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 살이] 농사 망친 백설희를 따라 배워라?
2024.11.15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가을에 저는 유달리 많은 지역들을 다녔습니다. 강원도 화천에 가서 북한 금강산댐을 내려다보기도 했고, 단양 8경을 지나 안동, 멀리 지리산, 경상남도 창원과 고성 등을 다녔습니다. 물론 일 때문이긴 했지만, 덕분에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가을을 실컷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쪽 지역에 내려가니 어느 고장을 가나 유달리 계속 눈에 띄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뭐냐면 감나무에 잎사귀가 다 떨어졌는데 누렇게 익은 감만 잔뜩 달려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지역에서만 그런 것을 보면 아직 수확이 끝나지 않았냐고 생각했겠지만, 그게 아니고 여기 가도 감이 그대로 있고, 저기 가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너무 잘 익어 좀 있으면 저절로 땅에 떨어질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왜 감을 따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요즘 감을 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감나무에 감이 저절로 자랐다가 땅에 떨어져 썩는다는 것인데, 그게 얼마나 아깝습니까.
“아니, 왜 팔지 않고 썩게 하냐. 그냥 팔아도 되고, 팔리지 않으면 곶감이라도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니 “요새 농촌의 인건비가 비싸서 감을 따서 가공하면 더 손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 일당을 주고 감을 따서 상자에 담거나 말려서 팔면 더 손해라는 뜻인데, 그렇다고 감나무를 베어버릴 수도 없으니 그냥 감이 달렸다가 떨어지길 반복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아마 이런 풍경을 북한 사람들이 봤으면 너무 기가 차서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야 감이 얼마나 귀합니까. 아마 곶감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도 태반일 겁니다. 그런데 여긴 워낙 과일의 종류도 많고 값도 싸니 감이 처치하기 어려운 과일이 됐습니다.
우리 속담에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 떨어지길 기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고 결과를 얻고자 할 때 쓰는 속담인데, 이 속담의 뜻은 푹 익은 감인 홍시를 먹고 싶으면 몸을 놀려 따서 먹으란 말입니다. 그런데 남쪽 지역을 다녀보고 저는 이 속담 이제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나무 밑에 누워 있으면 홍시들이 쏟아지게 생겼고, 감나무 밑에 가면 홍시가 널렸으니 그냥 주워 담으면 됩니다.
이렇게 과일들이 버려지는 남쪽을 보니 저는 또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은 어찌하여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는데도 늘 먹을 것이 모자랍니까.
여러 이유는 많을 겁니다. 비료가 없고, 날씨가 나쁘다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개인이 열심히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보고 열심히 뭘 하라고 해봐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80년 가까이 그리 살고 아직도 깨닫는 것이 전혀 없으니 그게 더 답답합니다.
저는 노동신문이 14일 예술영화 ‘열네 번째 겨울’을 조명하면서 과학기술자들의 양심과 재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북한이 ‘한 당일꾼에 대한 이야기’ ‘군당책임비서’와 같은 케케묵은 영화를 꺼내 들고 따라 배우자고 촉구한 것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열네 번째 겨울’은 그보다 더 케케묵은 1890년대 영화입니다.
그런데 ‘열네 번째 겨울’의 주인공은 따라 배우면 안 된다는 것을 인민이 너무 잘 아는데 민심과 동떨어진 노동당은 여전히 돈키호테처럼 배우면 안 되는 것을 배우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영화의 주인공 원형인 백설희가 만들었다는 ‘기름골’은 유럽남부 지중해에서 자라는 식물 열매의 개량종으로 식용유의 원료입니다. 김일성은 그걸 보고받고 1979년에 백설희를 단독 접견하고, 그를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노력영웅에 인민과학자, 2.16벤츠 등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김정일은 노동당 제6차 대회를 맞아 주민들에게 ‘시대의 영웅’을 따라 배우도록 촉구하기 위해 그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전국의 농경지들이 ‘기름골’을 심는다고 파헤쳐졌습니다. 그런데 기름골은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재배할수록 기름골이 퇴화해 작아졌고, 너무 땅속에 깊이 퍼져 수확에도 어려움이 컸으며, 짜보니 기름도 별로 많이 나지 않았습니다. 백설희가 쓸 데 없는 것을 만든 것이죠. 그런데 이런 것을 과학의 영역에 맡겨야 하는데 김일성, 김정일이 영웅이라며 설레발을 떤 바람에 결국 반동으로 몰렸습니다. 이런 악독한 지도자들 밑에서 어떻게 과학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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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비날론공장도 마찬가지죠. 우수한이란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성공한 결과를 놓고 김일성이 북한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의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부터 지었습니다. 결과는 대실패였습니다.
백설희, 우수한의 운명이 어떻게 됐습니까. 백설희는 고난의 행군 때 서관희 연류 반동으로 정치범수용소에 들어가 비참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훗날에 복권이 되긴 했지만,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수한은 영영 사라졌는데 아마 김일성을 기만했다고 숙청당했겠죠.
김정은은 이런 처절한 실패의 역사를 반성할 대신에 오히려 따라 배우라고 하니 멍청한 것은 3대째 유전인가 봅니다. 지금도 김정은은 지방 공장이니 양식이니 계속 지시를 내리지만, 북한이 김 씨 일가의 지시가 없어서 가난해졌습니까. 지시할수록 가난해지니 문제죠.
김정은이 아무리 떠들어도 인민은 백설희를 따라 배우다가 어떤 결말이 차례지는 지를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열네 번째 겨울’을 보고 배워야 하는 것은, 김 씨 일가의 지도는 늘 나라를 망치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반성이란 것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 북한은 시대의 영웅도 순식간에 시대의 역적이 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