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탈북 여성이 고향을 떠난 이유(2)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21-03-10
Share
미국 탈북 여성이 고향을 떠난 이유(2)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교외에서 여성들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함경도 출신 리미셸 씨에 대한 이야기 “미국에서 항상 더운물 쓰니 좋아요”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국제여성의 날 (International Women's Day)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진 ‘3.8부녀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전국 여성의 날’은 점차 전세계 여성들의 정치적 참가의 권리, 근로조건 개선, 남녀차별 방지 등 인권과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국제적인 이벤트로 시작하다가, 1975년에 유엔이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하면서 비로서 국제적인 기념일로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북한은 해방 후 광범한 여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남녀평등권 법령을 제정하고, 여성들의 완전한 자유와 권리를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이나 미국으로 온 3만 여명의 탈북민들 가운데 여성은 70%가 넘습니다. 왜 이처럼 많은 북한 여성들이 고향 땅을 등지고, 미국과 남한으로 향했는지, 오늘 시간에는 미국 동부에 정착해 사는 탈북여성 리 미셸(Michelle Lee)씨로부터 북한을 떠난 동기에 대해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함경북도가 고향인 리 미셸씨는 2004년에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10년간 살다가, 한 차례 강제북송 되었다가 재탈북해 현재는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질문: 북한에 있을 때 3.8부녀절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리미셸: 우리는 3.8부녀절은 남자나 여자는 동등한 지위에 있다고 하여 그날은 잘 쇠었습니다. 그날은 일을 간단하게, 뭐 일을 거의 안하다시피 하고 야산에 올라가서 조별로 (음식을) 차려 가지고 놀았지요.

질문: 북한에서는 여성들이 애를 낳아 키우고, 직장일을 해야 하고, 지금은 장사를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까지 지는데, 여성들만 너무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리미셸: 뭐 그저 응당하게 생각하다 보니까, 별로 느끼지 못했어요. 응당 시집을 가서는 신랑을 섬기고, 가정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나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어요.

질문: 그러면 왜 탈북을 하게 되었습니까?

리미셸: 우리는 잠시 중국에서 돈을 벌어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아, 내가 그렇게 어리석게 생각했다니까요. 제가 3년만에 중국에서 잡혀 가지고 고향에 돌아갔는데, 나를 너무 개 취급하는 게 너무 괘씸해서, 고향이라고 찾아왔더니 너희들 이런 식으로 대해주는가? 반발심이 나서 돌아다보기 싫더라구요.

질문: 중국에서 강제 북송되어 나가셨는데요. 북한 감옥 생활은 어땠습니까?

리미셸: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것들(간수들)이 ‘개간나’, ‘새간나’ 하면서 그게 보통말이지요. “야, 개간나야, 앉지 못해? 야, 개간나야 빨리 나와라” 라고 하는 게 표준어입니다.

질문: 감옥에서 구타는 당하지 않았습니까?

리미셸: 개간나, 새간나 들이차고 내차고 하지요. 글쎄 사람마다 다 다른데, 감옥 안에서 죄수들이 입을 어떻게 놀렸는가에 따라서 차별 받지요. 뭐 우리는 입도 안벌리고, 들은 척도, 본 척도 안했으니까 괜찮았는데, 입을 잘못 놀린 애들은 진짜 많이 맞습니다. 개패듯이 마구 몽둥이로 때려요.

질문: 간수들이 여성들도 사정없이 때립니까,

리미셸: 아이구, 그럼요. (철창 앞에)무릎 끓고 앉아 손을 내밀라고 해놓고는 구두발로 손을 마구 밟아 놓고 그래요.

질문: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잡혀 나가면, 북한 보위부원들이 돈을 찾기 위해 검신을 철저히 한다는 증언이 나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리미셸: 네 그건 물론지요. (탈북여성들이)나가면 줄을 쭉 세워놓고 합니다. 약 7~8명이 한 방에 들어가서 알몸으로 딱 서게 하고 손 다 들고 다리 다 벌리게 하고, 가시나(여자 간수)들이 와서 수색을 해요. (돈을) 자궁에 넣는 애들이 있는데, 다리 벌리고 앉았다 일어서라고 하는데 그러면 (돈이)나오거든요. 할 수 없이 그 돈 다 뺏기는 거지요. 그리고 어떤 탈북여성들은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먹고 나가요. 그러면 (그 여성들이)화장실에 가서 똥을 누우면 죄수들이 나가서 그 밑에서 막 돈을 막 찾아요. 그렇게 빼앗아 쓰지요.

