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방랑자에서 캐나다 건설회사 사장으로 (1)
2023.09.26
20여년전 북한을 떠난 한 탈북민이 이제는 캐나다에서 여러 직원들을 거느린 건설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많은 어려움을 딛고 어였한 사장으로 성장한 한 탈북민의 캐나다 정착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남진혁씨가 북한에서 처음 공개처형을 목격했을 때는 갓 16살 이었습니다.
남진혁: 어랑 장마당에서 시범으로 30대 여자가 총살당했어요, 그냥 할머니 때려가지고, 낙지(마른 오징어) 뺏어가고 폭행했는데 시범에 걸려서.
십대의 진혁씨가 장마당에서 처음 목격한 공개처형은 참혹했습니다.
남진혁: 근데 몇 명인지 알아요? 열다섯명이 각 세발씩 한사람한테, 이 사람은 총살당할지 모르고 나왔나봐요. 딱 나왔는데 재판을 해가지고 총살한다니까 여자가 확 무너지더라구요. 따당 하는데 피보라 있잖아요. 사람 피 냄새 내가 그때 맡았어요.
아직 20대도 되기 전에 진혁씨가 이후 직접 목격하고 들은 죽음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청진 비행장에서 공개총살, 청진 기차역에서 옆에서 죽은 꽃제비들, 국경의 강가에 떠내려온 도강자들의 시체들,
하지만 진혁씨의 상황도 이렇게 죽음에 이른 이들과 거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학생 때 남달리 수학을 잘해 총명했던 진혁씨는 장차 크면 군대에, 특히 해군에 나가서 군사복무를 하고 싶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나서 자란 그에게 하얗고 파란 해군 제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진혁씨의 아버지가 갑자기 정치범 수용소에 잡혀가게 되었는데요. 왜정시대때에도 감자까지는 배불리 먹고 살았다고 한 말을 함께 살던 진혁씨의 이붓 어머니가 신고를 했기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의붓어머니가 들어온 이후로 집에 정이 들지 않아서 밖으로 떠돌아 다니며 살던 진혁씨에게는 이제 북한은 더 이상 아무 희망도 걸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죄는 곧 자식의 죄가 되는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진혁씨는 이제 더 이상 북한에서 자신이 사람답게 살수 있는 곳이 아니였습니다.
이미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며 2년동안 중국을 넘나들며 살던 진혁씨는 다시는 북한으로 가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중국에 남습니다.
무작정 찾아간 북중 국경지대에 있는 한 조선족 교회를 통해 흑룡강에 있는 일자리가 있는 흑룡강으로 가게 되었는데요.
그곳에 있는 한 농가에서 온갖 잡일을 하면서 성실하게 일했던 진혁씨는 곧 그곳 주인의 신망을 얻어 딸만 있던 그 집의 양아들이 됩니다.
양부모님들이 만들어준 중국 호구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중국서 정착한지 4년째 되던 진혁씨는 2006년도에 중국을 떠나게 됩니다.
신분증은 만들 수 있어도 만약에 누가 신고를 하면 진혁씨는 언제라도 북송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때문입니다.
한국으로 가는 브로커와 연결이 된 진혁씨는 몽골을 통해서 대한민국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한국에 도착해서 진혁씨는 같은 출신의 탈북여성을 만나 그렇게 꿈에 그리던 오붓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아기도 갖게 됩니다.
하지만 2010년에 있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은 그에게 대한민국에서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진혁: 내가 출근하는데 사람들이 “야, 너희쪽에서 쐈더라” 그래서 “내쪽이 어딘데?” 나는 대한민국 시민권을 받은 사람이거든요. 나는 출근하느라고 뉴스도 못봤어요. 그래가지고 뭔소린가 했더니만 북에서 연평도에다 포사격 했드라구요. 그 소리 하길래 야 내가 북한사람이었네…
결국 진혁씨는 아무리 해도 대한민국에서 같은 한국인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현실로 깨 닳았습니다. 진혁씨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을 굳히게 된 데는 또한 이제 곧 태어날 아기의 미래를 걱정한 것도 있었습니다.
주변 탈북민 가정들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탈북민 자녀라는 사실 때문에 또래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학부모들끼리도 배척받는 현실을 깊이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떠나게 되었죠. 내 자식에게만은 이 모욕을 주지 말자”
결국 진혁씨는 남한을 떠나서 이곳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되는데요.
진혁씨가 아무것도 모르는 캐나다에 도착해서 어떻게 삶을 개척해 나갔는지 다음시간에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에디터: 홍알벗,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