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군수 관련 공장에 러시아 밀가루 ‘통큰’ 배급
2024.11.21
러시아산 밀가루가 사법기관과 일부 기업소에 배급됐습니다. 소식통의 표현으로는 ‘통 큰’ 배급이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 알아봅니다. 일부 대북 제재 물품이 밀무역 형태로 북한에 유입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껍데기만 ‘밀수’인 형태인데요, 코로나 이후 달라진 북중 무역 상황도 짚어 보겠습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안창규 기자 : 안녕하세요.
- 러시아 밀가루, 일부 기업소에 한 달 배급 한번에 ‘통큰’ 배급
- 배급, 군수 공업 부분에 집중
- 북 주민들 속 더 이상 비밀 아닌 러시아 파병, 배급에 대한 반응은?
[진행자] 러시아가 북한에 지원한 밀가루가 일부 노동자, 사법 기관 등에 배급됐습니다. 배급량이 꽤 많네요? 우선 배급 내용을 정리해 볼까요?
김지은 기자 : 네, 10월 말 배급되는 ‘11월분’ 배급이 러시아산 밀가루로 이뤄졌습니다. 배급량은 정해진 대로 1인당 하루 540g이었지만 보통 보름치, 사정이 안 좋으면 열흘치 나오던 배급이 이번엔 한 달 분량이 한 번에 공급됐습니다.
현지 소식통은 ‘통 큰 배급’이었다고 표현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으로 보입니다. 배급된 밀가루는 겉에 러시아 글자가 인쇄되고 2kg 단위로 포장된 종이봉투째 이뤄졌고 배급의 대상은 상당히 한정적입니다.
보위부, 안전부, 검찰 등 사법 기관과 1급, 특급 기업소, 특수 단위를 대상으로 사법 기관은 본인만, 나머지 기업소는 노동자 본인은 물론 부양가족까지 모두 배급됐습니다.
이번 배급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군수공업 부분의 공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한국 국정원은 20일, 북한 러시아에 자주포, 방사포 등 장사정포까지 지원했다고 밝혔는데요, 이런 배경을 놓고 볼 때 북한이 지원하는 무기에 사용될 각종 포탄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1급, 특급 기업소라 하더라도 생산이 없을 때는 배급이 없거나 생산이 있어도 생산량에 따라 5~10일분만 배급하곤 했는데 한 달 분의 식량을 배급했다는 건 해당 기업소가 현재 만가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진행자]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한 포탄, 미사일에 이어 170mm 자주포, 240mm 방사포 등 장사정포까지 지원했으니 여기에 들어갈 포탄 역시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인 것 같습니다. 사실 밀가루가 배급으로 지원되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이지 않습니까?
김지은 기자 : 그렇습니다. 이번에 처음인데요. 보통 북한의 식량 배급은 입쌀로만 되는 경우보다 강냉이와 입쌀을 섞어 배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배급했다고 풍족하다고 말할 순 없을 겁니다.
노동자 1인당 하루 배급량이 원래 700g인데 여기서 군량미, 운송 시 유실되는 감모량을 제외하고 실제 배급하는 양이 540g입니다. 700g당 160g씩 국가가 떼어내는 셈입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최근 노동신문이 “올해 밀, 보리 생산을 계획보다 넘쳐 수행했다”고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러시아에서 밀가루를 받아 배급했다는 건 올해 밀, 보리 생산이 북한 당국이 장담한 만큼 농사가 잘되지 않았다, 수확량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진행자] 과거 한국에서 쌀을 지원했을 때 또는 유엔에서 지원을 받았을 때도 일부가 장마당으로 흘러가 식량 값을 내리고 직접 배급을 받지 않은 주민들도 혜택을 보지 않았습니까? 이번 밀가루 지원 역시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 과거에는 그랬지만 이번엔 좀 다릅니다. 밀가루가 공급됐어도 양곡 판매소의 밀가루 가격은 변동이 거의 없습니다.
양곡판매소의 밀가루 1kg당 가격은 8,000원(0.3달러/1달러 환율 2만4천) 선으로 배급 전후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같은 기간 입쌀이 7천 원대에 거래되는 데 비해 상당히 비싼 값이죠.
