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황당한 현실 인식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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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생필품 물가 급등…외화가치 하락세 지속” 평양의 보통강 백화점에서 고객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AP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반팔 입고 다니다가 갑자기 겨울옷을 꺼내 입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러다 한반도에서 가을이 사라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봄과 풍요로운 가을을 좋아할 건데, 이제 여름과 겨울만 남으면 참 큰일입니다.

북쪽도 이번에 갑자기 추워졌나요. 코로나 봉쇄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경제는 암울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데, 날씨까지 추워지면 살기가 더 힘들어질 겁니다. 아무래도 겨울은 땔감에 돈도 많이 들고 옷도 많이 필요해서 여름이나 가을보다 살기가 훨씬 힘들죠. 게다가 각종 수입 물품 가격이 코로나 이전보다 보통 10배씩 올라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 김정은은 얼마 전에 사람들의 염장을 지르는 발언을 했더라고요. 방침 전달회의도 했다고 하는데, 높은 간부들만 했는지 일부 주민들에게만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형편이 몹시 어렵지만 아무리 어렵다 해도 전쟁 때에 비기겠는가. 전쟁 때에는 사탕가루, 기름, 맛내기가 없다고 싸움을 못한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탕가루, 맛내기, 기름을 수입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이 논다.

저는 저 발언을 듣자마자 솔직히 욕부터 나갔습니다. 김정은은 지금 북한 상황을 전쟁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이 전쟁 시기입니까.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 인민들은 늘 극한의 상황과 비유한 구호 아래서 고생했습니다.

가령 ‘고난의 행군’이라고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된 1990년대 대량 아사 사태만 봐도, 왜 인민들이 그때 고난의 행군을 했어야 합니까. 김정일이 문만 조금 열어도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것인데 체제가 무너질까 봐 문을 꽁꽁 닫아 매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의 대량 아사는 국제 정세의 탓도 아니고, 자연재해의 탓도 아니고, 오로지 김정일이 만든 인재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불평하면 반동이니, 타락했느니 마구 잡아가면서 공포통치를 폈습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가 퍼질까 봐 봉쇄를 한다고 하는데 이건 핑계죠. 무역도 허용하지 않고 인적 왕래도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나라가 세상에 북한 밖에 더 있습니까. 남들은 봉쇄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합니까. 코로나 위험보다 문을 닫아 맬 경우 초래될 후과가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코로나 예방주사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고 하는데도 받지 않고 계속 스스로 문을 닫아 매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코로나는 핑계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강력한 유엔의 제재로 경제 사정이 점점 안 좋아 지는데 그것 때문에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니 코로나를 핑계로 사실상 계엄통치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의 이동도 단속하고 시장도 통제하고, 이런 엄혹한 시절에 불평불만을 가진 놈은 반동놈이라고 숙청하면서 정권을 유지하는 겁니다.

지금 상황을 전쟁 상황이라 인식하면, 김정은은 불평하는 사람은 즉결 처형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전쟁 때에는 전시법이 작동해 즉결처형도 이뤄지는데 김정은의 머리는 잔인한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금을 전쟁 중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 맛내기, 사탕가루가 없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지금이 전쟁 때이니 너희들이 궁핍하게 살아도 불만을 가지지 말라는 겁니다. 아니,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되는데 북한 인민은 왜 고난의 행군, 불타는 낙동강, 1211고지와 같은 죽음의 길을 계속 가야 합니까. 인민은 기름을 좀 먹으면 안 되는 겁니까. 좀 있다가 지금이 이조시대보다 얼마나 좋은가, 고려시대보다 얼마나 좋은가 이런 말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김정은도 기름이나 사탕가루, 맛내기 없는 음식을 단 한 끼라도 먹으면 또 말도 안 하겠습니다. 코로나 와중에도 김정은 일가는 외국에서 자기들의 사치품과 의약품은 다 들여가고 있습니다. 7월 무역통계를 보니 특정 상표의 사탕 2㎏를 사갔는데 김정은 집에서 누가 그걸 맛있다고 한 모양입니다. 자기는 이 정도로 골라 먹으면서 인민은 사탕가루가 없다고 불평을 한다며 자기가 오히려 열을 냅니다. 인민을 얼마나 개돼지로 보면 이러겠습니까. 개돼지들은 사료나 겨우 먹으면 되지 맛을 따질 필요가 있냐 그런 생각이겠죠.

더구나 김정은이 전쟁을 운운한 것도 참 웃깁니다. 전쟁은커녕 고난의 행군 때에도 스위스에 가서 편하게 살던 새파란 김정은이 전쟁을 운운하니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맨날 주지육림 속에 살아서 배가 고픈 것이 뭔지, 기름이 안 들어간 음식이 어떤 맛인지 전혀 모를, 살이 피둥피둥 찐 김정은이 전쟁 때를 운운하니 사람들의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렇게 전쟁 때를 운운하면서 올해 김정은이 제일 많이 찾아간 곳이 보통강 구역 호화주택 건설장입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김옥주를 비롯한 최측근들에게 좋은 집을 하루빨리 선물해주고 싶은 모양입니다. 전쟁 때라면 제일 필요 없는 것이 호화주택인데 참으로 이중적 행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절망적입니다. 현실 감각이 뛰어난 지도자 밑에 있어도 고생하면 불평이 나오는 게 인간인데 김정은이 저렇게 황당한 세계에서 살면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주에 북한이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을 시험했는데 김정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미사일 발사 때마다 나타나더니 올해는 미사일 발사장에도 안 갑니다. 그 좋아하던 것도 이젠 귀찮고 그냥 집에서 쭉 놀고 싶은지 올해 평양을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현실 인식도 황당함 자체이고, 게다가 급속히 게을러지기까지 하니 지금의 시련이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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