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한식과 청명 문화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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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한식과 청명 문화 북한 주민들이 추석을 맞아 조상묘를 찾아 성묘하는 모습.
연합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일은 청명이고, 모레는 한식날이군요. 우리나라 속담에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말이 있는데, 한식과 청명은 하루 사이이기 때문에 하루 먼저 죽으나 하루 뒤에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한식에 조상묘를 찾아가 성묘를 하는 문화를 이어왔고 저도 북에서 자랄 때 한식에 조상묘를 찾아가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식에 갈 수가 없는데, 2000년대 초반 김정일이 한식이 중국 명절이니 쇠지 말고 대신 청명을 쇠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죠. 대신 청명을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김정은이 집권한 다음날인 2012년부터 달력에 청명을 빨간 날로 딱 표시했더군요.

김정일의 지시를 보면 한식은 중국 명절인 것처럼, 청명은 우리 전통 명절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다릅니다. 김정일이 참 무식해서 이런 지시 내린 것이라고 봅니다.

청명이야 말로 중국에서 아주 중요하게 쇠는 전통 명절입니다. 무려 2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져 내려온 청명절은 지금도 해외 화교들을 포함한 모든 중화민족의 중요한 전통명절의 하나입니다. 중국에서는 25개 민족이 청명절 풍습을 가지고 있는데, 비록 풍습에서 각자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성묘나 제사 등 기본적인 내용은 비슷합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후 한식이 폐지되고 청명절을 쇠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한식은 어떨까요. 한식 역시 중국에서 들여온 명절이 맞습니다.

2600여년전 진나라의 문공이란 왕이 충신 개자추라는 사람을 불러들이기 위해 그가 은둔한 산에 갔는데, 그가 산에서 나오지 않아 불을 질렀고, 개자추는 끝까지 버티다가 불에 타죽었다고 합니다. 문공이 그를 애도하기 위해 만든 것이 한식이라고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한식은 신라시대부터 중국에서 받아들인 명절입니다. 한국에 들어와 거의 1500년 동안 우리의 명절로 자리 잡았습니다. 김정일의 수명이 도대체 얼마나 된다고 유구한 풍습을 자기가 없애고 말고 합니까.

그리고 우리 명절이 중국 명절과 좀 겹치면 안 될 일입니까. 어차피 우리는 중국의 문화권에서 살아왔지 않습니까. 김 씨 독재자들이야말로 중국이 없으면 못사는 가난뱅이 국가를 만들어놓고 갑자기 명절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것이 참으로 웃기는 일이 아닙니까.

아무튼 김정일의 지시로 이젠 북한엔 한식 차례가 없어지고 청명 차례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닥쳐온 코로나 사태로 여러분들은 조상 묘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물론 한국 역시 코로나 때문에 지난해 한식 차례를 조촐하게 치른 집이 많고, 당일에 자식들을 오지 말라고 한 부모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성묘는 아마 다들 했을 겁니다. 한국은 우선 공동묘지가 절대적으로 많아 묘지관리측이 다 해주는 경우가 많고, 따로 가족 선영이 있어도 돈을 주면 해당 지역 주민들이 대신 해주는 경우가 작년에 많았죠.

그런데 북한은 여기서 차이가 납니다. 공동묘지가 있긴 하지만 묘지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관리소라는 것도 없습니다. 돈 주고 시키는 문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족이 가서 직접 낫을 들고 풀을 베지 않으면 벌초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지난해 코로나 통제를 어떻게 했습니까. 국가 비상방역 체계를 선포하고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통제를 했습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 파라티푸스, 장티푸스, 콜레라가 걸핏하면 돌았습니다. 이 전염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10%에서 50%까지 나오는 매우 무서운 병들인데, 그때 약도 별로 없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코로나 치사율은 세계 평균이 3.4%입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과거 그 무시무시한 전염병들을 대한 태도와 지금은 너무 달라졌으니 하는 말입니다. 코로나를 핑계로 경제난에 빠진 주민들이 불평을 할 수 없게 통제하려 작정하다보니 이웃 지역에 이동하는 것도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에 마을 뒷산이면 갈 수가 있어도 조금만 묘가 멀어도 갈 수가 없는 겁니다.

추석에도 통제하고 하니 지난해 북한의 산에는 풀을 베지 못한 묘가 엄청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올해라도 가서 하면 좀 낫겠는데, 올해도 통제가 풀리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워낙 코로나 방역 지침 위반을 군법에 맞춰 처벌하라고 하니 용기를 내서 다니기 쉽지 않은 겁니다.

묘라는 것이 그래도 1년에 한번은 찾아가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풀이 무성한 것은 물론 여름 장마 때 패이고 한 것도 보수할 수가 없습니다.

김정은은 이동만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가족끼리 제사나 술판을 벌이는 행위들을 용서하지 말고 엄벌하라고 해서 집에서 제사도 감히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청명이면 묘지가 많은 산 주변에는 발에 걸채는 것이 주정뱅이들이었는데, 작년과 올해는 집에서도 주정을 부릴 형편이 안 된 것이죠. 두 가족만 모여도 처벌하라고 해서 작년 청명날에 보안원과 인민반장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실제 모이지 않았는지 감시까지 하게 한 지역이 많다고 합니다.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김일성과 김정일은 수억 달러를 들여 만든 으리으리한 금수산기념궁전이라는데 시체를 보관하고 김정은 본인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직접 가서 수시로 참배를 하면서 인민들은 모여서 술도 마시지 말라고 하니 말입니다.

외국에 대고선 코로나 환자가 없다고 하면서 정작 통제는 코로나가 가장 심각한 나라보다 더 심하게 합니다. 이런 매정한 코로나 지침이 적어도 올해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데, 2년째 부모님 산소도 못가는 사람들은 속이 까맣게 썩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악독한 독재자를 만나 섬기는 대가로 북한 인민은 효도할 길도 막혔으니 정말 원통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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