그러나 최근엔 입쌀보다 밀가루 가격이 더 높습니다. 쌀에 비해 밀가루는 돈이 되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밀가루로 과자나 빵 같은 것을 만들어 장마당에 팔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쌀보다는 밀가루가 돈이 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밀가루를 배급받은 가정들에서는 양곡 판매소에 가서 밀가루를 팔고 대신 입쌀과 바꿨다고 하는데요, 밀가루 배급이 식량 가격에 영향을 줄 지는 밀가루 배급이 계속될 지에 달린 것 같습니다.
제가 보도한 내용은 11월 배급에 대한 것인데 12월 배급은 보통 11월 말 이뤄집니다. 11월 배급으로만 그칠지 12월 배급까지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고, 계속 이어진다면 약간 변동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러시아의 밀가루 지원이 파병 직후 이뤄졌습니다. 이에 대한 대가성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주민들은 이번 지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김지은 기자 : 북한 당국이 러시아에 군대를 파병한 사실이 이제는 주민들 속에서 비밀이 아닐 정도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러시아산 밀가루가 일부에 배급되자 주민들도 러시아 파병에 대한 대가성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자식을 군대에 보낸 주민들은 러시아 전쟁 파병 군인들의 목숨과 바꾼 밀가루라는 인식이 높다고 합니다. 어느 누가 자기 자식 같은 군인들의 목숨을 대가로 받은 밀가루를 반기겠습니까.
러시아산 밀가루가 유입되었지만 식량 가격이 하락 효과도 별로 없었고 오히려 러시아 파병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높아진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민들은 북한이 새로운 농법을 실행한다면 올해 밀보리 생산을 적극 내민 결과, 식량 부족은 올해 더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향후 러시아산 밀가루 유입에 대한 효과나 기대감도 크지 않다는 게 현지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관련 기사>
- 북한 당국이 국가 차원에서 밀수하는 이유
- 날로 늘어나는 대북제재 회피 꼼수
- 북중 육로 무역은 건설 자재와 임가공 재료, 주민 생활품 거의 없어
[진행자] 다음 소식입니다. 북중 무역은 개인보다는 국가 차원의 수출, 수입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밀수로 위장한 국가 교역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국가 차원이면 밀수가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밀수 형태로 진행하는 이유가 뭡니까?
안창규 기자 : 외부의 시선, 즉 대북제재를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물자 확보가 시급한 북한은 막무가내로 나간다 쳐도 국제 무역이 중요한 중국은 북한과 똑같이 처신할 수 없습니다. 결국 중국과 북한 모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자유롭지 못한 만큼 밀무역 형태의 교역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최근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밀수 형태로 물품을 받을 때 세관 직원과 보위원들이 나와 지켜보고 세관 마당에서 하던 통관 절차대로 검사한다고 합니다. 즉 형식은 밀수이지만 실제는 국가가 승인한 무역임을 보여 줍니다.
중국의 경우, 중국 회사가 북한에 물품을 넘길 때 세관이 관할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방 당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회사가 강을 통해 북한으로 물품을 넘길 구간을 할당해 줬습니다. 중국이 탈북민의 대량 유입을 우려해 압록강 두만강 자기 측 강둑에 철조망을 친지 오랩니다. 이 철조망은 북한의 것보다 견고하고 질이 좋으며 매우 촘촘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의 허가 없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강을 통해 결코 자동차같이 크기가 크고 양이 적지 않은 물자를 수시로 북한에 보낼 수 없습니다. 즉 중국 측도 정부가 관여돼 있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자동차 등의 운송수단은 2017년 12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제2397호에 따른 금수 품목에 포함되는 물품입니다.
이 점은 북한보다는 중국이 더 우려하고 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를 피해 북한은 부족한 각종 물품을 확보할 수 있고 중국도 물품을 공짜로 주는 게 아닌 만큼 손해가 없으니, 물품을 대량으로 보내되 만약을 고려해 공식적 무역이 아니라 밀수라고 발뺌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주요 밀수 물품은 자동차, 크기가 만만치 않은데 강으로 어떻게 넘깁니까?
안창규 기자 : 뗏목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뗏목으로 승합차를 북으로 넘기는 장면을 직접 본, 소식통도 있습니다.
