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태양절 열병식은 왜 안 했을까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2.04.15
Share on WhatsApp
Share on WhatsApp
[주성하의 서울살이] 태양절 열병식은 왜 안 했을까 조선중앙TV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 110주년 경축 청년 학생 야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전날 개막한 조명축전의 조형물들 위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는 태양절 110주년 행사 이것저것 다니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행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무슨 기념일까지 더해져서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태양절 0시에 북한이 열병식을 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하지 않았더군요. 분명 인공위성을 통해서 미림비행장에서 열병식 훈련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왜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북한이 이번에 열병식을 열면 흥미롭게 보려고 했습니다.

바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북한의 장비가 너무 잘 비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21세기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줍니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보니 전쟁 장면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생중계됩니다. 휴대전화로만 찍는 것이 아니라 교전 지역 상공에 뜬 무인기를 통해 총포탄이 오가고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이 실시간 전송됩니다.

러시아 전차가 폭발하고, 전투기와 헬기가 불덩이가 돼 떨어지는 영상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데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을 영화처럼 볼 수 있게 됐구나 싶어 끔찍합니다.

그런데 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이 전쟁을 봅니다. 러시아는 전사자 숫자를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여러 정보에 따르면 15천명~2만 명의 러시아군이 전사하고 부상자 역시 그만큼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러시아 탱크 약 7백여 대, 장갑차 2천여 대가 격파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북한군 편제로 보면 2개 전차 사단 이상이 파괴되고, 장갑차는 북한이 보유한 숫자 이상으로 파괴된 셈입니다.

문제는 이게 단순한 숫자로 볼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에 속절없이 파괴되는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는 알고 보면 북한에겐꿈의 전차들입니다. 돈 없어 사 올 수도 없고, 기술이 모자라 베끼지도 못하는 T72, T80, T90 전차들입니다. 북한군은 아직도 1961년 생산된 T62 계열 전차가 주력입니다.

1991년 걸프전쟁 때 이라크 군은 소련의 최신형 T72 전차를 포함해 3500여대의 전차부대를 운용했습니다. 그러나 미군 에이브람스 탱크 단 1대도 격파하지 못했고 미군 전차병 3명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입니다. 31년 전에 그랬습니다.

지금은 남북의 전차 전력이 반세기 이상 차이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군 전차는 1960년대에 개발된 소련제 전차들을 기반으로 하는데, 한국군 전차는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최신형입니다. 미군 탱크도 걸프전 때보다 훨씬 좋은 신형으로 교체됐습니다. 그러니 지금 싸우면 러시아 T72 전차는 미군 전차병 한 명에게도 부상을 입히지 못할 수준인 겁니다. 벌써 사거리부터 두 배 이상 차이 나고 숨어서 매복하려 해도 정찰기에 다 발각됩니다.

사실 러시아 전차는 걸프전뿐만 아니라 1960~70년대 중동 전쟁 때에도 서방 전차들에 무참하게 깨졌습니다. 중동전쟁과 걸프전에서 소련제 전차가 전혀 힘을 못 쓰자 일부 전문가들은소련이 보급형을 수출했고 전차병들의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설명하며진짜 러시아 기갑부대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두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짜 러시아 최정예 기계화 부대가 군사력 순위에서 20위나 차이가 나는 우크라이나 군에게 힘을 못 쓰고 당하고 있는 장면을 전 세계가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 전차들이 제일 고전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군이 대거 보유한 1980년대 생산된 미국제 개인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때문입니다. 이게 대다수 기갑 무력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일 1개 값이 10만 달러 정도 되는데 소련 탱크는 최소 300만 달러 이상입니다. 한국군의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사용되는 것보다 더 최신형입니다.

김정은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볼 것입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구소련의 무기 시스템과 군사 교리에 기초해 군이 운용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우상인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가 북한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최신 장비를 총동원하고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전차 부대만 그런 게 아니라 러시아 공군도 북한에 없는 SU30, SU34 신형 공군기에 강력한 Mi24, Mi28 공격 헬기로 무장했지만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겨우 10여대를 보유한 1980년대 생산된 미그29는 이번 전쟁에서 고물 취급받는 낡은 전투기입니다. 북한의 주력 전투기는 여전히 1950~60년대 생산된 미그21, 미그23입니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만약 김일성 광장에 기계화 부대가 지나가면 이런 군대를 어디다 쓰지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저는 열병식에서 북한군 기계화 부대를 보면 우크라이나 거리와 마을에 뒹구는 포탑이 날아가 녹이 슨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저런 고물이 아직도 굴러다니고, 날아다니는구나고 생각했을 겁니다.

지금은 남북이 재래식 전쟁을 하면 그냥 북한 고물 청소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거리가 2배 이상 차이가 나고, 위성과 무인기로 지상을 손금 보듯 하는 세상에선 북한군이 고물 전차를 숨길 곳도 없습니다. 장군님이 명령만 내리면 당장 남으로 진격해 적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믿으며 껑충껑충 행진하는 북한 군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영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론 북한군이 얼마나 허약한 지도 생생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열병식 취소를 보니 러시아 기계화부대보다도 한 세기 이상 뒤떨어진 고물을 잔뜩 꺼내놓고 자랑하는 것에 창피함을 느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오중석, 웹팀: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