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 본 인권] 북한 피난민 출신 학자가 본 남북한 차이
2023.08.23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8.15 광복절을 맞아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남북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행사가 적지 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 동부의 대표적인 한인 거주지인 버지니아 애난데일에서도 ‘8.15광복특별강의’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에서 연설한 강사는 북한 출신 장수영 박사인데요. 그는 평안북도 피현군이 고향이라고 합니다. 장 박사는 한국 전쟁시기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포항공대 2대 총장을 역임한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장 박사는 남과 북이 걸어온 70년 역사를 담담하게 풀어갔습니다. 그는 “해방 직후 남한보다 더 잘살았던 북한은 공산주의를 택한 탓에 이제는 남한보다 20배 더 못사는 최빈곤국가가 되었고, 인권은 세계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이 소식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8.15 광복절 특강이 진행되는 미국 버지니아주 애난데일의 ‘워싱턴한인커뮤니티센터’. 머리가 희긋희긋한 한인 원로 1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연단에 나선 장수영 박사는 해방후 남북 합법정부 구성이 실패한 후 소련의 지지를 얻은 김일성은 북한에 공산국가를 세웠으나 국호에 나온 대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였다고 말했습니다.
장수영 박사: 이 국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걸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북한이 민주주의입니까? 종교의 자유도 없고, 집회 결사의 자유도 없고, 언론의 자유도 없,고 심지어 거주 이전의 자유도 전혀 없는 그런 나라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나요?
그는 북한이 민주주의 이름을 딴 것은 인민들을 기만하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았고, 공화국이라면 최소한 5년에 한번씩 지도자를 국민들이 선출해야 하는데 북한은 3대째 세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수영 박사: 공화국이라면 적어도 4년 5년 또는 6년 해마다 지도자를 국민에 선출하는 공화국이지 3대째 내리 세습을 하는 그런 나라가 공화국입니까?
북한이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자기네는 왕국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그 공화국은 지금 조선왕조보다 더 독재적인 나라가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도 선거로 뽑은 지도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장 박사: 김일성이 한 번도 선출돼서 북한의 지도자가 된 적이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언제 그 사람을 지도자로 뽑았나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 후보자가 국민의 선거로 뽑혀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정부보다 노동당이 우선이고, 당이 국민들에게 지도자를 뽑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경제력 면에서도 해방후 남한보다 더 앞서 있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러 평양에 갔던 김구와 김규식 등이 북한에 전력공급을 요청했는데, 북한은 이에 합의하고도 일방적으로 전기를 차단해 상당한 실망감을 주었다는 겁니다.
장 박사: 북한에는 전기가 풍부했고요. 수풍발전소만 해도 60만 KW이니까 적어도 해방 직후에 북한에는 한 80만 킬로와트의 전력이 있었지만, 우리는 15만 KW도 안 됐습니다. 그러니까 맨날 정전되고 그러다가 해방 직후에는 북한에서 송전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남북 협상 그 직전에 이게 끊어졌어요. 끊어졌는데 김구, 김규식, 김두봉, 김일성 네 사람의 회담에서는 그 전력을 다시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분들이 5월 5일에 서울에 돌아온 다음에 그 약속을 어겼죠. 그러니까 김구 선생도 “이 북한사람들, 믿을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북한은 1980년대 제작한 예술영화 ‘위대한 품’에서 백범 김구에 대해 다루면서, “남조선의 우익정객이자 반공주의자이며 민족주의자인 김구 선생까지도 김일성 장군의 위대성에 탄복하여 상해임시정부 인장까지 내놓으려고 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남한에서도 “김구가 김일성에게 이용당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남한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김구 선생이 합의서 도장을 찍으려고 인장을 가지고 간 것 같지만 김일성에게 헌납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김일성이 연석회의에 김구를 초청한 것은 자리의 무게를 높이기 위한 것일 뿐 진정으로 남북 회의를 할 뜻은 없었다"고 한 언론에 밝혔습니다.
장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으로 농지개혁을 꼽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법’을 제정ㆍ공포했습니다. 남한에서 진행된 토지개혁은 ‘유상매수ㆍ유상분배’의 원칙에 따라 한 가구당 3정보를 소유하도록 한도를 정하고, 그 이상의 토지는 국가가 지가증권을 발급하여 매수하고, 소작농에게는 농지를 배분하는 대신 수확량의 30%를 5년 동안 현물로 갚게 하고 토지상환증서를 발급하였습니다. 한편 북한은 남한보다 먼저 토지개혁을 실시했는데요. 1946년 3월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원칙 아래 일본인과 지주의 토지를 무상 몰수한 뒤 이를 소작 농민들에게 무상분배하였지만, 1950년 전쟁이 끝난다음 모든 토지를 협동농장에 귀속시키면서 사실상 농민들의 토지 소유권은 박탈되었습니다.
장 박사는 북한이 발간한 조선역사책에도 대부분 내용들이 허위와 과장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북한은 자신들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해 조선 역사 35권짜리 책을 냈는데, 이 책에는 너무나도 과장이 많아 중국 사람들도 이를 믿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장 박사: 저는 중국교통대학과 연이 되어 중국 학생들하고 많이 얘기를 나누는데, 역사학자 한 사람이 저한테 그래요. 북한의 진짜 역사는 ‘history’가 아니라 ‘his story’다. 바로 김씨의 이야기가 ‘조선의 역사다’고 말이예요.
북한은 1866년 평양 대동강에 올라왔던 미국 상선 ‘제너럴 샤만’호를 불살랐는데, 당시 배는 군함도 아니고 일반 상선이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샤만호를 불사른 것도 김일성의 증조 할아버지 김응우가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1932년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창설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 북한 땅에 티베트 인민혁명군이 창설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 같다”고 말합니다. 즉 현재 티베트가 중국의 압박을 받고 있는데, 그 압박속에서 티베트 혁명군이 창설됐다고 주장한다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장수영 박사는 북한이 주장하는 항일투쟁도 과장이 상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 김일성이 1932년 항일유격대를 만들었고 1940년초에 소련으로 갈 때까지의 전투회수를 들었습니다.
장 박사: 김일성이 그렇게 전투를 많이 했다? 그런데 한번도 진적이 없다? 그런데 계산을 해보면 하루에 보통 서른번은 싸웠다는 온통 그런 식이예요.
그는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부대도 하루에 30회 싸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지금 북한은 75년을 이렇게 버티고 있지만 이러한 허위와 과장은 오래 갈 수 없다며, 결국 국민들도 상당히 깨어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장 박사: 이제 탈북자도 많아졌고 또 외교관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결국 다 잘 사는데 북한만 지금 이렇게 형편없다 하는 거는 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편,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남한은1985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5천불에 육박하게 되었고 그 후 계속 발전하여 1인당 국내총생산이 지금 북한의 23배가 됐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는 남한은 세계 6위 수출 대국이 됐고, 유엔 사무총총장을 배출하고,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국력을 키웠다고 말했습니다. 계속하여 더 이상 남북한을 경제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난다며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 정권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한국전쟁 시기 피난민이었던 북한 출신 학자가 남북한의 위상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강의를 진행한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