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꽃제비 출신 국회의원 만나다

워싱턴-박수영 parkg@rfa.org
2024.07.10
[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꽃제비 출신 국회의원 만나다 북한 ‘꽃제비 출신’ 한국 국회의원 지성호 의원이 지난 3월 RFA 자유아시아방송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RFA PHOTO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안녕하세요.

 

기자: 한 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장마가 벌써 시작됐어요. 북한 날씨를 살펴보니까 남한이랑 똑같이 전국 곳곳에 비 소식이 많더라고요. 올해는 장마가 조금 일찍 시작됐대요. 그 소식을 들으니까 북한 농촌 살림살이가 괜찮을지 걱정되더라고요. 북한에서는 다 자급자족으로 버텨야 하다 보니까 북한 내 쌀 수확량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래서 농민들은 날씨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요. 장마가 너무 늦어도 안 되지만 너무 일찍 와도 안 되거든요.

 

기자: 남한 농민들도 날씨를 항상 확인하고 주의깊게 살펴보겠지만 북한보다는 농업용수를 관리하는 시설이 잘 마련돼있다 보니까 북한에서 더 날씨에 대해 예민할 것 같아요. 그럼,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앞서 이야기하던 것처럼 날씨 하나에도 북한 주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질 만큼 여전히 이 시대에도 북한 상황이 좋지 않은데요. 그렇다 보니 흔히 말하는 북한꽃제비가 많죠. 꽃제비는 흔히 말하는 노숙자가 아닌 길거리에 나앉게 된 어린이들을 지칭하던 말이었어요. 현재는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도에 길거리에 나앉았던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어른, 아이를 모두 뜻하는 말이 됐지만요. 남한에 와서 오래 생활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어린애들이 무더기로 길거리에 나와 동냥하고 거리 음식을 주워 먹는 것도 충격인데, 심지어 그 아이들을 지칭하는 단어까지 있었다는 게 정말 보지 않고선 믿기지 않을 일이죠. 그런데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던 한 분이 남한에 와서 그 북한 실상을 알리고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하셨어요. 바로 전 국회의원 지성호 씨인데요. 그분과 만났던 경험이 생각나 그분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고 싶어요.

 

기자: 지성호 의원은 현재는 국민의힘 장애인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지성호 전 의원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이순희: 제가 현재 대구에 살고 있는데요. 그 분이 예전에 직접 대구에 와서 선거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탈북민이 국회의원이 된다니까 우리도 그분을 지지하자면서 그분을 찾아갔거든요. 그 분이 탈북민들과 간담회를 하겠다고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지성호 전 의원은많은 북한 사람들이 저같은 꽃제비 출신인 지성호가 남한에서 국회의원이 돼서 당당하게 의정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제가 국회의원이 된 것 자체가 북한 정권한테 승리한 것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 것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저도 탈북민이다 보니 반가워서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 분께 엄지를 내밀어 보이며 응원하기도 했어요.

 

기자: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의원이 남한의 국회의원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이순희: 그렇죠.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원과 남한 국회의원과 다른 점은 북한에서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인물 그러니까 보여주기식 인물이니 실제 국회 회의에서 말 한마디도 못 해요. 그러면서 김정은 총비서가 하는 말에 무조건적인 찬성표를 던지는 거죠. 회의 내내 찬성표, 그러니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증을 타이밍에 맞춰 들었다 놨다 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셈이에요. 반대로 남한에서 국회의원 활동을 하면 본인이 대표하는 지역구 주민들의 의견을 대표하고 당당히 입법 제안을 내놓곤 하죠. 회의와 투표를 통해서 법안을 상정하고 입법까지 시키고요. 또 지역구뿐 아니라 남한 국민들의 권리와 요구를 대변해서 국정 활동을 하는데요. 왜냐하면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나라의 일꾼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국민들을 위해 활동을 해야 하죠.

 

기자: 지성호 전 의원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이순희: 지성호 전 의원은 오래 5월까지 국회의원으로 일하다가 현재 장애인위원회 고문으로 일하고 계시잖아요. 그 이유가 있어요. 그분은 왼팔과 왼 다리가 없어서 현재 의수와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데요. 이분이 장애인이 된 데는 북한에서 기막히고 가슴 아픈 사연이 있기 때문이에요. 지성호 전 의원은 82년생으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대에 꽃제비 생활을 했어요. 당시에 회령시 학포 탄광에서 청진 화력 발전소로 수송하는 석탄이 있었거든요. 지성호 전 의원은 10대의 나이로 먹을 것과 장사 밑천이 없으니까 그 기차 위에 올라가 마대에 손으로 석탄을 담아 밖으로 던지고 그 석탄 마대를 다시 주워다가 장마당에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석탄을 마대에 담는데 경비원이 지성호 씨를 발견하고 쫓아왔대요. 마음이 급박해지니 기차 밖으로 얼른 내려오려 했는데 먹은 것도 없으니, 기운이 없어서 그만 기차에서 떨어지고 만 거죠. 기차에서 떨어진 지성호 씨는 그 달리는 기차 밑에 깔리고 말았는데요. 그 사고에서 왼손과 왼 다리를 잃고 만 거죠. 그렇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당시 그의 나이가 10대에 불과했어요. 이렇게 팔다리가 찢겨나간 지성호 씨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병원에 데려갔는데, 병원에선 마취제도 없이 팔다리를 끊어서 봉합하고 항생제 한 알도 안 주고 퇴원시켰답니다. 병원에도 항생제가 없었으니까요. 고난의 행군 때 참혹하게도 장애인이 된 거죠. 몸이 성한 사람도 살기 힘든 곳에서 팔다리가 없는 그가 어떻게 살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그 몸을 이끌고 목발을 짚으며 두만강을 건너 천신만고 고생 끝에 대한민국에 입국했다고 해요.

 

기자: 지성호 전 의원이 그 경험을 국제사회에 알린 덕분에 한층 더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상황과 실상을 알 수 있게 됐죠.

 

이순희: 맞아요. 목발을 짚고 나타난 지성호 전 의원이 미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북한의 참혹한 인권 상황과 처참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히 증언했어요. 한번은 미국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그 목발을 높이 쳐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대서특필해서 보도되기도 했죠. 또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 얘기도 나눴고요. 남한의 국회의원으로까지 선출돼서 탈북민들의 입장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도 했고요.

 

기자: 북한의 인권 상황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분이 탈북민을 대표한다는 것은 다른 많은 탈북민에게도 귀감이 됐을 것 같은데요. 이순희 씨는 어떠셨나요?

 

이순희: 불편한 몸으로도 국정에 성실히 참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저에게도 인상 깊었죠. 텔레비전을 통해 연설하는 모습이라든가 지방에 나가서 주민들을 만나는 장면을 많이 봤거든요. 일반 남한 국민들을 위해서도 일하지만, 탈북민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에요. 이로써 국회의원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고요. 지성호 의원의 임기는 올해 5월 끝났지만, 여전히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알아요.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또 같은 탈북민들을 챙겨주며 대표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되고 든든합니다. 더 많은 탈북민이 지성호 전 의원처럼 좋은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꽃제비 출신 국회의원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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