[진행자] 자동차에 대한 북한 내부에서 수요가 많습니까?
안창규 기자 : 그렇습니다. 최근 북한 소식통의 말을 들어보면 승용차, 트럭은 물론 건설 기계까지 각종 운송수단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수도 평양의 일부 주요 도로에서 출퇴근 시간에 교통 체증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현재 평양시 5만호 주택 건설과 각 지방의 농촌주택건설, 그리고 각 지방에 건설되는 소규모 공장 건설 등 곳곳에서 다양한 건설과 공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공개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각종 건설 공사 현장에 대형 트럭, 굴착기 등이 많이 보입니다. 물론 선전을 위해 일부러 기계 장비를 가져다 놓고 찍은 것이긴 하죠.
북한 거리를 다니는 승용차, 자동차, 버스 그리고 건설 장비를 보면 브랜드가 다양하지만 다 중국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북한 당국은 새것을 들여오지만 돈이 충분하지 못한 지방과 일반 기업들은 중고를 많이 들여온다고 합니다.
과거 북한에서 진행되는 공사나 건설을 보면 돌격대 등 순수 인력을 동원해 작업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각 지방 당국과 공장 간부들도 인해전술과 손과 등짐으로 일하는 수공업적인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걸 인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당국이 지방 발전을 중시하며 지방 건설을 적극 강조하는데 향후 지방 건설이 추진될수록 트럭을 비롯한 운송수단과 부품에 대한 수요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진행자] 밀수 형태를 빌린 중국 자동차 수입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요, 최근 북한이 러시아와 부쩍 가까워지며 북중 관계가 삐걱거린다는 분석도 많죠. 그러나 이런 소식을 보면 속사정은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북중 무역 규모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고 대신 무역의 양상은 좀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요, 최근 북중 무역의 특징은 뭘까요?
안창규 기자 : 이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 가는 경제 대국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한 중국의 대외무역에서 북한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정말 적은 수치에 불과할 겁니다. 이런 이유로 중국으로서는 북한과의 교역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북한과 거래하는 지역은 주로 동북3성입니다. 최근 중국 내수 경제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은 상황에서 바다가 없는 지린성, 헤이룽장성의 일부 회사들은 북한과의 거래가 생명줄일 수도 있습니다.
북러간 군사적 밀착이 아무리 아니꼽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습니다.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를 잃는 관계 단절이나 같으니까요. 최근 북한에서 경공업 제품 일부가 자체로 생산되고 있는데 겉보기는 괜찮지만 원재료는 물론 포장재까지 다 중국에서 들여온 것입니다. 생산 시설도 다 중국 것이고요.
한마디로 북한 경제가 중국에 깊숙이 예속돼 있는 겁니다. 중국에 있어도 북한과의 긴밀한 경제적 연계가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설비에 이어 원자재까지 계속 팔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 상황을 보면 북중 양국간 정치적 관계는 냉랭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적 관계는 여전히 치밀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20일, 올해 10월 북한과 중국의 무역이 9월보다 소폭 증가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것만 봐도 앞으로도 북중 간 무역은 이전 수준보다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지은 기자 : 화물차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북한으로 물건을 싣고 들어갔다가 다시 중국으로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최근 북중 무역의 경향을 보면, 단둥에서 신의주로 나가는 교량에 화물차가 끊이질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로를 통해 화물차로 나가는 물품들은 거의 다 건설 자재 또는 원자재입니다.
평양 건설, 각 지방의 공장 건설 그리고 수해 지역 건설까지 건설 자재의 수요가 많아서 미처 운반을 못 하고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현지 소식통은 전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 북한 당국은 속눈썹, 가발 등 원재료를 북한으로 들여가 완제품을 만들어 다시 중국으로 내오는 임가공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여기에 필요한 원재료 수송이 많습니다.
즉 주민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막혀있고 국가가 필요한 물건만 오가는 건데, 그만큼 주민들의 생활, 장마당 물가 이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올해 북한 장마당의 배추가 금만큼 비싼, ‘금추’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네요. 북중 무역이 아무리 흥해도 주민들에게는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이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집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감사합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 새로운 소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