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급 통일수다⑧“북한의 친구에게 보내는 메세지”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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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급 통일수다⑧“북한의 친구에게 보내는 메세지”
/RFA Photo

(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56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신년 기획특집 ‘박사급 장마당세대 통일수다’. 북한을 경험하고 북한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 과정의 장마당세대의 이야기로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회령, 종성, 청진 출신으로 한국에 와서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장마당세대 학자들과 서울 출신으로 일본에 정착한 박사 과정 동료가 방송을 위해 온라인에 모였습니다.

<북한 권력 세습의 기억>

(진행자)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여러분들이 북한에 있을 때 권동의 변동 시기,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을 때 기억을 나누어 주시죠.

(정영희) 북한의 권력 변동을 경험했습니다. 1994년 7월 8일에 김일성이 사망했습니다. 그때 당시 제 마음은 하늘이 다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이 저녁만 있고 밝은 날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새 지도자인 김정일이 등장했습니다. TV방송으로 새 권력 등장을 보면서 김정일을 더 잘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었습니다. 아픔과 쓸쓸함 그런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조현성) 한국에 와서 십 년 넘게 살았기 때문에 최근 권력자인 김정은 총비서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김일성 사망과 김정일의 등장을 기억합니다. 김일성의 죽음은 북한 사람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저도 그때 학생이었는데, 저에게 있어서 김일성은 사람이 아닌 신 같은 존재였습니다. 신이 죽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조금 궁금한게 김정일 위원장이 죽었을때 그때(김일성 사망) 내 나이 또래였던 북한 학생이나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가 궁금합니다. 저희는 너무 획일적인 교육 아래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북한에 살고 있던 장마당세대가 김정일이 죽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비교를 해보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이경화) 저는 김정일이 권력을 잡는 그런 것 보다는요. 김일성의 죽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날이 굉장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요, 초등학교 2학년이었거든요. 아침에 학교를 갔다가 친구들이 책상에 엎드려서 다 울고 있었어요. 그때 우리집에는 라디오도 TV도 없었기 때문에 전혀 소식을 모르고 학교에 갔었는데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학교에서 듣게 됐고, 선생님이 다들 집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전교생이 다 울면서 집에 갔고, 저도 엉엉 울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께서 “왜 우냐고” 혼을 내셨는데 제가 극존칭을 쓰며 김일성 사망을 슬퍼한다고 말하자 엄마는 “네 부모가 죽어도 그렇게 울겠느냐?”시며 제 등짝을 후려치셨던 따끔한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 기억 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서 학교엔 큰 제사상이 차려졌고 지날 때마다 묵념해야 했어요. 반면 김정일이 권력을 세습 받은 것을 알리는 행사 같은 것은 전혀 없었어요. 저도 궁금해요, 저희 엄마도 그랬거든요, 김일성이 죽는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고, 우리 어릴 때는 그런 얘기까지 있었어요, 심장 수술을 다시하면 살아 날 수 있다, 그래서 부활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그것에 대한 기대도 컸어요. 그 당시 우리에게는 김일성의 죽음이 지구의 종말에 견줄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에 그런 헛소문도 돌았던 것 같습니다.

<북한의 친구에게 보내는 인사>

(진행자) 북한에 남아 있는 친구에게 보내고 싶은 인사말이나 메세지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나눠주세요.

(김세진) 코로나19 상황 아래에서 잘 살아남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영희) 친구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그 당시에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북한을 떠난다는 마음 속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미안했다. 너도 이 상황에서도 살아 남았으면 좋겠다. 코로나 19가 북한을 피해가면 좋겠다, 남북한 통일이 되었을 때 남북 주민이 만났을 때 갈등 중재자 역할을 하고 내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는 결정을 내렸지만 대한민국이 내게 새로운 기회를 줘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30대 중반에 떠났죠, 가족에게도 북한을 떠난다고 얘기를 못했죠. 심지어 부모님께도 얘기를 못했습니다. 걱정하실까 말씀 못했고요, 친구나 다른 지인에게도 전혀 얘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속마음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었던 그대 심정이 내내 마음에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현성) 10대에 헤어져서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는 없을 거고 서로 길에서 만나더라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을건데, 그래도 항상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내가 고향에 돌아가면 만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거고 갔을 때 만약 친구들이 없다고 하면 슬플것 같아요,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는것을 당부하고 싶어요, 살아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만나지 않겠어요? 외모는 많이 달라졌더라도 10대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경화) 안녕이라고 인사하기도 미안한데, 너랑 나랑 정말 친했었고 나 기억하고 있겠지? 나는 꿈에서도 너를 가끔 본다. 20살 헤어질 때 그모습이 생생한데 나는 어느새 결혼해서 애 둘의 엄마가 됐어. 너도 많이 변해 있을거라고 생각해. 다른 친구들은 여기에 와서도 만나고 있는데 너는 소식도 모르겠구나. 많이 보고싶고 지금 전세계적으로 많이 아프고 위험한 상황인데 그곳은 어떤지 소식이 궁금하고, 모쪼록 정말 건강하게 살아서 언젠가는 우리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너 앞에 나타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안녕.

(진행자)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56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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