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연말, 달력
2023.12.26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한국은 지금 한파가 닥쳐와서 모두들 춥다고 난리들입니다. 내가 사는 경상남도 지방은 북한만큼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 지역은 배수관이 얼고 보일러가 터진다고 미리 방지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 추운 북한에서는 어떻게 살았던지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제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올 한해 동안 어떻게 살았나 생각을 해보니 크게 한 일도 없이 일년을 보낸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 무슨 일을 하고 보냈는지 생각해 봅니다.
해외도 세번 씩이나 다녀오고 영화를 찍는다고 분주히 돌아치기도 했고, 북한인권에 관한 증언을 한다고 영국의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에도 다녀왔으니 자그마한 성과는 있지 않았나 나름 위로를 해봅니다. 그럼에도 해마다 연말이 되면 벌써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나 하고 허무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나도 나이를 드는가봅니다.
특히 어제는 크리스마스였는데 징글벨 노래 소리도 안들리고 예전과 많이 달라진 풍경들 입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운영하는 단체에서 탈북민 자녀들 장학금 전달식도 했고, 송년회겸 식사도 하고 선물도 나눴는데 올해는 예산이 없어서 일년에 한번 하는 그런 행사마저도 안하고 넘어가려고 하니 모든게 내 불찰로 빚어진 것 같아서 위축되기도 합니다.
연말이 되어 은행에 일보러 갔더니 “달력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하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다행이 다른 단체에서 일하는 언니가 은행 달력을 가득 받아서 나한테 가져다 줍니다.
녹취: “달력이 필요하나? 번지는 달력도 있고, 책상 달력도 있고…”
한국에서는 은행 달력을 집에 걸면 돈이 모인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설마 은행 달력을 집에 걸면 진짜로 돈이 모이겠냐만은 사람들은 연말이면 은행 앞에 가서 줄을 선다고 합니다.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돈을 풍족하게 모아놓고 살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겠죠. 그리고 은행에서 달력을 주는 경우는 VIP라고 하는 주우대고객에게는 물어보지 않고 선물을 챙겨줍니다. 다음 해에도 돈거래를 잘하자는 감사를 전하는 것이죠. 그렇게 받은 달력을 집에 걸면 은행과의 잦은 왕래로 잘산다는 이미지를 가지게 해서인지는 몰라도 어쨌던 사람들의 심리는 은행에서 우대고객이라고 하면 “오~잘나가네”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어쨌던 올 한해도 가까이 사는 탈북민 언니로 인해 은행 달력을 가득 얻어 와서 인심을 후하게 쓰게 되었습니다. 달력을 여기저기 걸어놓고 보니 북한의 달력 생각이 납니다. 늘 김일성 부자의 만수무강을 빈다던가 아니면 죽은 김부자가 늘 인민들과 함께 한다는 글귀들로 가득했는데 북한주민들에게 참으로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김일성이 죽었을 때 그해 겨울에는 집에 창가에 성에가 끼었는데 그 성에가 은방울 꽃처럼 피어서 김일성에 대한 칭송으로 둔갑을 하고 또 하늘가에 김일성의 형상을 띤 구름이 생겨났다는 억측 등은 김일성이 하늘이 낸 인물이라고 무조건 믿고 따르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순진한 우리만 모르고 그것을 진짜로 믿었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긴 하지요.
한국의 달력은 이외로 여러 가지로 나옵니다. 국가적인 명절과 공휴일 그리고 간단하게 절기만 표시하는가 하면 나라를 위해 희생된 유공자들을 위한 날을 표시하기도 하고 어떤 달력은 농민의 날, 근로자의 날, 여성의 날, 아동의 날, 노인의 날 등 모든 날자들을 다 표시하기도 하고 어떤 달력은 그림이 초등학생이 그리는 그림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달력은 정부기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도 마음을 먹으면 자기가 일년동안 해왔던 일들을 기록을 해서 의뢰를 하면 사진을 박아서 달력을 만들어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해주는 곳을 기프트 회사라고들 하는데 이런데서는 행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이렇게저렇게 해달라고 하면 그대로 만들어줍니다.
다만 수량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로 달라지지만 많이 할수록 단가는 줄어듭니다. 하지만 개인이 딱 필요할 때에는 비싸더라도 한정수량으로 의뢰하는 수 밖에 없기도 하지요. 이렇게 만드는 곳에 부탁을 해서 만드는 달력도 있지만 능력에 따라 집에서 만들 수도 있답니다. 한국은 가정마다 컴퓨터와 복사기가 있어서 그림이나 서류를 출력해낼 수가 있는데 종이를 파는 상점에 가면 종이도 다양하고 예쁜 종이들이 많아서 달력에 사용할 종이로 구매해서 우리 집만의 추억을 담은 달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쩌고보면 달력을 만드는 것이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관련된 홍보물이라고 봐도 될 듯 합니다. 예전에는 민족고유의 전통으로 한복을 곱게 입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면 지금은 자신들의 개성을 살리고 자신들의 목소리와 자신들이 담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얼마 안남은 올해 나도 우리 집만의 달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불현듯 해봅니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과 기억에 남는 추억을 담아서 달력을 만들어 돌아오는 새해 나만의 그림을 그려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마음가짐을 담는 심정으로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나가야 하겠군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