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자유속에 꿈꾸는 세상
2024.10.21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 기분이 상쾌하던 서울 날씨도 어느새 쌀쌀해 지고 있습니다. 새벽이나 저녁 시간이면 스카프 한장 목에 두르고 다녀야 할 정도지요. 그런데도 이곳에서는 사무실에서 아직도 반소매를 입은 직원들을 종종 볼 수 있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여름이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겨울이면 따뜻한 난방이 불어 실내에서는 겨울에도 반소매를 여름에도 얇은 뜨개옷을 입어야 할 때가 있답니다.
새벽이면 전기밥가마 단속을 하는 속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전기를 써야 하던 북한에서의 삶을 생각하면 또 그곳에서 아직도 그런 삶의 연장선에서 사시는 청취자님들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절약 또 절약해야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편안함에서 더 편안함을 찾는 것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며칠전에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해병대 군인들에게 안보강의를 다녀왔습니다. 북한의 실정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등의 내용을 부탁드리면서 힘을 드리고 오는 것이 강의의 목적이랍니다.
물론 공짜가 없는 이곳에서 돈을 받으며 강의를 진행하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살에 신분에 따라 군부대에 배치하는 북한과 달리 이곳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도중에 군복무를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률이 거의 90%를 넘는 것이 대한민국이니까요. 대학을 가지 않는 10%의 학생들은 본인의 선택인 경우지요.
대한민국도 남자들이 의무복무지만 대학을 입학하고 혹은 본인이 지원하면 희망하는 부대에서 군복무를 할 수 있고 복무 기간이 18개월이랍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는 잘 해결이 되어있고 군인이라도 월 $1,000달러 정도의 생활비를 받으며 훈련에만 집중하는 군생활을 한답니다.
북한에서 남조선 괴뢰들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죠. 남조선 군인은 군기가 빠지고 돈밖에 모르는 군인들이라 비난했지만 안보강의를 다니면서 군부대를 돌아다니면요 군인의 의무부터 다르답니다. 북한에서는 김씨 일가를 지키기 위해 총과 폭탄이 되어야 하는 가병이라면 이곳에서 군인의 의무는 나라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랍니다. 또한 이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체력, 훈련에 집중하는 군인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답니다.
저는 안보강의를 하러 가면 늘 고향에서 군복무 중에 사망한 남동생이 생각이 나는데요. 만약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면 그렇게 허무하게 동생을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이런 비극이 하루빨리 종지부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답니다.
안보강의에서 군인들에게 북한에 대해 강의를 하다 보면 질의응답 시간이 생기는데요. 지난 번 질의응답 시간에 제일 나이가 애틋한 장병이 “강사님 북한에서 꿈이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갑자기 제가 북한에서 어떤 꿈을 꾸었는지 추억에 잠겼는데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의 유치원에서 초등학교까지 꿈은 원수님께 충성하는 충성동 효자동이었구요. 대학을 입학하면서 꿈은 장군님을 만나 뵙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식으로 표준답안이라고 볼 수 있지요.
실제로 저는 북한에서 당에 충직한 충신이 되어야 한다고 세뇌당했고 언론의 자유가 없는 그곳에서 공개적으로 개인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꿈을 꿔본적이 없더라고요. 만약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시영이는 어떤 꿈을 꿨을까요? 정말 다양한 꿈을 꾸는 명랑한 소녀로 성장했을 것 같은 지금쯤이면 저의 삶을 위해 열심히 꿈을 또 꾸겠죠.
청취자님들은 어릴적 어떤 꿈을 꾸셨나요? 이곳에서는 나이에 따라 환경에 따라 그때그때 꿈이 여러번 바뀐다고 합니다. 다만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 수령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이런 허망한 꿈은 하나도 없고요. 정말 현실적인 자신의 미래를 위해 꾸는 꿈이죠. 여자들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도 꿈에 속하고요.
남자들은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것도 꿈에 속하고요. 최근에는 자신의 삶을 다양하고 재미있게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보여주면서 돈을 버는 유튜버를 하겠다는 꿈도 있답니다. 저는 어릴적 어머니 앞에서 솔직하게 나의 꿈을 이야기했다 엄청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국경지역이라 중국 채널이 빵빵 나왔고 몰래 엄청나게 챙겨봤지요. 드라마였는데 여사장이 테이블의 중심에서 남자직원들에게 지시를 주고 여사장을 모시는 운전기사도 있고 공장들을 돌아다니는데 정말 멋져 보이더라고요.
어느 날 어머니 친구분들이 집에 놀러 오셔서 이야기하다 숙제를 마치고 나오는 저를 보고 친구분 중에 한명이 “이렇게 이쁘고 공부도 잘하는 시영이는 나중에 크면 뭐가 될래?”라고 물어보셨답니다.
어머니는 대견한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면서 당에서 바라는 모범답안의 꿈이 나오기를 기대하셨겠죠. 그런데 당시 제가 무슨 정신에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면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어린 시영이의 거짓 없는 진실이라고 봐야죠.
제가 자신 있게 “나는 크면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긴 귀걸이도 하고 남자 호위병을 몇명 세우고 앞에서 지도하는 여사장이 될래요.”라고 말해버렸지 뭐에요 순간 방안에는 몇 초 동안 정적이 흘렀고 애매한 웃음소리가, 한편에서 실망한 어머니의 눈빛도 볼 수 있었답니다.
아차라고 생각한 순간에는 이미 늦었고 친구분들이 돌아가신 다음 저는 어머니에게 정말 혼이 났어요. 딸을 키우다 오늘처럼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호된 꾸지람이 아직도 저의 귀에 쟁쟁합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개인 식당을 경영하는 여사장이 되었지만, 선글라스에 화려한 패션도 귀걸이도 자가용차도 탈 수 없는 늘 간부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검열성원들에게 담배를 바치고 옷도, 신발도 늘 검소하게 신고 다니면서 감시를 당했지요.
개인의 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그곳에서 돈이 있어도 감시요 돈이 없으면 천대요 돈 자랑을 하면 총살이요 늘어나는 자산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불안이 되기도 했지만, 자유를 찾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지금 저는 이 나이에도 새로운 꿈을 자주 꾸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대한민국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자가용을 타지만 어릴 적 꿈꾸던 호위병도 큰 회사도 없지만, 여성으로 한 회사의 국장으로 남자직원들 앞에서 회의하고 있으니 11살에 꾸었던 꿈의 반 이상은 이루었다고 봐야죠. 이곳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꿈을 꾸면 언젠가 이루어진다. 오늘 청취자님들도 저랑 함께 새로운 꿈을 꿔보지 않으실래요?
개인의 삶이 중요하고 개인의 미래가 중요한 이곳에서 탈북민들은 공통의 꿈을 꾼답니다. 고향에서 고생하시는 북한주민들에게 온전한 자유가 찾아가 서로 오갈 수 있고 서로 바라볼 수 있는 행복한 날이 오는 꿈이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