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공짜로 나눠주는 홍보물, 쏠쏠해요

이시영-탈북민 xallsl@rfa.org
2024.11.04
[여성시대] 공짜로 나눠주는 홍보물, 쏠쏠해요 창원시가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창원시 제공]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북한이 고향인 탈북 여성은 행복지수가 타인보다 꽤 높은 편입니다. 정전이 일상인 북한에선  귀걸이가 과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으면 또 일자 바지를 입으면 자본주의 날라리라고 단속을 당하고 도로 한복판에서 창피를 당하던 여성들이었으니까요.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온전한 자유는 시영이에게도 매일매일을 감사하게 살 수 있는 또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긴다.’ ‘혹은 취미생활을 즐긴다.’ 이런 말이 처음에는 너무 낯설었던 1인으로서 가끔 20전에 북한을 떠나 이곳에 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를 하곤 합니다. 그 생각도 잠시 지금도 그곳에 계신 청취자님들을 생각하면 현재 이곳에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생각을 하면서 바로 현실에 충실하지요.

 

대한민국에서 탈북민들이 가장 처음 접하면서도 놀라는 것이 바로 홍보문화라고 볼 수 있답니다. 대한민국에 입국하면 하늘에서 돈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정착 다음날부터 탈북민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북한 같으면 몇 년을 놀아도 될 만큼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해 주지만 화려한 거리마다 질 좋은 다양한 물건이 눈길을 사로잡고, 저녁이면 밝은 가로등 아래 여기저기에서 코를 찌르고 귀를 간질거리는 태어나 처음 보는 맛있는 음식과 어깨가 저절로 들썩거리는 신나는 음악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거든요.

 

또한, 가족을 남겨두고 이곳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경제적 도움밖에 없으니 돈을 벌어야 하는 강한 욕구는 탈북 여성들을 먹고만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아는 사람도 없고 기술도 없는 탈북 여성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홍보문화의 일환인 전단지 돌리기 혹은 전단지 붙이기 랍니다.

전단지는 대한민국에서 창업하시는 사장님들이 한두 번은 쓰는 방식인데요. 종이에 가게를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적어놓고 가게 근처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고객을 유치하는 방식 중 하나랍니다.

 

시영이는 지금도 거리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필요 없더라도 한장씩 받아주지만, 처음에는 전단에 끼워 주시는 물건에 더 집착할 때도 있었습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지금도 전단에 하나씩 끼워 주시는 일회용 물티슈는 늘 가방에 하나씩 가지고 다니긴 한답니다.

 

청취자님들은 지금 공짜로 물티슈도 주고 휴지도 준다고? 라는 생각을 하시죠. 네 맞습니다. 이곳에서 고객은 왕이기 때문에 가게를 창업하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사장님들은 왕들에게 우리 가게에 오십사 하고 홍보와 함께 소정의 북한식으로 말을 하면 뇌물을 드리는 것이죠.

 

아파트 단지가 새로 생기면 분양 사무실들이 곳곳에 세워져 아파트 매매를 유도하는 다양한 홍보용 전단과 함께 물티슈며, 화장지며, 라면이며 나누어 주고요. 하물며 핸드폰 가게에서 신규 가입을 해도 그릇 세트를 나누어 줄 때도 있답니다.

 

대한민국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온 브로커분이 돈을 받으러 오시면서 교회 이름이 찍힌 일회용 물티슈를 20개 정도 가져다주셔서 저는 교회에서 한자리하는 간부님이냐는 착각도 했는데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교회를 홍보하면서 나누어 주는 물티슈였답니다.

 

정착 에피소드가 또 있는데요. 밤 문화를 체험한다고 하면서 저녁 시간 어머니 동생 시영이 여자 세명이 노래방을 갔는데 사장님이 저희에게 또 오시라면서 노래방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라이터를 주셨습니다. 북한에서는 남녀불문하고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라이터잖아요.

 

그날 괜한 욕심을 부리면서 동생도 하나 어머니도 하나 저도 하나 3개씩 집에 가지고 왔는데 이후 그 라이터는 어디에서 굴러다니다 버려졌겠죠?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10년을 넘게 살고 있는데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굳이 라이터를 쓸일이 없답니다. 가스화가 되어있어 손잡이를 돌리면 가스레인지에 불이 오지요. 최근에는 그것도 구식, 인덕션이라고 단추만 누르면 유리아래서 뻘건 전깃불이 가마에 물을 순간에 펄펄 끓여준답니다.

 

며칠 전에는 은행에서 전화가 왔는데 적금을 들었던 것이 벌써 만기라네요. 은행에 돈을 넣으면 찾기 힘든 북한에서 살던 시영이는 처음에는 은행을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살면서 은행마다 홍보하는 상품 중에서 이자 비율이 가장 높으면서 안전한 종류를 선택하고 적금도 척척 하는 여자가 되었답니다.

 

만기가 되어 이자를 받고 다른 상품이 새로 생겼는데 적금을 이어 하시라며 사은품도 드린다고 하셨어요. 은행에서 주는 물건이 궁금하기도 했고 또 적금을 들면 돈이 늘어나는 것이니 일거양득이잖아요.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물건을 받았는데요. 북한으로 치면 원수님 선물이라고 만세를 부를 만도 했습니다.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은 세수수건 1, 칫솔 치약, 주방세제 1, 섬유 유연제 1통이 들어있었습니다.

 

시영이가 엄청 이득을 본 게 맞지요. 돈을 맡겨서 안전하고 또 돈을 불려주신다니 이득이요. 사은품도 주시니 더 이득이죠. 대한민국에는요 은행도 수십 가지 종류가 되고 전국에 널려있거든요. 몇백 미터에 하나씩 있을 정도니 은행들도 물건을 주면서 돈을 적금하라고 홍보를 하는 거랍니다.

 

칫솔통에 티 나게 은행 이름도 떡하니 찍혀있더라고요. 그날도 기쁜 마음으로 북한이 고향인 시영이는 은행에 돈을 맡기고 불어날 이자를 생각하면서 매일매일 열심히 행복하게 살 마음을 다졌습니다.

 

북한에서 은행에 돈을 맡기지 못하고 집의 여기저기에 꼭꼭 숨겨두고 도둑이 무서워 늘 출입문에 열쇠 몇개씩 잠그고 또 인민반장에게 늘 집을 잘 봐달라고 쌀도 주고 기름도 주고 할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힘들게 모았던 돈을 화폐개혁으로 휴지를 만들고 도로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옆집 영호 어머니도 생각이 납니다.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혀 목소리조차 안나오던 그 여인이 이곳에서 전단에 하나씩 붙여주는 일회용 물티슈를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열심히 모은 돈을 안전하게 은행에서 지켜주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자까지 쳐 준다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간부에게 뇌물을 바치느라 정신이 없는 게 아니라 고객의 편의를 위해 이모저모 개선점을 찾는 사장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선택할 수 없는 부모, 선택할 수 없는 국적에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죄 아닌 죄로 홍보문화도 모르고 음식문화도 모르고 취미활동도 할 수 없는 북한주민들이 이곳에서 일상으로 누리는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날이 꼭 오리라 믿으면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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