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보여주기 극치인 신년 행사
2025.01.03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2025년을 축하합니다. 올해는 광복된 지 80주년이 되는 해인데, 다시 말하면 한반도가 분단된 지 벌써 80년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이 벌써 80세가 됐습니다. 이 정도 오랜 세월이면 한 핏줄이란 말을 쓰기가 저어될 수준입니다.
80년 동안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해 사회를 발전시켜왔고,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한 사실상의 왕조 체제를 유지했고 벌써 3대 세습이 완료됐고, 4대 세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뤄냈고, 세계가 경탄하는 기적을 수없이 써왔습니다. 반면 북한은 이조왕조 500년을 지나 다시 김 씨 왕조가 시작해 80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가장 가난한 국가 순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난만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공포의 독재 하에서 대대손손 신음하고 있으며, 신분의 세습으로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어 평양에 사는 인간들은 대대손손 평양에서 살고, 간부 자식은 계속 간부이지만, 농민의 자식은 농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도 돈만 있으면 여권을 만들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만 노동당의 승인이 없으면 외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은 가장 비민주주의적이고, 가장 반인민적이고, 가장 독재적입니다. 명칭부터 거짓인 북한의 모든 것은 거짓의 기반 위에 지탱하고 있습니다.
올해 설날 평양에서 벌어진 행사는 북한의 위선과 거짓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날 5월1일경기장에서는 신년 경축공연이, 김일성광장에선 신년 맞이 청년학생 경축야회가 진행됐습니다. 그걸 자랑스럽게 보도하는 북한을 보면서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김정은의 행사 참석을 위해 15만 석의 경기장이 가득 찼고, 행사에 참가한 악단과 공연단원들은 한 여름옷을 입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1월 1일 평양날씨를 보니 영하 3.8도던데 한밤중엔 또 얼마나 춥겠습니까. 그 추운 날씨에 꼼짝하지 않고 경기장에 앉아있어야 하는 15만 시민들은 무슨 죄입니까. 그들은 그냥 공연시간에만 앉아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1호 행사를 하면 적어도 2~3시간 전에는 행사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대기를 해야 합니다. 들어갈 때 또 신분 검사를 엄격하게 하기 때문에 들어가는 데만 또 몇 시간 걸립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타고 능라도 경기장까지 오지 못하니 또 걸어서 몇 시간 와야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집을 나설 때 적어도 오후 5~6시에 나와서 갈 때 역시 대중교통이 없어 걸어서 집에 들어가면 새벽 5시쯤 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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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양털 외투를 입고 무릎에 뜨뜻한 담요를 덮고 한 시간 남짓 좋다고 떠들다 가면 되지만, 인민들은 김정은 하나를 위해 반나절을 영하의 날씨에서 몸도 움직이지 못한 채 떨어야 합니다.
행복해야 할 설날 아침에, 맛있는 것을 해놓고 가족과 친척들과 함께 즐겨야 할 설날 아침에 평양 사람들은 벌벌 떨며 집에 들어가 아침을 대충 먹고 하루 종일 두터운 이불을 덮고 잠을 자야 했을 겁니다. 난방이라도 제대로 되면 모르겠지만, 가난한 집은 뜨뜻한 구들도 그리울 겁니다. 안 봐도 너무 뻔한 장면입니다.
아마 설날 행사를 겪고 수많은 감기환자들이 발생했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에 어디 약이 제대로 있습니까, 병원이 제대로 운영이 됩니까. 나이든 사람 중에 이번 행사 참여로 심한 감기에 걸려 죽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감기환자라도 발생하면 온 가족이 설날 걱정이 가득한 채 뛰어다녀야 하죠.
저는 이것이 북한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김정은 하나를 위해 수십 만 명이 영하의 날씨에서 떨어야 하는 세상이 인민이 주인인 세상이 맞습니까.
어디 5월1일경기장에서만 행사가 진행됐습니까. 김일성광장에도 수 만 명의 젊은 청년들이 나와 군중무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작할 때 줄을 딱 맞춰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하다가 신호가 가면 만세를 불러야 하고, 또 음악이 나오면 쌍을 이루어 군중무용을 해야 합니다. 이들은 무용을 하며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 어쩌면 5월1일경기장에 끌려간 사람들보단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군중무용을 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왜 그리 불쌍합니까. 두꺼운 외투는 입었지만, 장갑을 끼지 못하고 맨손으로 춤을 추는데, 이들 역시 춤추는 행사를 위해 반나절씩 고생한 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북한은 하도 온 나라가 단체로 이상해서, 그게 이상한 일인 줄 모릅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북한은 하도 그런 보여주기 행사에 익숙해서 그게 정신 나간 일인 줄도 모르고 세상에 자랑합니다. 그걸 보도하는 북한 매체 기자들도 이게 자랑스러운 일인 줄 알고 있겠죠.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걸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요. 몇 만 명이 영하 4도의 날씨에 밖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면 단체로 정신 나갔냐고 하겠죠.
그리고 지금 북한의 상황이 즐겁다고 춤을 출 때입니까. 환율이 정신없이 오르고, 식량과 땔감 모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주린 배를 안고 올해를 견뎌야 합니다. 누군가의 아들, 형제가 우크라이나에 끌려가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이런 인민의 고통은 알고 춤을 추게 한 것입니까.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인민이 어찌 사는지, 물가는 어찌 되는지 궁금해서라도 장마당을 방문해 요해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늘 본보기로 꾸려놓은 곳만 찾아다닙니다. 비정상적인 지도자 밑에서 비정상으로 살아야 하는 북한의 2025년도 미래가 암울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