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쌀타령

김태희-탈북자
2024.06.10
[여성시대] 쌀타령 북한 탁아소에서 공급되는 강냉이 밥으로 열악한 북한의 식량사정을 보여준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제 가까이 사는 탈북민 언니가 집에 놀러왔습니다. 한국은 보통 친구집에 놀러가거나 하는 것을 잘 하지 않지만 탈북민들은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아마도 북한에서 살 때 이웃사이에 허물없이 살던 시간들이 몸에 배었나봅니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특별히 직장에서 일을 하지 않고 편한 시간대로 일하는 편이다보니 집에 사람이 찾아오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와서는 그냥 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음식이 맛있다고 아예 죽치고 앉아서 밥까지 먹고 갑니다.

 

쌀을 씻어서 밥을 해먹으면서 햅쌀이 아니고 지난해 묵은쌀이라 밥맛이 없다고 했더니 언니가 나를 타박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에서 남의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눈치 보던 이야기, 배급이나 분배를 타던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쌀을 받아오면 돌이 가득하고 쌀 함박에 일어서 밥을 해도 가벼운 돌은 쌀을 따라 내려와서 밥에서 돌이 와드득 씹히곤 했지요. 가끔가다 디젤유가 흘러서 밥에서 기름 냄새가 나면 밥맛이 확 떨어지곤 했지만 미공급시기에는 그런 것도 없어서 죽도 겨우 먹어야 했던 지난날.

 

지금 한국은 쌀을 일어 먹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논밭에서 바로 기계로 올라가서 알을 털어서 커다란 마대에 담아서 쌀 창고로 갑니다. 그리고 쌀알이 다 털린 볏단은 바로 하얀 비닐포장지에 쌓여서 말이나 소 사료로 팔립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논밭에 커다란 퉁구리로 하얀 것들이 서있으니 신기해서 물었는데 볏단이라고 해서 놀랐지요.

 

북한이라면 낫으로 벼를 눕혀서 말린 후에 묶어서 탈곡장으로 실어가서 탈곡기로 쌀을 털어야 하는 공정들이 얼마나 많았게요. 하긴 한국도 이렇게 쌀을 논에서 바로 털어서 정미까지 해서 우리 밥상에 오르게 된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닙니다.

 

한국이 지금 쌀이 가득하고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것이 새마을 운동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확이 많이 나는 종자로 작물개량도 하였다고 하지요. 물론 북한도 알곡생산량을 늘인다고 애를 많이 썼지만 북한은 결국 실패를 하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내가 살던 북한은 지금이 제일 식량이 없을 시기인데 한국에 사는 우리는 쌀 타령이나 하고 있군요. 북한의 이 시기에는 싹이튼 도토리며 산나물을 뜯어먹어야 하는 시기이죠. 북한에서의 6~7월은 늘 잔인한 계절이었습니다. 산나물도 이제는 쉬어서 나물로 먹기도 버거워지고 느릅나무 껍질에 강냉이 겨 가루를 섞어서 떡을 하면 속이 니글거리고, 소나무껍질로 떡을 해먹으면 휘발유 냄새가 나고 또 이 계절에는 소나무에 올라서 송화분을 채취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지금 나는 쌀이 맛없다고 쌀 타령이나 하고 있군요. 지난해 생산된 쌀이더라도 가장 가까운 날짜에 도정을 했으면 밥이 맛있는데 이 쌀은 몇 년 전에 도정을 했는지 색깔도 거멓고 밥을 해놓으면 푸슬푸슬합니다. 그래서 기장과 좁쌀, 수수쌀이며 보리쌀을 섞어서 불렸다가 해먹으면 잡곡밥인줄 알고 그나마 먹어지는군요.

 

이 쌀을 이렇게 먹는다고 했더니 언니가 “야, 북한에서는 햅쌀은 밥해 놓으면 양이 줄어든다고 장마당에 가서도 햅쌀보다는 묵은 쌀을 사왔지 않냐?이럽니다. 그랬죠, 햅쌀을 사서 밥을 하면 수분 때문에 양이 확 줄어서 되도록 묵은 쌀을 불려서 먹으려 했고, 수분이 적은 것을 사기에 바빴죠

 

어떤 사람들은 흰쌀도 탄수화물이 많다고 잡곡을 섞어서 먹습니다. 그리고 도정도 몇 벌 도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냐면요. 쌀을 정미를 할 때 한벌 한벌 많이 벗기면 쌀눈도 떨어지고 껍질에 들어있는 영양분이 다 나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이 도정한 햐얀 쌀보다는 덜 도정한 누르끄레한 쌀을 선호한다는 말이죠. 아예 현미밥으로 해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집은 현미는 좋아하지 않아서 좁쌀이나 기장쌀을 사서 섞는데 한번씩 냉동했던 콩이며 강냉이 알을 넣어 먹기도 합니다. 우리처럼 하루 세끼 밥을 먹는 사람을 우스개로 탄수화물 중독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북에서는 없어서 못 먹었던 쌀밥이 여기서 살이 찐다고 안 먹기에는 너무 억울하기도 한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밥을 반공기도 많다고 안 먹던 언니가 우리 집 가까이로 이사를 와서는 자주 밥을 먹을 기회가 되었는데 이제는 밥 한공기를 주면 다 먹습니다. 북한에서는 곡상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렇게 밥을 먹으면 한국에서는 머슴밥이라고 하더군요.

 

태국이민국 수용소에서부터 함께 온 언니는 그 안에서 조차 둘이서 밥을 많이 먹어서 소문이 나기도 했답니다. 그때는 동남아에서 나오는 안남미 쌀이어서 그리 많이 먹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한국 쌀은 영양분도 가득하고 또 밥이 아니어도 챙겨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거기에 집에서 밥을 해먹기 싫으면 음식점에 배달을 시켜서 먹을 수도 있지요. 중국음식인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 등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고 족발부터 찜까지 다양한 요리들을 이젠 집에서 배달을 시켜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장 선호하는 것은 식당음식은 가끔씩 먹고 집밥을 먹는 것이랍니다. 계절이 아니어도 늘 나오는 신선한 야채를 가지고 반찬을 만들어서 오늘 점심도 언니랑 함께 곡상으로 머슴밥을 먹었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에디터 이진서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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