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비전향장기수들이 빼앗긴 통일
2024.10.25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정은이 통일이란 말을 흔적도 없애라고 지시한 뒤 북한에서 이 지시에 발을 맞추는 움직임이 많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80세 생일을 맞은 비전향 장기수 리재룡에게 김정은이 생일상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예전에 비전향 장기수를 ‘통일애국투사’라고 불렀는데, 올해부터는 그냥 ‘애국투사’라고 부르더군요.
원수님이든, 장군님이든 그런 것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북한에서 통일애국투사면 어떻고, 애국투사면 또 어떻습니까. 정작 저는 2000년에 올라간 사람이 왜 이제야 80세가 됐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아닐세라 간첩 출신이었습니다.
리재룡은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1967년 어업을 하던 중 의도치 않게 북한으로 가게 됐습니다. 이후 다른 선원들은 다 남으로 다시 송환됐지만 리재룡은 북에 남았습니다. 북에서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입대한 형을 만났다고 합니다.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어디 이런 사람을 놔두는 사회입니까. 리재룡에게 남파공작원 훈련을 3년이나 시켜 1970년에 대구로 잠입시켰는데, 그만 19일 만에 체포됐습니다. 이후 그는 29년 동안 복역하게 됐습니다. 2000년에 북으로 간 비전향 장기수 63명 중 6명 정도를 빼면 다 남파 간첩 출신이었고 이들의 평균 복역 기간은 31년이나 됐습니다.
당시 북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을 보는 시각은 정작 달랐죠. 이들을 지조를 지켜 대단하다고 본 것보다는 “아니, 감옥에서 어떻게 31년을 살아있을 수 있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북한 감옥이라면 10년을 버텨도 기록감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남조선 감옥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들이 감옥생활을 했던 시기의 남조선은 군사정부 시절이라 세계적 기준으로 봤을 때 감옥이 너무 열악해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인모가 나오는 영화에서처럼 떡봉이들(70년대 사상범 강제전향 공작에 동원된 범죄자들)이 나타나 수시로 구타를 한 것도 맞고, 0.75평의 비좁은 독방도 있었고, 단식투쟁을 하면 고무호스를 입에 넣고 강제 급식한 것도 맞습니다. 요즘은 이랬다가는 큰일이 나죠.
특히 비전향 장기수는 세계의 어느 독재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랜 세월 수감돼 고문을 받았기에 국제 사회의 강한 지탄을 받았습니다. 사상이 다르다고 그렇게 오래 수감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보편적 인권 시각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세계에서 온갖 욕을 다 먹은 남조선도 간첩을 처형하지 않고, 감옥에서 30년을 어쨌든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압권은 그들을 다시 북에 다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땐 북에도 납북된 어부들, 북파공작원, 국군포로도 많았지만 그들을 상호성의 원칙에서 돌려받지 않고 남한만 일방적으로 보냈습니다.
북으로 가서 그들의 삶은 행복했을까요. 저는 그들이 잘못된 신념이긴 해도 수십 년 세월을 그걸 지키겠다고 버틴 삶은 존경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에 가서 9개월 만에 지조를 싹 다 버리는 것을 보고 그들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듬해에 기자회견에 우르르 나와 “장군님의 위인적 풍모에 온 남녘땅이 열풍을 앓고 있다”며 저저마다 누가 거짓말을 잘하나 경쟁이라도 하는 듯싶었습니다.
누구는 “남조선 거리에서 장군님 잠바가 유행의 선두를 달린다”고 하거나 누구는 “장군님의 영상을 가슴에 모시고 사진을 찍지 못하면 좀 시대에 떨어진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된다”고 하거나 또 누구는 “장군님 열풍 때문에 큰 백화점 점원들은 인민군 군복을 입고 돌아다닙니다”고 말하더군요.
새빨간 거짓말이죠. 상식적으로 봐도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송환 9개월 만에 양심을 팔아먹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보면서 저는 “북에서 신념의 화신이라고 추켜세우는 저들의 지조는 저렇게 하찮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저 사람들을 저렇게 변화시킨 북한 체제가 저 정도로 지독한 것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둘 다 일 겁니다.
아직 한국에는 여전히 북으로 가고 싶어 하는 장기수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향했다는 이유로 2000년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모진 구타 속에 전향하지 않고 버티기 쉽겠습니까. 아마 저도 전향을 했을 겁니다. 전향했던 장기수 중 북에 가겠다고 의사 표명한 사람이 46명인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현재 기준 6명만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북에서 불러주길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북에선 이들을 돌려보내란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에 63명을 받아놓고 보니 이들에게 좋은 집을 해줘야지, 주변에 한국에 대한 말이 새 나가지 않게 감시원 역할을 할 부인을 붙여 줘야지, 굶지 않게 먹을 것을 줘야지 여간 고생이 아니었겠죠. 장기수들을 데려와도 오히려 한국의 인권이 얼마나 좋은지만 보여주니 북한 인민에게 주는 영향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매를 못 견뎌 전향까지 했다는 사람들이라니, 이건 북한 기준에선 지조가 없는 것이라고, 쓸데없다고 판단한 것일 겁니다.
여전히 북에 갈 희망을 놓지 않고 사는 전향 장기수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이들이 북한에 충성하겠다고 했을 때 지금처럼 3대 세습 독재 정권이 될 줄 알았겠습니까. 이제 와서 마음을 돌리자니 일생이 부정되고 그런 거겠죠. 더 불쌍한 사람은 북한이란 극악의 독재 체제에서 집에 돌아가겠다는 말도 못 하고 평생을 유린당한 국군포로들,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잡히자마자 처형된 북파공작원들입니다.
세계적으로 인권 유린이 심하다고 단죄 받던 군사독재시절의 남조선 감옥도 천국처럼 보이게 만든 비전향 장기수들. 그들의 인생에서 통일이란 단어조차 뺏어간 북한 체제. 이러한 분단의 비극적 단면을 나중에 후손들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