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서울살이] 워싱턴에 생긴 한국전쟁 기념비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2.07.22
Share on WhatsApp
Share on WhatsApp
[주성하 서울살이] 워싱턴에 생긴 한국전쟁 기념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 내 참전용사 '추모의 벽'. 한국전쟁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며칠 뒤면 6.25 전쟁이 끝난 지 6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날을 맞아 미국 워싱턴 중심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색다른 기념비가 생겨났습니다. ‘추모의 벽이라고 이름이 붙은 화강암 벽에 한국전쟁 때 숨진 미군 36595명과 미군 부대에 배속돼 함께 싸우다 희생된 한국 카투사 7174명 등 43769명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미국에는 지금까지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전사자들의 이름을 적은 추모비는 있지만, 한국전 기념비는 없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생겨났습니다. 저도 예전에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가봤는데, 입구에 영어로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의미의 ‘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써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당연히 공산세력의 침공에서 자유세계를 구한 군인들을 영웅으로 간주합니다. 한국 사람들의 시각도 비슷합니다. 미군의 희생이 없었다면 한국은 김일성에게 점령이 됐을 것이고, 그럼 지금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기념공원에서 저의 마음은 보다 더 복잡했습니다. 일단 미군의 참전으로 한국이 침략을 물리치고 생존했기에 제가 탈북해 정착할 수 있는 민주주의 거점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자유롭게, 당당하게, 경제적 풍요도 마음껏 누리고 살고 있는데, 결국 이것은 이 추모비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덕분입니다. 그러니 희생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는 과거 북한 주민이기도 했기 때문에 6.25전쟁으로 겪은 북한의 불행에 대해서도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습니다. 미군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북한에서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고 도시와 마을은 황폐화됐습니다. 6.25전쟁 때 북한에서 폭격에 죽은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그들에겐 여기에 묻혀있는 미군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미군 병사들이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목숨 걸고 명령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김일성이 오판으로 일으킨 전쟁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만 오랫동안 상처를 안고 사는 것입니다. 6.25전쟁으로 당시 3000만 명 인구 중 약 10% 정도인 3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북한 쪽 통계는 없어 실제로는 더 많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저의 부모 역시 고아가 됐습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저의 운명 역시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6.25전쟁 이후 발발한 베트남 전쟁에서도 최대 300만 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다만 한국 전쟁은 3년 진행됐고, 베트남 전쟁은 9년 동안 진행됐으니 짧은 기간에 일어난 그 참혹함은 우리가 더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시기 미군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막대한 희생을 감내하고 한반도에 아들딸들을 보냈던 것처럼, 한국도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군을 파병했습니다. 물론 한국군이 파병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미군이 철수해 베트남으로 간다는 사정,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얻을 수 있는 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9년 동안 연인원 32만 명이 베트남에서 싸웠고, 5099명의 사망자와 1123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특히 용맹해서 베트남군은 한국군을 피했다고 합니다.

 

다만 이 파병은 어두운 그림자도 있는데,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베트남 민간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국군이 마구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아닙니다. 베트남이 민간인으로 가장해 있다가 갑자기 총을 꺼내 한국군을 죽이는 전술을 많이 쓰다 보니 군인과 민간인을 가려볼 수 없는 전장에서 억울한 민간인들도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 베트남에선 한국에 대한 원망도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1973년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한 지 15년 뒤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양국은 협상을 시작했고, 1992년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베트남은 1980년 중반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 정책을 실시했는데, 도이머이는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5년 뒤에 과거의 적과 악수를 하고 마주앉았습니다. 한국과 더 이상 적으로 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후 양국 정상들의 국빈 방문이 계속 이어졌고, 양국은 우호협력 관계에서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거쳐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계속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지금 베트남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습니다. 한국의 가수와 드라마가 세계를 휩쓸면서 베트남 사람들도 열광합니다. 베트남 축구는 한국인 감독이 맡아 이젠 동아시아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이제 베트남과 한국 사이엔 전쟁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베트남은 한국과 수교한 지 3년 뒤인 1995년 미국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 이르러선 베트남인의 84%가 미국에 호감을 표시해 세계에서 가장 미국에 호의적인 나라가 될 정도로 변화를 겪었습니다. 불과 40년 전에 수백 만 명이 희생된 아픔은 과거로 묻어두었습니다.

 

베트남을 보면 북한은 왜 그리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물론 베트남은 지도자가 바뀌는 변화가 있었지만, 북한은 김 씨 3대 세습 체제가 바뀌지 않는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정은 체제가 영원하기야 하겠습니까. 전쟁이 끝난 지 벌써 69년이 흘렀고, 그걸 기억하는 세대도 이젠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면 북한 인민이 세계에서 가장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평양 시민이 워싱턴에 와서 한국전쟁 기념비를 둘러보며, 우리 세대는 이 땅에서 다시는 참혹한 역사를 만들지 말자는 다짐을 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