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자기 편 잡는 북한제 포탄
2023.12.22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새 김정은이 러시아에 보낸 포탄들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포는 북한제 포탄이 포신 안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건 뭐 러시아를 도와주는 것인지 잡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러시아 군인들이 참다가 포탄 5개를 잘라 내부를 확인한 뒤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보니 가관이었습니다. 부품도 빠져 있고, 화약의 색깔도 달랐으며, 밀봉돼야 할 부분이 훼손돼 습기에 노출돼 있었습니다. 그런 포탄은 쏘면 나가긴 하겠지만, 화약의 양이 다르면 사거리를 맞출 수 없으니 명중할 수가 없고, 습기를 많이 먹으면 우크라이나 진지를 향해 쐈는데 자기편 최전방 진지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포탄 부품이 빠지면 아예 포신 안에서 폭발할 수가 있습니다. 러시아 군인들은 급하니 북한제를 쓰긴 하지만 쏠 때마다 공포에 떨어야 할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 수출하는 것이니 제일 좋은 것을 보내주었을 건데 이 모양이니, 북한에서 보관하는 포탄들은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제 경험을 한 번 말씀드리면, 저는 김일성종합대학 2학년 때인 1994년 겨울에 평양고사포병사령부 122여단에 교도훈련을 갔습니다. 중대엔 57미리 고사포 8문이 있었고 제 첫 보직은 장탄수였습니다. 4발이 든 탄약상자를 들고 뛰는 훈련도 받고, 포탄 외부의 ‘구리스’를 벗기고 신관을 끼우는 훈련도 했습니다.
구리스가 어찌나 두꺼운지 벗겨내는 게 시간이 참 많이 들어서 “전쟁이 나면 구리스 벗기다가 시간 다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녹이 쓸지 않게 하려면 구리스는 칠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 와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니, 구리스는 베아링 같은데 넣는 거지, 포탄에 그걸 칠하면 언제 그걸 다 벗겨냅니까” 이러는 겁니다. 실제 군부대에 가보면 포탄 상자 안에 포탄이 언제라도 바로 쏠 수 있게 들어있습니다. 여긴 탄약고의 온습도 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녹이 슬지 않습니다. 또 오래된 탄약 재고는 계속 새 것으로 바꿉니다. 아마 포탄에 구리스칠 하는 나라는 북한 밖에 없을 겁니다.
다시 교도 얘기로 돌아가면 각 포 옆에 포탄 몇 백발을 보관한 포탄 창고가 있었는데 야간근무 때 추우면 구리스가 녹아 흘러내린 포탄 창고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포탄 상자와 벽 사이 공간은 약 80㎝ 정도 됐는데 그 짬에 들어가 동창들과 휘발유 곤로로 찌개를 끓여 먹었던 일도 있습니다. 술까지 마시고 취해서 자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탄약 상자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온 중대가 날아갈 뻔했는데, 그만큼 탄약 관리가 허술했던 겁니다.
교도대에 제일 낡은 포가 배정된다는 것을 감안해도 우리 중대 포 중엔 1942년에 생산돼 6.25전쟁에서 썼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포탄은 당시 기준으로 생산 연도가 약 30년 정도 된 1960년대 초반 제품이었습니다. 포탄 창고는 겨울이면 냉기 때문에 허연 성에가 벽에 두껍게 끼는데, 과연 유사시 이 포탄들이 제대로 발사될까 싶었습니다.
얼마 전 위성 지도로 살펴보니 그때의 중대 포진지는 물론 병실과 돼지우리까지 그대로 있던데 그 말은 벌써 80년째 같은 포를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있을 때에도 포신 청소를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과연 포신은 온전할지, 포판은 돌아갈지 의문입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때 북한이 쏜 포탄의 절반이 바다에 떨어지고, 섬에 떨어진 것들 중에도 불발탄들이 대량 발생한 것을 보고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포와 포탄 관리가 한심한데 명중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러시아에 보낸 포탄이 재고품인지 신품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땐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북한 포탄은 불량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 포탄은 1994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생산한 것과 이후에 생산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994년 이전 것은 그나마 생산 지도서대로 만들었을 것이지만 이후 30년 넘게 보관 관리가 안 되면 불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은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대량 아사부터 시작됐습니다. 그게 1994년 가을이었는데 이때부터 생산은 둘째고, 살아남는 게 중요했습니다. 당연히 누구도 품질 같은 것을 문제 삼지 않았지요. 그럼 고난의 행군이 끝난 뒤엔 제대로 생산될까요. 이때부턴 간부들과 노동자들이 원자재들을 빼돌려 팔기 시작했습니다.
위에서 요구하는 것은 수량이지 품질이 아닙니다. 수량 과제를 못하면 처벌받지만, 질 때문에 처벌받는 일은 거의 없고 품질 검사원들도 다 한통속이라 대충 넘어갑니다. 이건 군수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상부에선 설비와 자재도 제대로 주지 않고 무조건 자력갱생하라고 합니다. 할 수 없다고 하면 조건타발을 앞세운다고 처벌하고, 자라공장 지배인처럼 운 나쁘면 끌려가 총살도 당합니다. 그러니 간부라면 수량부터 맞추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러시아에서 큰 망신을 했으니 아마 포탄 공장 간부들은 처벌될 것 같지만 이런 일은 수십 년에 한 번 있는, 운 나쁜 천재지변에 해당하죠. 수량 때문에 처벌받을 확률이 여전히 수십 배 더 높으니 앞으로도 계속 불발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아마 북한 포병들도 포를 쏠 때마다 바싹 긴장할 겁니다. 불량 포탄으로 어떻게 조국 통일을 합니까. 그 전에 본인들이 자폭으로 먼저 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이 열병식 때마다 한두 개씩 선보이는 신상 무기도 한두 번은 굴러가거나 날아가긴 하겠지만, 품질이나 내구성은 형편없다고 확신합니다. 북한제가 다 그렇잖습니까. 솔직히 저는 북한이 핵무기를 쏘면 그게 제대로 폭발할지도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