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수해 복구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2024.09.05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폭우보다 무서운 농작물 도둑
-올해 수해로 곡물 생산량 줄어들 듯
-북한 내 화교의 삶
수십만 명의 돌격대원들까지 동원하며 수해 복구에 나선 북한, 하지만 주민들에게 지금 살림집 복구보다 급한 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이예진: 지난 7월 27일, 압록강 일대 큰물로 평안북도와 자강도, 양강도 등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죠. 한 달이 지난 지금, 30만 명의 돌격대원들이 동원돼 복구 작업 중이라고 합니다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문성휘 기자, 수해 복구 현장 상황, 어떤 것으로 파악하고 계십니까?
문성휘: 네. 북한의 언론이 수해 복구에 동원된 인원은 30만명이라고 전하고 있는데요.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는 수해 발생 열흘 만인 8월 6일, 평양에서 진출식을 가진 뒤 신의주로 이동해 복구 작업에 투입되었고요. 이중 신의주 수해 복구에 동원된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평안북도 당원돌격대 10만명 인원은 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까지 4천400여 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할 임무를 떠 안았습니다.
복구에 동원된 주민들과 돌격대원들이 잠을 자는 시간은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라고 합니다. 돌격대원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천막에서 잠을 자는데 마실 물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신의주는 공업지대여서 압록강은 물론 주변에 흐르는 골짜기의 물들도 오염이 심하다고 하는데요. 건설자들이 오염된 물을 마구 마시다 보니 수인성 질병으로 설사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돌격대원들의 식사는 강냉이 밥 한 공기에 양배추나 배추 건더기가 몇 점 떠있는 국이 전부라고 하는데요. 김정은이 제시한 10월 10일, 공사 일정을 맞추느라 돌격대원들과 주민들은 고된 노동과 살인적인 무더위, 부실한 식사와 온갖 질병에 노출된 채 짐승처럼 건설 현장에 떠밀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예진: 결국은 수해 복구도 자력갱생 없이는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특히 수해 현장에서는 수해민과 돌격대원들까지 많은 인원의 식량문제가 심각해 농작물 도둑이 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수해민 일부만 평양에 초대해 이밥에 고깃국을 먹일 게 아니라 수해 현장의 이런 기본적인 문제부터 국가가 해결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문성휘: 네. 북한 당국은 이번 수해로 집을 잃은 가정들에 한해 강냉이 40kg, 입쌀 20kg, 식용유 1kg씩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수해 지역의 식량난은 매우 심각하다고 합니다. 집이 있는 주민들도 모두 수해 복구에 동원되다 보니 먹을 거리를 구하기 위한 경제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하는데요. 집이 있는 주민들에게도 꼭 같이 식량을 공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여기다 수해 복구에 동원된 돌격대원들마저 제대로 먹지 못하다 나니 떼를 지어 농장 밭을 습격하고 있다는 겁니다. 수해를 입은 압록강 인근 평안북도의 기본 농작물은 강냉이입니다. 역시 수해를 입은 압록강 인근 자강도와 양강도의 기본 농작물은 감자와 강냉이인데요. 당장 끼니를 에울 식량이 없으니 주민들은 감자와 강냉이를 도둑질해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돌격대원들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밤이면 떼를 지어 농장 밭을 습격한다는 건데요. 북한에서 벼는 9월 말, 10월 초에 수확을 하지만 감자와 강냉이는 지금 당장 수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둑들이 너무도 기승을 부려 수해 지역에 위치한 농장들, 수해지역에서 뙈기밭 농사에 의지해 살던 주민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는 건데요. 북한 양강도의 경우 압록강을 끼고 있는 김형직군과 김정숙군이 큰 수해를 입었습니다. 양강도 당국은 현지 주민들과 함께 자체로 조직한 여맹돌격대, 당원돌격대로 수해 복구를 하고 있다는데요.
북한 당국은 수해 복구를 최우선 과제로 내밀고 있지만 정작 수해지역의 주민들은 수해 복구보다 더 급한 건 농작물을 안전하게 지키고 가을걷이를 무사히 끝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둑들로부터 농작물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그로 인해 가을걷이를 제대로 끝맺지 못한다면 내년도 감당할 수 없는 식량난을 겪게 된다는 건데요. 이와 관련해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먹을 것이 없는데 살림집은 지어서 무얼 하냐? 당장 굶어 죽을 사람에게 집이 왜 필요하냐?”고 말을 합니다.
이예진: 워낙 이맘때면 농작물 도둑이 많아져서 무장 군인이 경비를 서곤 했죠. 올핸 상황이 여러 모로 더 좋지 않은 모양새인데요. 곡창지대인 평안북도까지 수해를 입으면서 올해 곡물 생산량에도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 기자, 어떻게 보십니까?
문성휘: 이번 수해가 분명 북한의 알곡 생산량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폭우가 그치면서 물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 농작물이 죽거나 많이 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얘기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와 강냉이, 감자가 금방 열매를 맺는 시기에 물에 잠겨 성장 활동에 상당히 지장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폭우보다 더 무서운 건 농작물 도둑들인데요.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해마다 8월 중순이 되면 농장들에 무장 자위대를 조직했습니다. 농작물 도둑을 막기 위해서 인데요. 코로나 사태로 북한의 민심은 화폐개혁 못지않게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민들의 반발이 두려웠던 김정은은 2020년 3월부터 총기관리, 탄약보관관리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고 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총기와 총알이 주민들의 반항에 이용될 것을 두려워했다는 건데요.
