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매일 바라는 꿈

이시영-탈북민 xallsl@rfa.org
2024.11.25
[여성시대] 매일 바라는 꿈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신의주 화장품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지난 2018년 8월 1일 보도했다. 신의주 화장품공장은 북한 최대 규모의 화장품공장으로, '봄향기'라는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100세 시대인 이곳에서는 여자 나이 30이면 한창 꽃필 때라고 말을 합니다. 탈북한 지 10년이 넘은 40대 초반 시영이는 북한에선 중년 부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겠지만, 이곳에 사는 현재 지난 주말에도 반바지에 무릎까지 덮이는 가죽 왈렌끼를 신고 놀러 다녀왔답니다.

 

작년까지도 어머니는 반바지를 입거나 찢어진 청바지를 입으면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좀 듬직하게 입고 다니라고 하셨지만, 올해는 반바지에 완렌끼를 신은 저를 보시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그건 봐줄 만하네!’라고 은근슬쩍 이야기 해주셨답니다. 드디어 10년이 지나니 어머니도 패션의 자유를 인정하신 거죠

 

청취자님들이 그토록 재미있게 보시는 남한드라마가 이곳에서는 현실이랍니다. 물론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이나, 잘생기고 능력 있는 회장님의 아들 손자는 만나 볼 확률이 없지만, 매일 인생의 드라마를 찍으며 열심히 사는 탈북 여성들이 이곳에 존재합니다.

 

북한에서 부자의 상징이던 손크림, 선크림, 머리카락 영양제, 보디로션 등을 고향이 북한인 탈북 여성들은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피부에 자극이 없는 좋은 제품으로 골라 쓰고 있답니다

 

며칠 전에 화장품을 파는 지인 언니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답니다. 정착 초기에 통장 잔액이 75만 원이라 돈 주고 화장품을 구매하기 부담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화장품을 판매하시던 언니는 화장품 샘플을 저에게 상자로 보내주셨고 1년 동안 너무 잘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화장품은 고객에게 제품을 홍보하고 사용 후 구매를 유치하기 위해 일회용 견본품 생산하는데요 화장품 가게에 가든, 시장에서 화장품을 구매하든 견본품 을 한두 개씩 무조건 무료로 준답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갈 때도 크기가 큰 화장품을 무겁게 들고 가는 게 아니고 일회용을 여러 개 넣고 사용하고 버리는 식으로 아주 편리하게 생활합니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고향언니는 현재도 화장품을 판매하시다 보니 그 분야에서는 능력자가 되어있답니다.

 

최근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화장품이 나왔는데 엄청 효과가 좋다고 하시면서 보내겠으니 한번 써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감사하지만, 제가 피부가 좀 예민하다 보니 화장품을 이것저것 함부로 쓰면 얼굴에 트러블이 나거든요 트러블은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뾰루지겠네요.

 

하지만, 언니의 고마운 마음을 거절할 수 없어 솔직하게 제가 화장품에 좀 예민해서 함부로 사용하기 부담스럽다고 말을 했지요. 언니가 저에게 북한에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주겠다고 해도 문제라고 웃으셨어요

 

맞습니다. 북한에는 공짜가 많고 불법도 많고 늘 부족한 살림살이에 쟁겨둘 수 있을 때 쟁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한 달 후면 구식이 되고 1년이 지나면 옛날 상품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랍니다.

 

그리고 제가 대한민국 11년 차를 살고 있는데요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의 대가를 온전히 받고 일한 것만큼 보상을 받는 이곳에서 공짜는 있을 수 없답니다. 북한에서 그렇게 좋아하던 공짜를 이곳에서 함부로 즐기시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장품을 판매하시는 언니는 일단 써보고 말하라고 하면서 주변에 있는 여자들에게도 나누어 주라고 이야기하셨고 며칠 후 저의 집에는 언니가 보내준 일회용 살결물, 크림, 눈 크림, 에센스, 마스크 팩, 샴푸, 린스가 들어있는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언니의 마음이 고맙기는 하지만, 이 많은 샘플을 보내주신 언니의 화장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함께 들었답니다. 사실 제가 사용하는 화장품을 판매하시는 분도 샘플을 엄청나게 챙겨주시거든요. 화장대 서랍에 넘쳐나는 일회용 샘플을 보고 언니가 보내준 표본 상자를 보노라니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을 북한에 있는 친구들도 경험해 보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행복해도, 즐거워도, 배불러도 늘 고향의 친구들, 가족들 얼굴이 떠오르고 우리가 사용하는 소소한 물건들을 그들과 함께 사용하고 싶은 것이 이곳에 사는 탈북민들의 꿈이라니 그날도 한반도의 현실에 마음이 너무 아팠답니다.

 

상자에 가득 담긴 일회용 샘플을 홍보하기 위해 저는 다음날 회사에 들고 나갔죠, 회사에서 일하시는 언니들, 직원분들에게 이 중에서 사용하시는 화장품이 있으면 나누어 쓰시라고 했지요

 

북한에서는 화장품이라고 하면 여성을 떠올리잖아요. 이곳에서는 남자들도 화장을 살짝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답니다. 최근 20대 남자들은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피아스크도 살짝 바르고요. 입술연지도 무색으로 바르고 다니고요, 살결물, 크림 선크림, 손 크림은 필수랍니다.

 

여직원들도 한  가지씩 가지고 남자직원들도 몇 가지씩 가지고 사용해보고 좋으시면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드린다고 슬쩍 홍보도 했습니다. 직원들이 공짜인 줄 알았더니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시면서 그날 이왕 구매하는 거 언니에게서 구매하신다고  전화로 주문을 해주셨답니다.

 

고향 언니는 오랜만에 동생에게 안부도 전할 겸 새로 나온 샘플을 사용하라고 보내주었는데 홍보도 또 물건판매까지 도와준 시영이를 칭찬해 주셨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배달이 된 화장품 상자에는 구매하신 고객들의 이름과 일일이 꼼꼼하게 챙겨주신 새로운 샘플들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북한과 달리 장마당에 가야 하거나 혹은 상점이나 개인 집에 물건을 사러 가야 하는 게 아니고 전화로 주문을 하면 2~3일 안으로 택배기사님이 사무실 문 앞까지 가져다주시고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화장품을 받아 차에 싣고 퇴근할 수 있답니다.

 

우연히 들고나온 화장품 샘플을 고맙게 사용해주시고 또 구매까지 해주신 회사 동료들이 고마워 그날 점심 식사 후 저는 감사의 마음으로 커피 한잔 씩 돌렸답니다. 직원들은 탈북민들이 역시 인심이 후하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단골손님이 되겠다고 한바탕 농담을 해주셨고 저는 언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의 만남을 기대했답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 열심히 사는 탈북 여성들은 각 분야에서 일하면서 서로 돕고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 친구들을 대신하여 이곳에서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그늘이 되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고향 가는 날까지 열심히 살자고, 그래서 언젠가 통일이 되면 우리 함께 웃으면서 고향에 가서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 하루도 잊지 않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 해드리자고 약속한답니다

 

매일 바라는 우리의 꿈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졌으면, 빨리가 욕심이라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김진국,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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