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행복한 식사

이시영-탈북민 xallsl@rfa.org
2024.12.16
[여성시대] 행복한 식사 더덕장어구이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한겨울의 날씨에도 이곳에는 반바지에 롱부츠를 신고 얇은 외투에 비단 스카프를 날리며 다니는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만나는 사람마다 한해 동안 고생했다고 다가올 다음 해의 약속을 기대합니다지난 주말에 저는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의정부에 있는 고향 언니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5일 일하는 이곳에서 금요일 저녁을 불타는 금요일이라고 합니다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신나게 놀러 다닐 이유를 매주 만들어 내는 탈북 여성들이랍니다해마다 들깨가루와 들기름을 주문해 건강을 챙기는 숙모는 올해도 변함없이 고향 친구들지인들가족들에게 들기름과 들깨가루 가격을 알려주고 수량을 점검합니다.

 

지방에서 들깨 농사를 짓는 사장님에게 알려주어 우리는 핸드폰으로 들기름 사장님에게 입금하고 집에서 들깨가루와 들기름을 받았습니다고소한 들깨기름과 들깨가루를 밑반찬에 혹은 따뜻한 밥에 놓고 쓱쓱 비벼 겨울 김장김치와 함께 먹으면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맛이 좋습니다.

 

의정부에 사는 언니가 들깨 기름만 주문하다 보니 저의 집에 배송이 되는 상자에 함께 도착했더라고요어머니는 주말을 이용하여 언니 얼굴도 볼겸 들기름도 가져다주자고 하여 저는 50㎞ 북한으로 말하면 120리를 달려갔습니다들기름 1.5㎏을 전달하려고 120리를 달려갔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하시겠지만 이곳에 사는 북한 여성들은 자가용을 타고 120리를 달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고 주말마다 놀러 다니기 바쁘답니다.

 

의정부에 사는 언니와 형부는 오랜만에 온 동생을 위해 근처 맛집에서 밥을 사주신다고 기다리고 계셨답니다북한이라면 한끼 배불리 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이 기본이랍니다.

 

들깨가루와 들기름을 받고 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에 살때 강도식당에 가면 참깨를 음식 위에 몇알씩 뿌려주는 것도 신기했는데 이곳에서는 참깨도 숟가락으로 반찬에 넣어 먹고 들깨가루에 들기름을 물쓰듯 쓰는 것이 신기하지?”

 

고향이 북한인 우리는 공감하면서 탈북하기 잘했다고 하지만 남한에서 태어나신 형부는 무슨 일이냐는 의문의 눈초리로 언니를 바라만 봤습니다우리는 웃으면서 우리 고향 북한에서는 기름이 늘 부족하여 반찬에 기름을 많이 뿌려 먹는 집이 잘사는 집이라고 이야기했죠.

 

형부는 웃으면서 북한사람들은 모두 건강하시겠다고 기름은 사람건강에 그다지 좋은 식품은 아니라고 기름을 적게 먹어야 오래 산다고 하시더라고요이 말을 청취자님들은 이해하실 수 있으신가요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곳에선 너무 기름진 음식이 많다 보니 자연의 맛 그대로 기름도 적당히 먹어야 고지혈증 같은 병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고 건강식을 챙겨 먹는답니다냉장고에 들기름과 들깨가루를 넣은 언니는 오늘 건강에 좋은 장어구이 집으로 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장어는 뱀장어 과의 민물고기인데 몸의 길이는 60cm 정도이며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에서 산란하며 한국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장어의 효능은 정말 많은데요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장어는 남자에게 좋다는 겁니다구체적으로 장어는 눈 건강성기능 강화기력회복위 건강혈관 건강피부미용 일단 좋다는 것은 다 들어있는 영양덩어리랍니다.

 

장어구이 집에 도착하니 산기슭에 크게 자리 잡은 한옥 건물에 넓은 주차장에는 벌써 20여대가 넘는 차들이 줄지어 서있고 입구부터 장어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건강식이라고 하니 한두점 먹게 되는 제 입맛에는 별로인 민물고기 구이지만 건강을 걱정하는 형부나 어머니언니에게는 좋은 음식이라는 착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들어갔답니다.

 

식당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고 테이블에 앉아 양념장어 구이랑 소금구이로 주문을 했습니다좀 있다사장님이 초벌로 구워진 장어를 가지고 오셨고 숯불석쇠 위에서 맛있게 구워주셨어요.

 

장어가 거의 익어갈 때쯤에 장어를 구워주시는 분이 무료 반찬 코너에 가면 다양한 반찬들이 더 있다고 셀프라고 알려주셨습니다셀프는 스스로라는 뜻을 가진 영어단어랍니다대한민국의 식당들에서는 물도 셀프밑반찬도 셀프가 많습니다.

 

셀프반찬 코너를 사용하라고 하여 언니랑 저랑 밑반찬을 가지러 갔고 8가지 밑반찬은 식당에서 식사하는 동안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풍요로운 이곳에서는 날씬한 허리선을 유지한다고 음식을 조절해 먹는데 나의 고향 그곳에선 먹을 게 없어 허리띠를 줄여야 한다니 장어구이 집 셀프반찬 코너에 서서도 고향 생각에 청취자님들의 얼굴이 얼른거리는 저는 고향이 북한인 탈북 여성이었습니다.

 

언제까지 맛있는 음식을 보아도 이쁜 옷을 보아도 따뜻한 날씨를 체감하면서도 고향의 아픈 추억을 떠올려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장어구이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반주 한잔이라고 하시면서 형부는 건강에 좋은 복분자 술을 주문하셨습니다복분자술은 일반 술보다 가격이 좀 비싸답니다그런데도 건강에 좋은 장어를 먹으러 왔으니 비싼 술을 마셔야 한다면서 어머니와 형부 언니는 그날 건강식으로 몰빵하셨답니다.

 

노릇노릇 구워진 장어를 갖은 양념에 발라 깻잎과 상추에 쌈을 싸 먹으니 너무 맛있었습니다이곳 대한민국의 식당마다 한겨울에도 상추오이고추, 깻잎을 무료로 준답니다장어를 드시는 분들에 한해서는 무한정 가져다 먹을 수 있는데 그외 생배추도 있어 저는 배추속을 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언니네 집으로 갔답니다네칸짜리 새 아파트에서 사는 고향 언니는 집에 들어가자 바로 차를 끓여준다며 수면에 도움이 되는 캐모마일 차를 끓여주셨습니다숙모와 형부는 시원한 맥주 한잔 더 마시고 주무신다고 했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술과 맥주가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술 한병맥주 한병차 한잔도 편하게 먹는 집이 부자의 상징인 우리 고향이 언제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술을 적당히 먹어야 하는 풍요로운 세상이 될지 오늘도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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