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남북민 함께한 방송녹화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4.05.20
[여성시대] 남북민 함께한 방송녹화 서울 소재 이북5도위원회 청사.
/이북5도위원회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찌하다보니 오늘은 가까이 사는 탈북민 언니들과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진행하는 녹화장엘 다녀왔습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인데 병원 측에서 텔레비젼으로 남과 북의 차이와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방송을 해보자고 제안을 해서 승낙한 것인데 오늘이 그 첫 녹화 날이었습니다. 두개 조로 편성이 되었는데 우리는 늘 내차로 함께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을 묶어서 한 조가 되어서 방송 녹화를 하게 되었지요.

 

한국은 통일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령, 개성공단이 지금처럼 완전히 단절되기 전에는 그곳에 들어가서 공장을 차리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 우리 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의료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한국에는 탈북민들과 함께 언제 있을 통일을 대비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반도가 갈라지면서 헤어진 실향민 세대로 만들어진 이북 5도 위원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곳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운영이 되지만 우리가 모이는 ‘통일이사회’라는 단체는 오로지 탈북민 우리의 의지와 재정 그리고 통일을 준비하는 의료진들의 후원과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방송 녹화를 위해 미리 대본도 읽어보고 어떤 대답을 해야만 북한을 가장 잘 알려줄 수 있을 지도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언니들과 문자 메세지로 분주히 연락을 주고 받았네요. 녹화장에 입고 갈 옷이며 화장 그리고 머리를 손질하는 것까지 어느것 하나 익숙한 것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중에서 그나마 여러번 방송에 출연했던 나는 언니들에게 괜히 아는척 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를 합니다. 언니들은 전화로 자기들 입을 옷을 사진 찍어서 보내지만 방송은 화려함이라고 생각하는 내 눈에 들리는 없습니다.

 

시간 맞춰서 도착한 언니들 얼굴이 빛이 나고 도드라지게 분도 발라주고 음영도 만들어주면서 무대화장을 해주는 것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진한 화장을 하지 않던 언니들에게는 이런 방송용 화장이 불편한 일이기도 하지요. 티격태격 준비를 마치고 시간 안에 녹화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촬영을 위해 들어간 곳에서 나는 때아닌 트집을 잡고 말았네요. 탈북민 우리에게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명찰을 달아줍니다. 십여 년이 넘게 우리는 북한이탈주민이 아니고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 입니다라고 외쳤던 나에게 북한이탈주민란 호칭은 듣기에 거슬렸습니다. 진행을 맡은 분들에게 불만을 이야기 하고 다음 녹화 때부터는 명찰을 탈북민으로 바꾼다는 조건하에 퉁퉁부은 얼굴로 녹화를 했습니다.

 

A-언니, 지난 주말에 뭘 했어요?

B-송아지동무랑 밥조개 캐러 갔지,

A-맛있었겠다. 된장 풀어서 국끓여 먹으면 맛있는데...

 

오늘의 주제는 4월과 5월을 맞이해 남북한의 서로 다른 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내가 느꼈던 북한의 봄은 무엇이었을까? 아련한 소녀적의 추억이, 그리고 젊은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고 또 슬픔이 가득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느끼는 이 계절을 우리가 과연 남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을 할 수 있을까? 어깨가 무거워지고 고민이 몰려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에게 북한에서의 봄은 아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첫 사랑도 있고, 능수버들도 있었지만 나보다 열살이나 더 많은 언니들은 사랑하는 자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배고픔에 잃었던 아픈 기억으로 울먹이게 만드는 계절이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에서의 마지막 봄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엄마가 돈벌어서 돌아올게 라는 말한마디로 영원한 생이별이 된 봄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달콤살벌로 시작된 남북한의 이야기 속에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탈북민의 아픔과 또 가볼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탈북민의 애틋한 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탈북민의 정착을 바라보면서 남한 사람들에게는 가볼 수 없는 북한과의 통일을 준비하는데 주춧돌이 되겠죠.

 

한시간여가 넘는 녹화를 마치면서 나는 북한 체제, 북한의 권력구도가 아닌 오로지 북한 주민의 생활 이야기로 공감대를 만들어야 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사랑을 주고 받듯이 남과 북 우리도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시작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죠. 일방통행이 아닌 우리가 주고받는 그런 공감을 말이죠.

 

녹화를 마치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 시끄럽습니다. 처음 녹화를 해본 언니가 책을 읽듯이 숨도 안쉬고 줄줄 내리 읽던 이야기를 해서 차안이 떠나가게 웃고, 사랑하는 자식을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언니가 울먹거리던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우리끼리는 그런 눈물 나는 이야기에도 웃고 떠듭니다. 아마도 그래서 고향지기가 좋은가 봅니다.

 

북한에서 살았던 곳은 달라도 지구를 한바퀴 돌고 돌아서 한국 땅에서 만난 우리 고향지기들은 아픔도, 슬픔도 그리고 희망도 미래도 함께 나누고 공감을 합니다. 그리고 남과 북이 함께 살아가는 달콤살벌한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됩니다.

 

에디터 이진서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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