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나눠서 행복한 생활

김태희-탈북자 xallsl@rfa.org
2024.04.29
[여성시대] 나눠서 행복한 생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구급차 옆에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
/AP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제는 부산에 있는 한 병원에서 탈북민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해보겠다고 해서 탈북민 언니 세명과 함께 갔더랬지요. 병원에서는 탈북민을 위해 준비해둔 쌀이며 여러가지 선물을 준비했었고 그 쌀자루를 앞에 놓고 사진을 찍는데 나는 공연히 장난이 발동되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쓸까? 배나무집 노친, 배나무집 영감 밤새도록 토론했네 …”

 

이것은 김일성의 은덕을 찬양하는 노래이지만 우리는 그런 의미를 떠나서 북한에서 온갖 생색을 다내면서 배급을 주던 때가 잊혀지지 않아서 이렇게 여러 기관과 단체들에서 쌀을 나눠주면 불현듯 북한에서 배급을 받던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북한에 비해 논농사도 많이 하여 쌀 수확량이 많지만 그것보다는 이제는 사람들이 쌀만 먹는 것이 아니고 고기도 먹고 밀가루와 여러가지 가공식품을 먹기 때문에 매년 쌀이 남아돈다고 난리 입니다. 쌀값이 떨어지니 농부들이 불평을 하는 거지요.

 

북한에서 아버지가 청진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나는 있을 곳이 없어서 아버지가 아는 집에 가 있으라고 해서 가서 며칠을 지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온 교포 집이었는데 내가 가니 양배추와 계란을 볶아서 우리에게는 보기 귀한 이밥을 같이 넣어서 볶아서 주더군요.

 

그런데 시골에서 배만 가득히 늘어난 나에게 밥공기에 가득히 채우지도 않은 밥을 주는데 그것을 먹고 얼마나 아쉽고 배가 고프던지 그런데 그 집 아이들은 나보다도 적게 먹고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일어나는데 남의 집에 가서 공짜로 먹는 밥에 체면이 보여서 아쉬운 대로 숟가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생활과 중국생활 모두 합치면 30여년이 다 되어가서 이제는 배고픈 그때 생각에서 벗어날 때도 됐지만 밥 욕심이 큽니다. 나처럼 밥공기에 한가득 먹는 밥을 한국에서는 머슴밥이라고 하더라고요. 어쨌던 우리집 네식구와 사람 좋아하는 내가 가끔씩 손님밥상을 차리고 하면 우리집은 다른 집에 비해 쌀이 많이 드는 셈이랍니다.

 

그런데 요즘은 물가도 많이 오르면서 북한에서 느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도 예전에 비하면 가격이 제법 비싸졌습니다. 북한에서는 한달내 일해도 쌀 한자루 사는 것을 꿈도 못 꾸지만 한국에서는 한달동안 일해서 쌀만 산다면 좀 과장을 해서 1톤의 입쌀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병원에서 쌀을 가지고 오느라고 트럭에 실었지요.

 

내 차는 언제나 짐을 싣고 일을 할 수 있게 앞은 승용차처럼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가 있도록 되어 있고 뒤는 화물차처럼 쓸 수 있습니다. 난 단체에서 활동을 하기에 편해서 이렇게 크고 든든한 차를 구입해서 몰고 다니는데 체격이 작은 내가 큰 차에서 뛰어내리면 사람들이 놀라면서 웃기도 합니다. 남편이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하는 나를 걱정해 차체도 크고 타이어도 든든한 차로 바꿔주었지요.

 

쌀을 싣고 오는 우리를 그냥 보내기가 서운한지 병원 원장 선생님이 자기 명의로 우리에게 여러가지 영양제 주사를 맞고 가라고 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귀하기로 소문난 태반주사도 맞고 또 나이들어 처진 피부고민으로 상담도 받고 했지요.

 

아줌마 셋이 병원에서 안내를 받아가면서 귀빈대접을 받으면서 너무나도 황홀해했는데 나오면서 보니 엑스레이를 찍을 때 벗어서 분명 주머니에 넣어둔 목걸이와 귀걸이가 없네요. 놀란 마음을 간신히 접고 다른 데도 여기저기 보여주시는 분들을 따라 다 구경을 하고 나서 다시 주사를 놓던 주사실에 갔더니 간호사님이 웃으면서 반겨 나옵니다. 그러면서 분명히 다시 올 줄 알았다고 하면서 비닐봉지를 내보입니다. 내가 잃어버린 목걸이와 귀걸이가 곱게 들어가 있군요. 어디에서 주웠냐고 하니 주사실에서 침대에 있더라고 하면서 웃는데 비닐봉지에 날짜까지 써서 적어둔 것을 보고 민망하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잃어버린 사람 책임이 더 크지만 나에게는 남편이 처음 만나서 걸어준 목걸이라 소중한 물건이었거든요. 정말로 북한이라면 잃어버린 물건을 도로 찾을 수나 있었을까요? 장마당에서 먹는 음식도 가로채 가는데 말이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와 사무실에 쌀을 내려놓고 또 쌀을 나눠주어야 할 사람들을 만나 일일이 나눠주고 돌아왔습니다. 같이 갔던 언니 중에 한분은 이런 활동을 처음 해보는 지라 “어머나, 신기하다” 라고 하면서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어제는 한국에 와서 놀란 날들 중에 몇번 있어보지 못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참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얻어 가는 시간이었군요. 북한에서 배웠던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섬기고 베푸는 분들을 알게 되었고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나 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체험하는 시간이었죠.

 

옆에서 배고픈 이가 있어도 애써 못 본척 해야 했던 우리의 과거가, 회령 역전에서 옆에 누었던 사람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으면 기분 나쁘다고 툭툭 털고 일어나던 내가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픈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이 힘든 것을 돌아보고 나누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작은 귀중품도 주머니에 넣기보다는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까지도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오늘 내것이 아닌 남의 것도 소중히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배워갑니다.

 

에디터 이진서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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