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즐거운 여름
2024.08.19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드디어 길고 긴 여름 휴가 기간이 끝났습니다. 보통은 경치 좋은 곳으로 가족여행을 갔지만 올해는 집으로 찾아오는 친구와 동생들을 맞아 대접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했습니다. 멀리서 온 지인들과 물놀이장도 가고, 계곡도 가고 노래방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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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장에서는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주는데 사람들은 그 파도에 몸을 맡기고 또 물을 타고 내려오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길고 긴 줄을 기다려서는 내려오곤 합니다. 햇볕이 뜨거우니 우리는 커다란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어준 평상 하나를 대여 받아서 그 밑에서 얼음물을 놓고 눈으로만 즐겼습니다. 혹시나 해서 실내로 들어갔더니 실내에서도 파도를 만들어주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공기를 넣은 물놀이 용품을 안은 사람들이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계곡이 참 많은데 내가 사는 곳에도 산세 좋은 곳에서 시작되어 길고 긴 도심을 질러가는 계곡이 있어서 물놀이를 하기에는 딱인 곳이 있습니다. 이런 계곡 옆에는 식당들이 있는데 보통 몸보신을 하기 좋은 음식들을 팝니다. 그래서 지역 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도 찾아옵니다.
우리는 토종닭과 각종 조개류며 동충하초와 버섯 그리고 문어와 낙지가 들어간 해물탕과 오리불고기를 예약했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계곡에 내려가서 물놀이를 하고 시간이 되어서 밥 먹으러 올라왔지요. 살아있는 낙지를 보고 아이들은 생으로 먹고 싶다고 난리들을 해서 가위로 살아있는 낙지 다리를 잘라서 주었더니 너도나도 먹어보면서 맛있다고 호들갑입니다.
상황 녹취: 또 줘, 또 줘….
저녁에는 노래방으로 갔지요. 우리 탈북민들은 노래를 참 많이도 좋아하는 듯합니다. 불볕더위 낮 시간에 물놀이를 그리도 했건만 노래방은 꼭 가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젊은 동생들과는 다르게 나는 이젠 긴 시간을 놀기에는 체력이 딸리지만 그래도 어쩌다 만나는 동생과 친구들이기에 지친 몸을 끌고 노래방으로 갔습니다.
시간이 흐름과 함께 모두 흥이 나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데 어느 동생이 언젠가 한국의 노래방들에서 모두 사라진 북한노래를 찾아서 예약을 했네요. 노래방에서 듣는 북한 노래가 모두 얼마나 반가운지 거기다가 북한출신인 우리가 부르는 것이 아니고 한국 출신인 형부가 휘파람 노래를 부릅니다.
녹취: 노래와 왁자지껄 떠드는 상황소리
마지막 후렴구인 “휘휘 호호 휘파람”까지 불러서 우리는 배꼽을 잡고 뒹굴면서 웃습니다. 연이어 나오는 “반갑습니다.”, “심장에 남는 사람” 노래들이 나오니 서로 마이크를 잡으려합니다.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우리 모습은 우리가 북한에 충성하던 그 시절이 아니라 북한에서 살아온 청춘에 대한 기억 때문이겠죠. 누구나 살아온 시간이 소중하고 그립듯이 탈북민 우리도 북한에서 살아온 그 생활이 가끔은 그립습니다. 철없던 그 시절에 부모님 속을 태우고 또 가슴 깊숙이 숨겨왔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날 때마다 밤을 새가면서 하고 또 합니다.
더욱이 이번에는 한국에 첫 발을 함께 디딘 동생도 왔었고 또 북한에서 살 때 한 학교 선후배사이였기에 더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에서 살다보니 이젠 북한에서의 추억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거리, 남편과 시댁에 대한 고민거리도 서로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요.
더욱이 아이들이 자라는 이야기는 늘 우리에겐 공통 관심사입니다. 친구와 동생들은 모두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지라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기에 손녀딸을 키우는 나의 고민과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많지요. 더욱이 손녀딸보다는 한두살 정도 어리기에 내 손녀딸은 늘 언니, 누나로서 동생들을 챙겨야 합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 나도 한번씩 욕심이 나지요. 나도 한국에 와서 아이 욕심을 냈더라면 지금은 손녀딸이 아니라 손녀딸 또래의 내 아이를 키울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후회를 해 볼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중국에서 아들을 낳아서 힘들게 키웠는데 지금 한국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부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살았더라면 한번도 가볼 수 없는 평양의 문수거리 물놀이장을 한국에서 한번씩 텔레비전 보도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고 증명서도 없고, 차표도 줄을 서서 떼지 않아도 내 돈을 주고 내 시간을 들여서 호화 물놀이장도 가고 북한이라면 중앙당 간부들이 가는 초대소에만 있는 줄 알았던 계곡에서 몸보신을 할 수 있는 음식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주문을 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돈이 들지만 열심히 일한 자 먹을 수 있고, 열심히 일한 자 놀러 떠날 수 있는 자본주의 경제시장의 원리에 따라 잘먹고, 잘놀았습니다. 북한 말에 말 죽은 집 소금이 더 든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동생들과 친구들이 골고루 부담을 해주어서 큰 경제적인 부담을 가지지 않고 즐겁게 잘 지냈던 행복한 휴가기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