질문: 방금 북한으로 잡혀 나갈 때 고향에 간다는 기분으로 좋았다고 하셨는데, 다시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리미셸: 아니, 내 고향이라고 꿈에도 너무 가고 싶어서 중국 땅에서 살면서도 내 집을 바라보면서 살다가 잡혀 나갔는데, 완전히 사람을 개 취급 하더라구요. 그래서 정신이 돌았어요. 내 고향이라고 찾아왔는데, 이것들이 개간나, 새간나 하니까, 진짜 정신이 돌아가더라구요. 난 고향이라고 찾아왔는데, 나를 홀대하니까, 누가 북한에 있겠어요. 그래서 달아 나오지요.

질문: 그러면 어떻게 한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까?

리미셸: 우리 중국의 친척들이 한국에 많아요. 원래 한국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친척들이 “언니, 여기 한국에는 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미국은 너무 조용하고 좋다고 하는데 거기로 가는게 어떤가?”라고 건의하더라구요. 그리고 “미국으로 북한 사람들이 간다고 하는데, 차라리 미국으로 가는게 어떤가?” 라고 해서 우리는 미국으로 왔어요.

질문: 북한에서는 미국을 철천지 원수의 나라라고 배웠는데요, 미국으로 처음 가려고 했을 때 두렵지 않았습니까?

리미셸: 우리는 중국에 나와서 근 10년 동안 살았어요. 그 동안 우리 머리가 좀 개조되었지요. 자본주의 물이 좀 들었어요(웃음). 요즘 북한 사람들이 미국에 간다고 하니까, 차라리 우리도 미국으로 가는게 어떤가 하고 해서 왔어요.

질문: 그런데 미국에 오시니까 어떤 것이 가장 좋았습니까,

리미셸: 우선 첫째로 우리는 신분을 해결하지 않았어요? 미국에 불법 체류자들도 많은데 우리는 나오자마자 신분을 가지게 되니까, 아, 우리가 살길을 찾았네 하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아프지 않으면, 여기가 얼마나 살기 좋습니까? 노력하면 하는 대로 내 몫이 아닙니까? 북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 나라에 들어가고, 우리 몫이 얼마 안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더운물을 쓰지, 얼마나 마음이 편안 합니까? 어디 이런 곳이 있습니까, 북한에서는 여름에 강가 나가서 빨래 하면서 몸을 씻고, 겨울에는 물을 덥혀 가지고 바가지 목욕을 하지 않습니까?

질문: 외부 세상에 정작 나오니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리미셀: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땐 땔감 걱정, 입을 걱정, 먹을 걱정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몸이 부셔지게 일해도 차려지는게 없지 않나요? 그러나 여기서는 노력하는 것만큼 내 몫이 되고, 내가 뭘 하겠다고 하면 이루어지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는 건강이 허락 치 않아 일을 많이 할 수 없어서 유감이지, 우리는 병원 가도 무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병원가면 돈을 낸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 것은 없고 정부에서 다 해주니까, 만족해서 살지요.

우리는 북한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나와보니까, 와, 세상에 눈을 감고 살았지 않습니까? 눈과 귀를 다 어둡게 해놓고요. 상반되는 이 삶을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요. 김정일 김정은 정권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서 행복해요.

질문: 지금 이 방송을 듣는 북한 청취자들도 외부세계에 나간 탈북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하실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리미셸: 내가 잡혀 나가니까, 내 동생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언니, 중국에선 진짜, 이밥에 돼지 고기 먹고 살아?”라고 물어봐요. 그래서 저는 “개도 고기를 먹고 산다. 고기를 안주면 잘 안 먹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동생이 깜짝 놀라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도 깜짝 놀랐어요. 정말이냐고. 그래서 정말이라고 했더니 부러워 해요. 내가 잡혀 나갔는데도 나를 부러워해요. 그리고 나한테서 무슨 정보를 빼 가려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딱 잡아 떼고 난 모른다고 했어요. 내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거기서 생매장당하는 데 말을 할 수 없지요.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온 리미셸 씨는 잘 정착해 북한이 열리는 날, 보란 듯이 고향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 동부에 사는 함경북도가 고향인 리미셸 씨의 북한 생활과 미국 정착 사연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다. 지금까지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