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시골 ‘촌닭’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4.05.27
[여성시대] 시골 ‘촌닭’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지난 1월 7일 황해북도 황주군의 광천닭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나에게는 촌닭이라는 웃기는 별명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일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분들이 나이 어린 나에게 귀엽다고 붙여준 별명이랍니다. 원래 촌닭은 그냥 시골에서 사는 닭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겠지만 한국에서의 또 다른 의미로는 닭장에 넣어서 키우는 것이 아니고 자연에 그대로 풀어서 키우는 말 그대로 사료가 아닌 자연에서 나는 풀을 먹고, 벌레를 잡아먹은 닭이라는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시골길을 지나다보면 “촌닭 팝니다.”라고 쓴 팻말을 한번씩 보게 되는데 과수원같은 곳에서 닭을 키워서 판매를 하는 것입니다. 상점이나 시장에서 파는 양계 닭 같은 경우는 미국돈으로 환산을 하면 10달러정도라면 촌닭은 세배정도나 더 비싸게 팝니다.  

 

한국은 동물을 키우는 산업이 발달해서 닭을 키우는 양계장도 자동화 되어 있고 빨리 클 수 있도록 영양분과 성장에 좋은 약을 함께 사료에 추가해서 먹입니다. 그리고 4개월 정도 큰 닭들은 가공이 되어 판매가 됩니다.

 

닭알도 마찬가지지요. 알을 잘 낳고 껍질이 두꺼워지는 영양분으로 먹여 키워서 전문 알만 낳는 닭이 있습니다. 계란을 사다보면 알에 난각번호라는 것을 매기는데 날짜와 생산자 고유번호 그리고 사육환경 번호를 매깁니다. 제일 좋은 번호는 당연지사 1번이지요. 1번은 촌닭처럼 자연에 풀어놓고 키운 닭이 낳은 알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이런 알은 비싸서 일반 사람들이 사먹기엔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북한에서 계란 한알도 제대로 못먹던 것에 비하면 우리 냉장고에는 늘 특란이 가득합니다. 계란을 가지고 삶아도 먹고 부쳐도 먹고 지단을 해서 먹고, 계란은 완전 식품이어서 하루 한알을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해서 평소에 즐겨 먹습니다. 이렇게 귀한 촌닭과 촌닭이 낳은 알을 탈북민 언니가 자기 남편이 키운다고 가져왔네요.

 

언젠가 만났을 때 놀러오면 닭 잡아주고 고기를 안먹는 나에게 항생제를 먹이지 않은 방사알을 맛보여준다고 한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그예 가져와서 주변에 친한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언니들 덕에 닭장이 아닌 자연에 풀어놓고 키운 닭이 낳은 알을 삶아 먹으니 비린 냄새 하나 없고 고소한 것이 정말로 맛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닭이 컸다고 두 마리나 잡아서 가져왔네요. 주변 사람들은 한 마리씩 주는데 우리 집은 식구가 많다고 두 마리나 줍니다. 이 닭은 거제도 해풍이 가득한 자연에서 풀어서 키운 닭이라 가게에서 파는 닭보다 근육이 엄청나게 질깁니다.

 

찬물에 불려서 피를 빼고 감자와 당근을 아기주먹만큼씩 하게 썰어서 파를 볶다가 고기와 준비한 재료들을 넣어서 고추장을 풀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서 푹 끓여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낸 요리 이름을 닭도리탕이라고 합니다. 빨간빛이 어우러져 나는 닭도리탕은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른도 좋아합니다.

 

그렇게 맛있게 먹으면서 시골에서 살면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또 이렇게 농사를 지어서 늘 아낌없이 나눠먹는 마음이 고마워서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고 했답니다. 언니들과 전화통화를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여기는 북한도 아닌데 너무 내것만 내것이라 하지 말고 나눠먹을 수 있는 만큼은 나눠 먹어야지 그걸 내다 판다고 부자가 되냐?” 이런 말입니다. 부자는 아니어도 이렇게 나눠먹으면 마음의 부자가 되는 것은 맞지요.

 

북한에서는 통강냉이 한킬로에 계란 한알을 맞바꾸었네요. 그런 귀한 계란을 물에 풀어서 밥솥에서 쪄내서 수술을 한 아버지께 대접해 드렸지요. 기울어져가는 살림에도 영양보충을 해야 하는 아버지이기에 하루에 한알씩 대접하던 그 계란이 지금은 우리 집 냉장고에 차고 넘치고 친구들 사이에도 귀한 것은 나눠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공급이 되어버리자 결혼식에 살아있는 닭을 빌려서 술을 먹여서 재워서 세워놓던 그런 웃지도 울지도 못할 결혼식 그렇게 결혼식 상에 조차 올려놓기 힘들던 닭고기가 한국에서는 가게에서 그냥 쉽게 살 수 있는 일반 가공육인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닭을 키우는 것도 밖에서 키우면 도둑을 맞혀서 부엌에서 돼지나 토끼와 함께 키우는 닭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밖에 풀어놓고 키워 비싸게 팔리는 그런 닭을 건강을 위해 사먹으려고 합니다.

 

중국에서 살 때에는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계란을 사먹기엔 벅차서 닭을 백여마리 키워서 볏이 올라올 시점부터 아이의 영양보충을 위해 한마리 한마리 잡아서 먹이다가 큰 닭이 되어서 알을 낳기 시작을 하면 계란을 주워오는 재미로 닭을 키웠지요.

 

겨우내 알을 낳아주는 닭들을 다음해 봄이 되면 시골 장터에 가져가서 팔았어요. 전기세며 수도세 그리고 각종 모종을 사기 위해 닭을 자전거에 거꾸로 달아 매던가 마대자루에 넣어서 가지고 가면 닭 무게를 들어보고 흥정해서 판매를 하곤 했지요.

 

그동안 내가 살아가던 모든 것들이 지금 한국에서는 토박이라는 의미에서 원조라고 불리지만 그때에는 그것이 좋은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살아가는 삶이 풍족해지니 그때 그 생활이 떠오르고 가끔은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도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받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행복과 즐거움으로 기억될 겁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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