영이가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모든 일상은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히 누려야 하는 초보적인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우리 탈북민들은 목숨을 걸고 이뤄냈습니다.
사과밭에 누워있어도 움직이지 않으면 사과가 입에 들어올 일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025년에도 한마음으로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이북지역인 우리 고향에도 사람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그래서 배고픔이 없고 추위가 없는, 노력한 것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라고요.
2023년보다 더 힘든 2024년을 보내신 청취자 여러분 2025년이 더 어려울지라도 힘내시고 또 아프지 마시고 꼭 살아남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