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누렇게 무르익는 계절
2024.08.26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찬바람이 떨어지고 어느덧 8월의 마지막 주 입니다. 한국은 푸름을 자랑하던 논에 벌써 나락이 누렇게 여물어 갑니다. 그러면 집 문 앞에서 울어 대던 매미소리는 줄어들고 논두렁이며 하늘에는 잠자리가 가득하죠.
내가 즐기는 인터넷 사회관계망에는 가을이 다가오기 전에 바로 열리는 자두를 홍보하는 글이 올라왔네요. 한상자 주문해서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습니다.
어릴 때 한동네 살던 혜숙이가 어대진에 친척이 있어 이 철이면 가져다 먹던 그 추리가 한국에서는 자두라고 불립니다. 그때 친구가 혼자 먹던 자두가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지금도 자두 철이면 그때 그 추리생각을 하면서 꼭 사먹습니다.
올해는 고향 친구들도 좋아할 것 같아서 주문을 해줬더니 너무 좋아들 합니다. 크기도 엔간한 복숭아만 하면서 새콤달콤한 것이 시중에서 사먹으려면 비싸기도 하고 이 맛을 볼 수가 없습니다.
가게에 가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직접 농사를 짓는 분들한테 주문을 하면 해뜨기 전에 과일나무에서 따서 낮 시간에 바로 배달을 해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집에 앉아서 농장에서 금방 딴 과일을 맛볼 수가 있지요.
인터넷에는 각 지역에서 파는 특산품이 올라오는데 가을이 시작되는 철에 가장 욕심이 나는 것은 김장철에 꼭 있어야 하는 고추입니다. 한국에서 재배해 바로 햇볕에 말리는 고추를 태양초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린 고추는 건조기에 넣어 말린 고추보다 색깔도 좋고 맛도 있을뿐더러 가격도 비쌉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무엇이든 말려주는 이 계절에 밭에서 막 딴 고추를 싼가격에 사서 말리려 하니 언니들이 “아서라 한국 고추는 북한 고추보다 살이 두꺼워서 집에서 말리는 거 어렵다” 라고 합니다.
북한에서야 고추 농사를 크게 짓지도 않지만 농사를 지어도 지금 한국에서 고추를 먹는 것처럼 빨갛게 쓰지 않다보니 적은 양의 고추를 통으로던 썰어서든 있기만 하면 어떻게 말려서 먹던 다 먹는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추를 수십킬로를 사서 집에서 말린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중국에서 살림을 살 때 식구가 많아서 고추를 백여킬로 사놨는데 마침 비가 와서 집구들에 널었는데 고추 살이 두꺼워서 안이 새카맣게 썩어났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해 썩은 고추를 골라내는 것만도 얼마나 일이었던지 지금 그때 생각을 하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딱히 주부가 되어 집에 있으면서 살림살이라도 아껴야지 싶은 생각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은 가까이 사는 탈북민 언니가 가까운 시골에 농사를 지어놓고 나보고 고추며 오이, 가지를 농사지었으니 보러 가자고 합니다.
새벽 일찌감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언니랑 함께 밭으로 갔지요. 미처 손을 보지 못한 밭에는 오이가 주렁주렁 열려있고 가지도 어서 따가라는 듯이 보여주는데 여기저기 손을 보지 못해서 잡풀들이 무성합니다. 그 밭을 보느라니 언니하고 나는 에구, 북한이라면 이 땅이 이렇게 풀이 무성할 사이가 어딧겠냐 합니다.
밭주인인 언니는 이 작물들이 다 되면 밭을 갈아엎고 무하고 배추를 심는다고 합니다. 그래서는 또 지난해처럼 농사도 안짓고 탱자탱자 놀고 있는 우리한테 수십 포기씩 나눠주지요. 미안해서 우리가 도우려 해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남편과 함께 돼지 똥도 주고 손으로 벌레를 잡아가면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데 게으른 우리가 오면 비료 주고 약을 친다고 가꾸는 계절에는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한국에 와서 편하게 살 수 있고 또 돈을 조금만 주면 시장에서 사먹을 수 있는데도 직접 농사를 지어 주변에 나누는 지인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나누고 베푸는 마음에 참으로 존경이 갑니다.
그렇게 언니들이 농사를 지어서 주면 나는 또 그것을 가져다 가까운 이웃들과 나눔을 합니다. 어떤 언니는 아예 반찬을 해놔야 가져가는 언니도 있습니다. 한국은 대개 자녀들은 회사로, 기숙사로 나가고 부부 둘만 사는 집이 많은 터라 집에서 직접 반찬을 하기도 이제는 싫은 가봅니다. 그래서 한번씩 베짱이 같은 언니들 보고 그 어렵고 힘든 북한에서는 어찌 살았냐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때도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서로 나누는 정도 있고 또 북한과 달리 먼곳에서도 택배라는 좋은 배달 서비스를 통해서 친한 사람들끼리 정을 나누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국에는 돈이 오고가야 정이 있다는 말도 있답니다. 그게 꼭 돈이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서로 나누는 문화를 정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겠죠.
사람이 살아가는 계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데 북한에서 힘들게 살았던 겨울이 봄이 지나고 여름을 거쳐 어느덧 이 계절과 닮은 가을의 계절을 맞는 듯싶습니다.
북한에서 이불을 쓰고 들었던 남조선 목소리가 들리는 방송에 끌려 중국에서도 주파수를 돌려가면서 찾아듣던 자유아시아방송의 아나운서 목소리에 매료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이라는 단어가 가슴 깊숙이 꽂혀서 늘 찾게 되던 방송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그때 나의 심정으로 듣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성시대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했습니다. 저는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훗날 더 좋은 모습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