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의 위선적 구호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4.09.06
[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의 위선적 구호들 지난해 한국 통일부는 "북한이 연간 수억~수십억원 상당 규모로 김정은 일가를 위한 사치품을 수시 도입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2023.10.19 [통일부 제공]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정은이 요즘 중국 영화나 드라마까지 불순 녹화물이라고 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죠. 그밖에도 공식 판매가 됐던 인도, 러시아 TV 연속극과 영화도 보지 말라고 한다는데, 오늘은 이 문제를 한번 논평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찬 김정은 체제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듣자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김정은 집권 초기에 한동안 떠돌던 한 구호였습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정말 많이 들었던 구호죠. 그런데 발은 강제로 북한에 붙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중국만 건너가도 반역자로 처벌하니 북한 땅 아니면 어딜 가겠습니까. 마치 저 구호를 들으면 누군 마음만 먹으면 자기 땅에 발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호도될 수 있습니다.

 

눈은 세계를 보라는 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구호가 아닙니까.

 

뭘 보라는 겁니까. 이젠 중국, 러시아 영화도 보지 못하게 하면서 도대체 세계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다고 인터넷이 있어서 외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라도 있습니까.

 

세계는 고사하고 북한 내부에서 돌아가는 일도 모르는데, 왜 저따위 구호가 나온 겁니까. 북한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지도 않으니 북한 안에서도 볼 것이 없습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선 오로지 김정은 찬양하는 내용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란 것을 만들어 딴 것을 보면 가혹하게 처벌하면서 세계를 보라는 말은 정말 사기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땅에서 강제로 노예생활을 시키면서 저런 위선적인 구호를 만들어내니 김정은이 인민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너무 잘 알 수 있습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나왔을 때 저는저 법에 따르면 제일 먼저 감옥에 가야 할 사람은 김정은과 그 혈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은 남매가 스위스에서 서방의 문명을 만끽하고 서방국가들을 돌아다니며 놀러 다녔다는 것은 예전에도 이야기했습니다.

 

아직도 먹는 것, 입는 것까지 이탈리아나 스위스에서 수입하고 있으니 김정은은 반동사상에 푹 빠져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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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단 서방 문화뿐만 아닙니다. 김정은은 한국 문화에도 푹 빠져 있습니다.

 

한 가지 실례를 들겠습니다. 2018 4월 남북 화해 분위기가 막 퍼져 있을 때 한국 예술인들이 평양에 가서봄이 온다는 제목으로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연장에 나타난 김정은이 한국 공연단에 노래를 하나 불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노래 제목은뒤늦은 후회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남측 공연단엔 정말 관록이 있는 수십 년 경력의 가수들도 여럿이 있었지만 그 노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뒤늦은 후회는 그 당시로부터 무려 33년 전인 1985년에 나왔고, 그 곡을 부른 23세의 젊은 여가수는 1990년에 28살의 나이로 일찍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매년 노래가 수천 개씩 나오다보니 30여년 전에 잠깐 등장했던 노래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김정은이 알고 있고 요청까지 할 정도로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미로’, ‘사랑을 위하여등의 인기 가요로 유명한 가수 최진희가 급히 그 노래를 연습해서 불러줬습니다. 그랬더니 김정은이 공연이 끝난 뒤 최진희와 악수를 하면서그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노래에는 애절한 가사와 선율이 있습니다. 김정은이 어떤 취향인지 보여주기 위해 제가 잠깐 그 노래 가사를 읽어보겠습니다.

 

“창밖에 내리는 빗물 소리에 마음이 외로워져요.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으니까요. 거리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슬픔이 밀려와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살며시 눈 감았지요

 

이런 내용입니다. 외롭다, 슬프다, 눈물이 난다 이런 내용인데, 김정은이 그런 심리 상태였을 것 같긴 합니다. 고모부도 잔인하게 죽이고, 주변 간부를 다 죽였는데 누가 김정은 옆에서 속을 터놓고 살겠습니까. 업보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얼마나 한국 노래를 많이 들었으면 한국 가수들도 모르는 1980년대 한국 가요까지 꿰고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알겠지만 한국 노래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듭니다. 아마 김정은과 그의 가족은 호화로운 별장에서 한국 노래를 틀어놓고 와인을 마시고 수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들은 그러면서 인민은 반동이라니 말이 됩니까.

 

그런데 이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 요새 옷차림 단속을 봐도 김주애나 현송월이 입는 옷이나 머리스타일을 인민이 따라하면 또 반동사상에 물들었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왕족이니 노예 취급하는 인민들과 똑같이 하고 다니는 것이 치욕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만민 평등의 사회주의를 만든다고 인민을 속이고 지금 만들어놓은 사회의 모습을 보십시오.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를 내걸고 실제로 평등을 추구했던 사람들은 다 죽이고 맹목적으로 김일성 만세만 부르는 사람들만 살려서 김 씨 왕조 독재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손자 대까지 전해져 내려와 눈은 세계를 보라고 하고는 진짜 보는 사람들은 처벌하고, 노예처럼 순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북한 체제의 위선과 기만의 실체입니다.

 

저는 김정은이 앞으로 무슨 말을 떠들던지 믿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당국의 선전에 이제는 여러분들도 다 익숙해져 속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무리 공포 통치 하에서도 정권의 헛소리를 마음으로 무시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자주적인 존재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유지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배고프고, 무서워도 자녀들에게까지 노예의 삶을 물려주지 않는 길은 여러분들이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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