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정전되면 큰일나요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4.05.13
[여성시대] 정전되면 큰일나요 지난 2015년 5월 평양시내 야경. 시내 대부분 어둠 속에 잠긴 가운데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만 불빛에 빛나고 있다.
/AP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남편이 회사를 쉬는 날이어서 봄날이 화창한데 가까운 곳으로 다녀오자고 해서 인근에 경치 좋은 곳을 다녀왔지요. 돌아오는 길에 풍경도 좋고 맛도 좋은 찻집에서 대추차를 한잔씩 마시고 오다가 고기만 전문으로 파는 고기백화점에 들려서 저녁에 먹을 삼겹살을 사가지고 왔네요.

 

좋은 곳에 가서 쌓인 걱정거리 모두 내려놓고 집에 와서 돼지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약한 불로 살짝 볶아서 그 위에 김치를 올려서 함께 볶다가 파와 매운 고추 그리고 마늘로 마무리해서 내놓으면 우리집 식구는 밥 한공기를 뚝딱하고 먹어 치웁니다. 특히 김치를 비롯한 배추 시래기를 좋아하는 손녀딸은 고기보다는 밥 한 숟가락에 시래기를 가져다가 얹어서 볼이 미어지게 먹습니다. 늘 여자애 답게 행동해라고 잔소리를 하건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가족이 푸짐하게 저녁식사를 하는데 집 벽에 붙어있는 집 벽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 방송소리가 나옵니다.

 

녹취: 우리 아파트 전기실 차단기 교체공사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실시합니다.

 

한국은 아파트마다 관리사무소가 있고 또 노인정이 딸려 있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경비실에서는 외부인이 불법으로 차를 세웠거나 아파트 주민의 차라고 앞유리에 허가증 붙어있지 않는 차를 발견하면 주차위반이라고 종이 딱지를 붙입니다.

 

그리고 건물 승강기에 있는 보안 카메라는 경비실에서 볼 수가 있는데 여기에서 아파트의 규칙을 어긴다든가 아니면 도둑이나 또 다른 나쁜일이 생겼을 경우에는 녹화가 된 보안 카메라를 통해 찾아낼 수도 있지요. 그 일을 하는 경비원들도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라 모두 관리사무소에서 관리를 합니다.

 

오늘 울린 방송도 관리사무소에서 하는 방송인데 내일 아파트 차단기를 교체한다고 합니다.

차단기 교체를 하면 약 4시간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시간이면 아파트에 전기가 전면 중단이 됩니다.

 

자동승강기를 타야만 오르내릴 수 있는 고층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괜히 걱정이 앞섭니다. 전기가 끊기기 전에 밖에서 해야 할일이 있으면 나갔다가 전기가 들어온 다음에 들어와야 계단을 걸어올라오는 수고를 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집에 있어도 전기가 없으니 텔레비전도 못 보고 냉장도도 다 멈춥니다.

그래서 전기가 끊겼을 때에는 냉장고 문을 열수도 없고, 밥도 못해먹고 전기로 쓰는 모든 가전제품은 사용할 수가 없답니다. 어쩌면 전기가 없으면 생활 자체가 안되는 것이지요.

 

가장 큰 걱정은 물고기를 키우는 어항입니다. 전기로 여과기가 작동하고 산소기포도 생기고 또 물 온도도 보장해주는데 4시간이 사람에게는 짧은 시간이어도 물고기에게는 굉장히 길게 느껴져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고 보니 강아지도 걱정입니다. 강아지 물도 전기 펌프식으로 해서 여과를 시켜서 먹는데 그동안은 물도 못 먹고 꼼짝 못하겠네요.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내일 우리는 일찍 집을 나가면서 집에 동물들이 안전하게 4시간을 보낼 준비를 해놓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 살았던 생각이 났습니다. 늘 남편에게 북한에서 전기가 귀해서 등잔불에 책을 읽었다는 말은 했지만 정작 남한 사람들은 우리가 북한에서 전기사정으로 인해서 불편하게 살았던 이야기를 하면 아주 옛날 이야기 인줄로 압니다.

 

특히 손녀딸 경우는 전기밥솥에 밥을 해먹는 것이 아니고 부뚜막에서 밥을 지어먹는다고 하면 못믿겠다는 표정을 하면서 놀랍니다. 그리고 냉장고가 없어서 밥이 쉬어도 물에 씻어 먹거나 가루를 넣어서 떡을 해먹는다면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걸 먹냐고, 배 아파서 어떻게 사냐고 하지요.

 

사실은 밥이 쉬어서 가루를 섞어서 소다를 넣고 빵을 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그리고 빵도 사실은 효모를 넣어서 쉬워서 해먹는다는 것을 알리가 없는 한국아이들에게 변한 밥을 가지고 다른 음식을 해서 먹는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볼 일입니다. 그렇게라도 빵을 해먹을 수가 있다면 고급진 생활인데 말이죠.

 

그리고 북한의 아파트는 우리처럼 고층건물이라면 물도 길어 먹어야 하고, 석탄이며 땔나무를 사람이 직접 날라야 하는데 한국은 자동승강기가 한번 멈춰서 걸어야 할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아우성입니다. 특히 장을 보고 짐을 가득 가지고 왔는데 승강기 수리를 한다고 막아 놓으면 주민들 원성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이처럼 며칠전부터 안내 방송을 하고 또 주민 벽보란에 공지를 써서 붙여놓습니다.

 

무엇이던지 주민들 생활이 편하게 그리고 주민들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게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최선을 다합니다. 왜냐하면 아파트 관리소장을 비롯한 관리일꾼들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는 비용으로 급여를 받기 때문이지요. 일한 만큼 받아가고, 받은 만큼 일하고 준 것만큼 요구하는 것이 자유시장 경제체제입니다.

 

하루 4시간의 전기에 감사하고 정미소에서 온 밤을 쌀자루를 지키면서 앉아있던 내가, 밤에 자다가 불이 오면 “와, 불이 왔다.” 하고 반가워 소리치던 내가 몇 년만에 한 번씩 그것도 4시간밖에 안되는 정전에 이리 호들갑을 떨고 있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나도 한국에 오래 살다보니 행복한 생활에 물들어 지난날을 잊어버린 것 같아서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감사함으로 살아야하겠구나 하는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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