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남북 ‘조직생활’ 차이
2024.05.22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한 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이제는 완연한 봄이 돼서 봄비도 내리고 따뜻한 봄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한 80대 할아버님도 모임이 있다며 멋지게 차려입고 나가시더라고요. 제가 무슨 모임이냐 여쭈어봤더니 글쎄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라는 거예요.
기자: 80대 할아버님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라면 거의 70년 전 즈음 사귄 친구들과 만난다는 거네요? 그 모임이 유지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이순희: 초등학교 동창 중에서도 친한 사람들끼리 더 자주 모이고, 한 번씩 전체 학급생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나이가 나이신지라 그 중 돌아가신 분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전 직장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에도 나가세요. 그분이 다니는 모임을 보니까 북한에서 조직 생활하던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기자: 북한에서의 조직 생활과 남한의 모임 활동이 비슷하던가요?
이순희: 저는 북한에서의 조직 생활이 별로 즐겁지 않았어요. 특히 주 1회마다 진행하는 생활총화에서 자신이 일주일간 잘못한 행동과 발언을 자가비판, 다른 말로 호상 비판하는 것이 정말 지긋지긋했거든요. 비판 받는 게 참 고통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친한 친구에게 “네가 나를 비판해라. 그럼 나도 너를 비판할게” 이렇게 서로 품앗이 식으로 하기도 했어요.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7살 초등학생 때 소년단 단체부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각종 조직에 의무 가입해야 했기 때문에 벗어날 수도 없었고요. 하물며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친구가 죽어서 산에다 묻었는데 그 무덤 앞에 가서 절을 올리면서 “친구야, 넌 좋겠다. 생활총화에 안 가서”라고 한 말이에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거라서 완전히 달라요. 동창 모임에도 의무 참석이 아니라 본인이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되는 거예요. 축구를 좋아하면 축구 동호회, 자전거를 좋아하면 자전거 동호회 등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가입해도 되고요.
기자: 남한에는 정말 셀 수 없이 다양한 동호회가 존재하죠. 축구, 자전거 등 말씀하셨는데 또 어떤 동호회 혹은 조직이 있을까요?
이순희: 앞서 말한 것처럼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운동 동호회에 들고요.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문학 창작을 좋아하는 사람은 글짓기 동호회에 가입할 수 있어요. 그런 모임에 참여해서 대회에 나가 상금을 타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아는 고등학교 교사하시던 분은 퇴직 후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는 동호회에 가입했거든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전시회에 찍은 사진을 제출했는데요. 그 전시회에서 대상에 입상해 상금으로 무려 5백만 원이나 받았다며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분은 그 일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어서 남한뿐 아니라 전 세계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어요.
기자: 이순희 씨는 어떤 모임에 가입하셨나요?
이순희: 저는 우선 북한에서 온 분들로 조직된 봉사단체에 가입돼 있고요. 또 10년 전에 민주평통 대구 여성리더모임에 참여해서 그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남한에 와서 대학에 다녔거든요. 그래서 대학 동창들끼리 모여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또 재미있는 건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띠 모임을 구성했어요. 예를 들면 개띠 모임, 토끼띠 모임 이렇게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보통 최소한 한 개에서, 많게는 5~6개 모임에 가입돼 있을 거예요.
기자: 각자 모임마다 성격도 다를 것 같아요. 현재 참여하고 계신 모임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가요?
이순희: 우선 봉사단체에서는 주로 봉사활동을 하고요. 또 교회에서도 탈북민들을 위한 봉사팀이 따로 있는데 탈북민들의 생활에 애로사항은 없는지 들여다보고, 탈북민 가정을 방문해 가스레인지도 바꿔주고, 방충망도 교체해 주고, 또 계절마다 남한 곳곳의 명소를 관광시켜 주기도 해요. 민주평통 여성리더모임에서는 공식적인 행사 활동을 할 때도 있지만 또 틈틈이 여행을 같이 가기도 하는데요. 지난번에는 같이 라오스 여행도 다녀왔어요. 그리고 가장 궁금하셨을 직장 동료끼리 결성한 띠 모임에서는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하루 혹은 일주일 동안 힘들었던 건 없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지 수다를 떨어요. 같은 띠라는 건 보통 또래라는 거잖아요. 물론 12살, 24살씩 차이 나는 띠동갑도 있지만 보통 또래가 많거든요. 어느 날 직장 동료들이 단체로 일이 끝나고 화장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토끼띠 모임 사람들끼리 회식이 있다고 즐거워하면서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다들 너 나 할 것 없이 다른 띠에서도 회식을 주최하자며 서로 떠들었어요.
기자: 남한의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뭐였나요?
이순희: 동호회나 동창 모임 등에 가면 서로 허물없는 친구처럼 대해요. 대학 총장을 하시던 분,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 교사로 근무하신 분 혹은 한 가정의 아버지∙어머니인 사람들이 오는데요. 모임에 오면 다들 “철수야, 영희야” 혹은 “너” 이렇게 이름이나 친구 같은 호칭으로 불러요. 사회에서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나 자신이 모임에 가면 편하게 긴장을 놓게 되더라고요. 또 하루 노동이 끝나면 각자 모임을 통해 스트레스 푸는 창구가 되기도 하고요. 운동이나 글쓰기 동호회 같은 곳은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니 할 얘기가 많아요. 그래서 쉴 새 없이 떠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죠. 북한에서는 같은 조직원이어도 서로를 비판해야 했는데 남한에서는 서로 힘을 북돋아 주고 좋은 것들은 공유하고 함께 웃을 수 있어서 보람차고 즐겁죠.
기자: 말씀하신 것처럼 동창이나 또래 혹은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모임에 가면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일 것 같은데요. 특히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허물없는 친구를 사귀기 어렵잖아요.
이순희: 네, 그렇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모임을 통해 피곤도 풀고 힐링, 다시 말해 기운을 회복하는 남한의 모임문화가 참 좋아요. 북한 고향 분들도 경직되고 딱딱한 조직문화에서 벗어나서 행복과 웃음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을 결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모임문화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