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에서 가장 조건타발하는 사람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4.11.01
[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에서 가장 조건타발하는 사람 북한 평양에서 지난달 2일 열린 제1차 전국간부사업부문일꾼회의 모습.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북한에서 예술영화 ‘군당책임비서’를 자주 틀어주면서 “영화 주인공들처럼 언제나 당적 양심을 생명처럼 간직하고 수령을 진심으로 받들어 조국의 부강 번영을 위해 성스러운 위업에 한 몸 깡그리 바치는 참된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군당책임비서는 1982년에 나온 영화인데, 얼마나 내세울 것이 없으면 42년 전의 케케묵은 영화까지 꺼내 드냐 싶어 안쓰럽습니다. 영화 속에서 군당 책임비서 차석빈은 조건타발을 하는(상황을 불평하는) 화력발전소 기사장의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전력 생산량을 끌어올립니다.

 

영화에서 주자는 메시지는 딱 하나인 듯 합니다. “당에서 까라면 까지 뭘 그리 불평하냐.

 

요즘 북한에서 간부들에게 따라 배우라고 방영하는 영화들을 보면 다 이런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선 꼭 “이게 없어서 어렵다”고 하는 나쁜 간부도 하나 나옵니다. 물론 당일꾼이 나쁘게 묘사되는 일은 없고, 기사장이나 관리부위원장이나 이런 행정 간부들을 다 나쁜 사람 취급하죠.

 

그러나 당일꾼들만 잘해서 북한이 잘 살 수 있다면 이미 옛날에 잘 살았어야 합니다. 북한에선 조건타발이 해서는 안 될 아주 나쁜 일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더 나쁜 사람은 뭘 주지도 않고 무조건 하라는 사람이죠. 그런데 북한에선 절대 주지 않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노동당이기 때문이죠.

 

북한 체제가 나쁜 점이 뭐냐. 바로 이렇게 지도부가 한심하고 무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일이 잘못되면 다 아래에 전가하기 때문입니다. 뭐가 안 되면 당 간부나 행정 간부들이 무능해서 당의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김정은은 1년에 지방공장 20개씩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첫 해 숫자는 어떻게 하나 맞추려고 하는데, 그게 잘 진척이 안 되니 이런 식으로 간부들을 채찍질합니다.

“만들라면 만들어라. 못 만들면 간부들이 조건타발하기 때문이다”라는 식이죠.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자재를 대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지도자의 일이라면 그 자리가 왜 필요하죠? 하라고만 하고 못하면 죽여 버린다고 하는 지도자는 동네 건달을 갖다 앉혀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라는 것이 과연 북한 인민을 잘 살게 하는 방법인가를 따져보면 그건 더 아닙니다. 지도자가 방향을 잘 보고 이끌어 가면 북한이 지금 저 모양일 수가 없습니다. 김일성 때부터 3대째 엉뚱한 곳으로 인민을 잡아 이끌다보니 지금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국가가 되어 있는데, 지금 김정은이 이끄는 방향 역시 가난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가 핵무기만 개발하지 않았던들 북한이 지금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무역도 못하는 나라가 됐을까요. 경제력이 세계 10위권 규모를 이루는 대한민국이 도와준다고 하는데도 문을 닫아 매고 적대시하고 살지 않았던들 북한이 얼마나 잘 살겠습니까.

 

지금 북한에서 가장 조건타발을 하는 자가 누구냐를 따져보면 바로 김정은입니다. 김정은은 나라가 가난해지는 이유를 미제와 제국주의자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 북한에서 아래 간부들에게 내리먹이는 논리대로라면 상황이 그러하니 방법을 찾아 타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김정은은 타개는커녕 점점 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제재란 제재는 다 받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타개할 지는 방법도 없고, 이럴수록 더 외부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평양에서 열린 시군당 책임비서 회의에서 김정은은 당일꾼들이 “청렴결백성을 견지하고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북한에서 제일 청렴결백하지 않은 사람이 누굽니까. 김정은 아닙니까. 인민들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데, 김정은은 전국 20여개의 별장에 놀려 다니고, 먹는 것은 유럽에서 최고급만 수입해 먹고 있고, 옷은 명품만 도배하며 입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 모든 무역을 다 꽁꽁 틀어막곤 자기들이 소비할 사치품은 중국에서 매달 꼬박꼬박 들여간 것이 김정은입니다. 자동차도 세계의 비싼 차는 다 들여가 타고야 마는 것이 바로 김정은입니다. 그런 그가 누굴 보고 청렴하라고 합니까. 세도와 관료주의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것도 김정은부터 하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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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세도 정치란 말은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한 정치 형태를 말합니다. 북한처럼 김 씨 일가 3대가 왕권을 틀어쥐고, 왕의 친척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바로 세도 정치입니다. 김정은은 세도 정치란 뜻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에서 세도를 부리지 말라는 것이 특권을 휘두르지 말라는 말처럼 받아들여진다면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의 11살 딸과 여동생이 북한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자기 기분에 거스른다고 간부들을 걸핏하면 죽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 세도정치가 어디 있을까요.

 

이외에도 부정부패나 관료주의, 형식주의 모두 북한에서 가장 먼저 해당하는 게 바로 김정은입니다. 인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 본 적도 없고, 잘 꾸려진 곳만 가서 사진만 찍고 다니는 것이 바로 북한 지도자란 인간들이 해오던 일입니다. 김정은이 농민이나 노동자들과 허물없이 앉아서 의견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북한에서 타파하라는 나쁜 것들을 가장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김정은인데 누가 누구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래 물도 맑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치입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잘 먹어야 몸무게 145㎏나 찔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김정은의 비대한 몸과 인민의 빼빼 마른 몸이 바로 북한의 실상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는 생생한 표본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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