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서울살이] 올여름 강력한 태풍이 북한을 덮치면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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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서울살이] 올여름 강력한 태풍이 북한을 덮치면 사진은 지난달 28일 폭우로 물에 잠긴 평원군의 농경지 모습.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 16일 김여정, 현송월과 조용원 등 노동당 간부들이 가정 의약품을 황해도에 보내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김정은이 시작한 약품 바치기 운동을 따라 하는 것이겠죠. 이 약품은 황해남도 해주와 강령 등지에서 발생한 급성 장내성 전염병 가정에 보냈다고 했습니다.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라고 하면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등을 말하는데, 이건 치료약이 없으면 코로나보다 치사율이 더 높은 전염병입니다.

 

제가 평양에서 대학 다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콜레라, 장티푸스, 파라티푸스가 전국에 퍼졌고, 저는 세 전염병 다 감염은 안 됐었는데, 저와 같은 방을 쓰던 기숙사 동창들은 거의 다 걸렸습니다. 북한은 김정은이 보내준 약이 사랑의 불사약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에나 퍼지던 이런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북한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북한 선전이 말해주지 않는 진짜 본질을 한번 살펴봅시다.

 

약이 없어 김정은과 김여정의 집안까지 털어야 한다는 것은 북한의 창고들이 텅텅 비어서, 김정은 집에 있던 약까지 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디 약만 비었겠습니까. 주민들의 코로나 격리를 위해 식량 창고 역시 다 털어야 했고, 기타 창고들도 다 텅텅 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었으면 이제 채워 넣어야겠죠. 그럼 물자 중에 제일 시급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식량입니다. 다른 것이 없으면 당장 죽지 않지만, 먹을 것이 없으면 바로 굶어 죽습니다. 그래서 딴 것은 몰라도 올해 먹을 식량은 무조건 확보해야 합니다.

 

북한이 식량을 확보하는 길은 수입하거나 자체로 생산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입은 중국이 북한에서 코로나가 들어온다고 해서 국경을 차단하는 바람에 여의찮게 됐습니다. 중국 말고 북한에 식량을 준다는 나라도 없습니다. 그럼 북한이 자체로 식량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게 또 올해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북한의 최대 곡창지대가 어딥니까. 황해남도입니다. 이곳에서 북한 식량의 4분의 1이 생산됩니다. 그런데 이 황해남도에 지금 재앙이 들이닥쳤습니다.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하나 당장 큰 문제이고, 다음 큰 문제는 4~5월에 들이닥친 가뭄입니다. 조선중앙TV 6 2일에 “황해남도에서 기상관측 이래 가장 가뭄이 심했던 2001년 다음 가는 말하자면 21년 만에 다시 보게 되는 심한 가뭄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게 황해남도만 그런 것이 아니고 황해도 다음으로 식량 생산량이 많은 평안도 지역도 마찬가지로 가뭄이 심하다고 했습니다. 가뭄이 심하니 물이 없어서 모내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거기에 모내기 철에 코로나까지 퍼지니 인력 동원에도 차질이 빚어졌고, 이때 황해도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온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또 2년 반 가까이 수입을 봉쇄하다 보니 비료도 거의 없습니다. 가뭄이 없다고 했을 경우 정상적으로 벼를 심어도 비료를 주지 못하면 작황이 한심할 것인데, 거기에 가뭄까지 더했으니 상황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올해는 하늘이 정말 북한을 봐주지 않기로 작정했나 봅니다. 6월 말과 7월 초에 이번엔 폭우라는 또 다른 재앙이 들이닥쳤습니다.

 

황해도와 평양, 평북 등에 3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보통강이 범람했고, 농지 침수가 심각했습니다. 정상적으로 농사를 해도 빈 창고를 채울지 말지인데 올해 농사를 망치면 대책이 없습니다. 창고에 조금 여유가 있으면 올해 흉작이 들어도 그걸 풀면서 보충할 수 있지만, 창고가 텅텅 빈 상태에서 농사까지 망치면 이거야말로 북한 체제에 치명타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다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위기가 코앞에 온 것입니다.

 

문제는, 진짜 문제는 아직 오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이 고작 7월 초라는 것입니다. 보통 한반도에서 태풍으로 인한 본격적인 피해는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에 집중됩니다.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해 날씨가 변덕스럽고, 세계 곳곳이 고온 현상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태풍이 크게 하나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황해도가 7월 말에 엄청난 태풍 피해를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미 가뭄에, 폭우에 농사가 제대로 될지 말지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력한 태풍이 오면 황해도 농사는 그냥 망하는 겁니다. 태풍이 아니라 극심한 가뭄이 또 올 수도 있죠. 황해도 농사가 망한다는 것은 북한의 농사가 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식량 창고에 재고가 없는 북한은 대량 아사에 직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김정은은 하늘에 운명을 맡겨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자연재해가 들이닥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것입니다. 만약 김정은의 운이 다해가서, 하늘에서 황해도에 대형 태풍이라는 재앙 하나를 더 내려주면 김정은은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의 분노 앞에 떠밀려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대책이 없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1일 “상반년 기간 우리가 건국 이래 일찍이 없었던 시련과 난관을 겪었다고 하지만 하반년에 들어선 지금 형편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지속되는 모든 난관 위에 불리한 계절적 조건이란 하나의 큰 도전이 겹쳐지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대책이 없습니다. 북한이 제시한 대책은 대중의 정신력을 총폭발시키기 위한 사상 사업이랍니다. 아직도 케케묵어 곰팡이가 피어, 썩어 문드러진 사상 동원령을 또 내리는 것입니다. 사실 정신력의 한계는 북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압니다. 영양실조 환자가 정신력을 총폭발하면 죽을 날이 더 빨라질 뿐입니다. 김정은은 정신력으로 이겨내라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굶어 죽지 않게 할지 그것부터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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