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남한의 ‘푸짐한 생일’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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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느덧 오월입니다. 오월이면 단오날 그네를 뛰던 우리민족의 모습이 그려지는 달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5월이 시작되는 1일 근로자의 날부터 시작하여 5일은 어린이 날, 5월 8일은 어버이 날입니다.
또 중순인 15일에는 스승의 날과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요란스럽고 돈도 많이 지출되는 달에 우리 집안일 역시 만만치 않게 있습니다. 남편의 생일과 내 생일을 겸하여 이달 말에는 결혼 기념일까지 있네요.
어제는 남편 생일이어서 며칠전 생일을 보낸 내가 남편을 챙겨주었습니다. 평상시에도 한국의 많은 가정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부부도 아침 식사는 거르는 터라 계란을 삶아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로 시작을 했지요.
그리고 오늘 마음을 먹고 남편을 위해 내가 큰돈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년이면 환갑의 나이를 바라보는 남편이 늘 가정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아내인 나에게 늘 지극정성인 것도 고맙기에 그 마음을 전하기로 한 겁니다. 보통 가족이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할때면 매번 남편이 돈을 냈지만 이번 남편 생일날 만큼은 내가 챙겨주고 싶었습니다.
이미 지난 내 생일에는 같은 탈북민 동생들이 고기 못먹는 누나, 언니인줄 알면서도 보냈네요.
“ 언니 생일 축하해요”
내가 고기를 먹지 않으니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고기를 못 먹는다고 비싼 국내산 소고기를 사서 보내는 바람에 고기를 먹지도 못하는 나는 할 수없이 집 식구들 고기를 구워줄 수밖에 없었지요.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자 내 생일에 먹지 못한 것을 봉창한다고 비싼 대게집으로 갔습니다.
국내산 한우보다 더 비싼 대게는 뚜껑이 내 얼굴보다 더 큽니다. 대게 한마리는 쌀 2킬로그램짜리 가격과 맞먹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그동안 수고한 남편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습니다.
대게 두 마리를 다 못 먹어서 남은 것은 볶음밥을 해먹고 다른 한마리는 포장을 해왔습니다. 비싸고 아까운 것이라 그냥 두고 오지 못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오래산 나는 손이 덜 가고 괜찮은 음식은 포장을 해달라고 해서 가지고 옵니다. 그것이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것보다 훨 나은 편이거든요.
맛있는 대게를 먹고나서 남편을 위해 옷을 사기 위해 갔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옷매장들이 들어와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을 아울렛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에서 두시간을 넘게 발품을 팔아서 남편이 마음에 들어하는 옷 두벌을 골랐지요.
남편은 처음 받아보는 아내의 무한 관심이라서인지 쑥스럽기도 하고 또 애처가이기도 한지라 자기 옷을 고르러 갔는데도 자꾸 숙녀복을 보면서 이런게 당신에게 어울리겠다. 저게 이쁘겠다 합니다. 그런 남편을 윽박질러서 겨우 옷 두벌을 골랐습니다.
한국의 옷 매장들은 남자들 옷보다 여자 옷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옷도 화려하고 깔끔한 것이 여자 옷이 더 많이 있군요. 그러고 보니 집에 옷장도 남편은 한칸을 다 채우지 못하는 데 나는 남편의 두 배를 차지하고도 자리가 모자라서 작은방에도 커다란 장롱을 놓고 혼자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작 그래도 어디를 나가려고 하면 옷이 없다고 말하는 게 나만이 아닌 한국 여자들의 심리라고 하네요.
그렇게 남편의 입이 귀에 걸리게 해주니 나한테 괜히 미안한지 내년에 당신 생일은 내가 꼭 이렇게 해줄게 라고 합니다. 다음번 내 생일에 꼭 이렇게 해달라는 주문은 아니지만 내년에는 환갑을 맞이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생일 준비를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환갑을 쇠지도 않고 나이 60이면 청춘이라고 하지만 옛날로 말하면 환갑까지 사는 것이 귀한일이어서 환갑잔치도 했지요. 내가 어릴 때 중국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환갑잔치상을 아들한테서 받겠다고 북한으로 나오셔서 환갑을 했던 것을 본적이 있답니다.
한국은 환갑의 나이는 상을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녀나 형제들이 조금씩 챙기기는 하는 편입니다. 친한 언니는 올해가 환갑의 나이인데 형제들이 모여서 제주도 여행을 보내준다고 합니다. 또 다른 가정들에서는 자녀가 돈을 모아서 건강검진도 해주고 한다는데 우리 아들은 올해 아빠 생일에 배를 타고 유람을 가는 여행을 해준다고 하더군요.
저녁에는 준비해놨던 케익에 남편의 나이를 쓴 초를 꽂고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여보의 생일 축하합니다.”
한 사람의 생일에 온 가족이 행복했던 오늘, 나는 탈북하던 해 이번이 마지막으로 챙겨주는 생일상인 것 같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그 밥상을 떠올립니다. 집에 남은 도토리 한알까지 긁어다 쌀과 고기로 바꿔서 차려주시던 그 밥상의 향기가 지금도 코끝에 애잔하게 남아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