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2023.09.12
캐나다에 북한실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 한 캐나다 청년이 북한인권영화제를 열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이었는데요. 이번시간에는 캐나다에서 인권을 알리는 예술가인 길라드 코헨씨에 대해서 전해드립니다.
캐나다에서 일반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뉴스나 방송을 통해서인데요. 대개 북한의 핵개발이라든가 이상한 북한의 김부자 정권에 대한 것이 주로 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캐나다 사람인 길라드 코헨씨가 대학 졸업여행으로 한국을 택해 여행하는 과정에 방문한 개성은 코헨씨가 북한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 계기를 가져왔습니다.
당시는 2007년으로서 남북한이 함께 운영하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외국인이나 남한주민의 개성방문을 받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Gilad Cohen: One day, it was a trip to Kaesong in North Korea, it was an organized tour. So we were on a bus, some North Korean armed gourd on the bus with a tour guy and took us to a temple, school, and some waterfall. To be honest the whole trip totally boring for me.
그가 탄 개성공단에서 운영하는 버스에는 무장한 군인들과 여행가이드가 함께 타고 있었는데요. 개성시내의 고려시대유적이나 학교, 자연경치 등을 돌아보는 과정이었지만 그에게는 너무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행객들은 누구와는 말할 수 있고 누구와는 말할 수 없고, 어디에는 가면 되고 어디에는 가면 안된다는 안내사항을 받았고 특히 북한주민들과는 절대로 이야기 하면 안된다는 주의사항을 받았기때문입니다. 특히 아무 경계가 없는 것 같은 개성경치의 일품인 폭포를 방문했을 때에도 바로 건너 편 있는 나무를 지나쳐 가면 안된다는 주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개성방문을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지나지 않아 금강산을 방문했던 한 한국인 관광객이 북한군인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로 외국인들의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방문은 전면 금지되게 되고 그 후 캐나다로 돌아온 길라드 씨는 자신이 본 것과 경험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북한의 실체가 도데체 뭔지 알고 싶었던 그는 구글, 즉 인터넷 검색 웹사이트에 “What the hell is North Korea”라고 입력합니다. 의미는 “북한은 도데체 어떤 나라냐”는 뜻이었는데요.
인터넷 검색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알게 된 북한인권단체 "성통만사"와의 연계로 그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수백만명이 죽은 고난의 행군 등 북한의 진짜 현실에 대해서 깊이 다가가게 됩니다.
길라드 코헨씨는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특히 이번에 길라드 씨는 그의 가슴아픈 가족사를 소개했습니다.
1941년 로무니아에서 살던 길라드 코헨씨의 증조할아버지는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2차세계대전시기에 루마니아에 침입한 나치독일은 길라드씨의 증조할아버지를 무참하게 끌어내 죽였을 뿐 아니라 집안에 있던 각종 보석과 가장집물들을 훔쳐갔습니다. 가족과 재산을 다 잃은 당시 8살이었던 길라드씨의 할머니는고아원에 보내졌으며 유대인 사회에 연계가 끊긴채로 18살까지 살아야 했습니다.
길라드씨가 북한관련 영화들을 집에 가져와서 어머니 한테 보여주자 그의 어머니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이때 그는 영화와 예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캐나다에서 북한인권영화제를 최초로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처음으로 열린 북한인권영화제에는 3일동안 9개의 북한인권관련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제의 성공으로 길라드 씨는 다음해에도 북한인권영화제를 열었으며 이때 정식으로 “자유”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해마다 영화제를 열었습니다.
그가 만든 “자유”단체는 이후 인권영화제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박해를 피해 캐나다로 온 난민들의 이야기를 인터넷 라디오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고 계속해서 성장해 캐나다에서 영향력있는 국제인권단체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만든지 11년 만인 지난해 글라드씨는 단체 대표직을 내려놓기로 결심하는데요.
사진 예술가가 되어 자신만의 예술로 인권을 잃은 사람들을 보여주려는 그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글라드 씨는 현재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라는 제목의 사진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북한과 수단, 아프가니스탄 등 15개 각기 다른 나라에서 인권박해를 받는 사람들의 얼굴 사진에 작은 은박조각을 붙여 보여주는 것인데요.
은박조각은 그의 가족이 나치독일에 살해 당하고 빼앗겼던 보석을 의미하며 또한 이 열다섯명의 난민 하나하나가 이제 빛이 되어 그들이 받은 박해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길 바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