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자유에게 묻다’ 저자 탈북작가 임사라 씨의 증언 ①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1/08/09 09:20:00 GM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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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자유에게 묻다’ 저자 탈북작가 임사라 씨의 증언 ① ‘자유가 자유에게 묻다’ 책 표지.
/RFA Photo

1995년 대기근으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중국에 돈을 벌러 갔다 인신매매 당해 중국인과 강제 결혼, 탈출하여 중국 천진에서 기독교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고 하지만 2009년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돼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현장으로 알려진 전거리 교화소 수감생활 출소 후 고향에 갔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다시 탈북해 베트남과 라오스를 거쳐 2004년에 한국에 정착했으며 현재 하나교회 공동체 지체들을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민들레가족상담센터에 소속되어 탈북인 전문상담가로 활동 중입니다.

초대석 오늘은 ‘자유가 자유에게 묻다’ 저자 탈북작가 임사라 씨가 탈북과정에서 겪은 ‘자유’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임사라: 2004년 우리 집은 여전히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진짜 어려웠어요. 10년이 지나도 우리 집은 변화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앉아서 굶어 죽기보다는 내가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서 가족을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아들이 3살 반이고, 딸아이는 다섯 살이었거든요. 정말 힘들고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인신매매로 팔려 가서 제가 그때 당시 힘든 시간을 겪다가, 6개월 만에 탈출하게 됩니다. 여러 번 잡혀서 많은 고생도 했지요. 그러다 지인의 도움으로 탈출해서 천진으로 가게 됐고, 조선족 아주머니의 전도에 이끌려 2008년 천진 양촌에 있는 자그마한 조선족 교회에 가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주체사상으로 세뇌가 되었기 때문에, 주일 설교라든가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찬송을 부르는데 북에 두고 온 ‘어린 자녀들’ 생각을 하며 많이 울었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북한의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그때부터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회사에서 일하던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중국 공안에 잡혀서 강제북송 당하게 되어 4년 형을 받고 전거리 교도소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4년 형을 받았지만, 주님의 은혜 가운데 2년 형을 감형돼 출소하게 되었고요. 또다시 남한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오게 됩니다.

전거리 교화소는 어떤 곳입니까

임사라: 전거리 교화소는 사람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야만 도살장이고, 인간 생지옥이지요. 우선 감옥 안에서는 씻는 거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요. 짐승도 얼굴 붉히며 잘 먹지 않는 옥수수 겨에 두부콩 몇 알을 넣고, (거기 돌이 엄청 많거든요.) 그런 밥을 죄인들에게 주었고, 낮에는 강한 육체노동을 시켰고요. 밤에는 사상 교육을 한다고 죄인들을 재우지 않고 공부를 시키고, 이제 잘 때는 작은 감방에 50~60명을 가두고, 화장실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곳에 여름에도 갇혀 있어야 되고요. 이제 잘 때 잠자리에 누우면 바퀴벌레, 빈대, 이, 쥐들까지도 우리를 많이 괴롭혔지요. 2010년 이때에는 굶어서 하루에 2명씩 죽어 나갔습니다. 그런 인간 생지옥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북한에서 겪었던 어려움 이야기

임사라: 일단은 북한에서 1994년도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대기근으로 95년도부터 기근이 시작되었는데, 아마 제가 95년도에 대 기근을 맞으면서 결혼을 하였고요. 그때 96년도 가장 북한에서 어려웠던 시기는 96년도 하면 전 세계가 아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저희 부부도 신혼살림이지만 굶고 살았고요. 아버지와 조카도 굶어 죽고, 사랑하는 내 아들도 생후 12개월을 살다가 불도 없는 캄캄한 방에서 기어 다니다가 밥가마에 손을 데어 화독으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이렇게 참혹한 현실을 그때 당시 우리 가족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남한 동경은 언제

임사라: 제가 남한 동경은 2010년 교도소를 출소하게 되고요. 북한 사회의 숨 막히는 감시와 통제 속에서 더는 살아갈 수 없었고, 북한 사회에 대한 비난 발언을 감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2014년에 남한으로 가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탈북과정서 겪었던 이야기

임사라: 처음에는 두만강을 건널 때 물살이 너무 쎄서 몸이 떠내려갔거든요. 그때 어마어마한 공포를 느끼고 생명의 위험까지 느꼈고요. 어렵사리 국경을 넘고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국경을 넘을 때도 많은 위험이 닥쳐왔고요. 정말 국경을 넘을 때마다 심장을 손에 쥐고 경계선을 넘은 것 같아요.

‘자유가 자유에게 묻다’ 책 소개

임사라: ‘자유가 자유에게 묻다’ 2021년 6월 25일에 발간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육적인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왔다가 영적인 자유를 찾은 이야기이고요. 이제 남한에 와서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 공동체인 하나교회를 만났고 또 심리 미술 상담 공부를 하면서 민들레 심리상담센터에서 전문가 과정을 배우면서 남한 사회를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남북한 비교

임사라: 북한 사회는 주민들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그런 곳이고요. 지금 북한은 남한의 60년대라고 보면 되고요 남한에 왔을 때 제가 지상에도 이런 천국이 있는가! 이런 자유의 땅이 있는가! 이렇게 생각했던 비교가 안 되는 그런 남과 북이지요. 예를 들면 북한에는 언론의 자유도 없고요. 그리고 거기는 감시체계가 많고요. 아주 어렵지요. 그리고 잘 먹지도 못하고 남한과 비교할 수 없는 땅이지요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증언은

임사라: 핀란드의 의회에 갔을 때는 북한의 전거리 교화소의 인권에 대해 알렸고요. 그리고 미국에 갔을 때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 실상을 알리고, 그리고 일본에 가서 북한 전거리 교화소의 비인간적인 인권유린에 대하여 알리고, 그 땅에도 자유를 누리고 인간답게 사는 제도가 마련되기를, 더는 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북한의 인권에 대해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 달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초대석 오늘은 자유가 자유에게 묻다 저자 탈북작가 임사라 씨가탈북과정에서 겪은 자유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들었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기자 이현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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