보초 근무에 나가는 군인들에게도 총알을 주지 못할 만큼 민심이 악화되었으니 가을철 농민들을 무장시켜 자위대를 조직하는 일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여기다 수해 복구로 압록강 주변엔 수많은 돌격대원들까지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도둑떼로 변했으니 수해 복구 지역에 농작물이 무사히 남아날 리 없다는 것이 북한 내부 소식통들의 주장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알곡 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민들에게 식량공급을 제대로 못해주었고, 양곡판매소에서 장마당 가격으로 주민들에게 팔고 있는 식량마저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북한의 전반적인 농사 작황은 지난해 못지 않게 잘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지난 7월 초, 군사분계선에서 가까운 황해남도의 일부 지방에도 큰물 피해가 있었다고 하고요. 압록강 큰물 피해로 양강도와 자강도, 평안북도의 일부 지방도 피해를 보았으니 전반적인 알곡 생산량은 지난해만 못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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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순찰 중인 북한 보위부의 감청에 걸려 화교 남편과 통화한 신의주의 한 여성이 체포됐다는 소식입니다. 남편과의 통지문에서 장마당 물가를 얘기한 게 ‘국가기밀 누설죄’에 해당돼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고 하는데요. 손혜민 기자, 물건값 얘기한 게 왜 북한에선 국가기밀 누설죄까지 적용되는 걸까요?
손혜민: 네. 지난해 2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국가기밀보호법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국가기밀보호법을 제정한 배경에 대해 ‘비밀보호사업에서 제도와 질서를 세워 국가의 안전과 이익, 사회주의 건설의 성과적 전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정확히 무엇이 비밀조항으로 규정되었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손전화로 외부와 통화하는 주민은 사회주의 사회를 허물어뜨리려는 외부 세력과 내통하는 자’라며 강력한 처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쌀 가격이든 돼지고기 가격이든 장마당 물가를 알려주는 것은 북한 내부 상황을 유출하는 ‘간첩행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규정한 국가기밀에는 정치적, 군사적 동향 뿐 아니라 국가 경제와 장마당 동향을 사전에 예측하여 주민들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물가도 포함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북한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물가는 북한 당국의 통제에 따라 폭등하거나 반대로 해외 지원이 들어올 경우 하락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지난 8월 평안북도 장마당 밀가루 가격이 하락하였는데, 그 원인은 러시아에서 밀가루가 수해지원 물자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예진: 외부 세계에서 장마당 물가 등으로 북한 정세를 파악하고 있으니 국가기밀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네요. 이번 일로 화교와 사는 북한 국적의 배우자들이 많이 놀랐을 것 같습니다. 손 기자, 기사에서도 언급됐지만, 기본적으로 북한 당국이 화교와 사는 북한 국적의 가족에 대해 잠재적 간첩으로 취급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손혜민: 네. 그렇습니다. 먼저 화교의 배경부터 짚어 볼게요. 해방 전에도 북한에는 화교가 살았습니다. 해방 후 소련이 북한에 들어오자 많은 화교들이 떠나고 4만여 명이 남았는데요.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농민이었죠. 이런 가운데 1946년 중국에서 국공 내전이 본격화됩니다. 그러자 내전을 피해 압록강을 건너 중국 사람들이 평안북도와 자강도에 들어왔는데, 이들 중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또 중국 동북지역과 산동지역에서 중공 간부들도 서해 지역인 평안남도 남포와 황해남도 해주로 넘어왔거든요. 이들은 중공 내전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확보하는 한편, 북한 내 화교들과 협력 관계를 가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북한은 중공간부에게 북한에 거주하는 화교들을 관리하는데 협조를 요구합니다. 이리하여 1947년 ‘북조선 화교연합총회’가 조직됩니다.
화교연합총회는 화교학교를 자체 운영했는데, 교육비용은 화교들이 부담했고 교사는 내전을 피해 북한으로 건너온 중국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이후 1960년 북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당국이 화교들을 차별하자 1971년 중국 총리가 직접 나섭니다. 북중 관계를 회복하는 한편 북한에 거주한 화교들이 중국으로 귀국하도록 조치합니다. 수많은 화교들이 중국으로 귀국했으나 그대로 북한에 남은 화교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북한 주민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은 화교 가족 등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북한 전역에 장마당이 들어섭니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북중 국경을 오갈 수 있었던 화교들은 이때부터 북한의 장마당 경제를 선도합니다. 중국시장에서 생필품을 북한시장으로 대량 유통시키며 떼돈을 벌었죠. 돈이 많아진 화교들은 국가보위부 시야에 들어갑니다.
중국에는 한국인들이 많으므로 북중을 오가는 화교들이 한국인을 만날 수 있으니 잠재적 간첩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 거죠. 특히 화교와 함께 사는 북한 국적 아내와 그의 가족은 의심 대상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번에 신의주에서 화교의 아내가 중국에 체류한 화교 남편에게 물가를 알려주다 간첩으로 몰려 수감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예진: 김정은 정권 들어 탈북을 막기 위해 국경 통제가 더 심해졌죠. 중국과의 전화 단속도 그중 하나인데요. 밀수 등으로 먹고 사는 국경 지역 주민들에겐 날벼락 같은 일이었겠죠. 단순한 불법 행위도 이젠 반국가적 행위로 취급 받는 것 아닙니까?
손혜민: 네. 그렇습니다. 현재 국경지역에는 독일에서 수입된 감청 설비가 설치되어 있고, 이동식 감청 설비도 있습니다. CCTV도 곳곳에 설치되고 지뢰까지 매설하는 등 국경 통제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국경 지역 통제는 김정은 정권 들어 훨씬 더 강화되고 있는데요. 중국 손전화를 없애겠다는 겁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손전화가 국가기밀을 유출하는 수단이라는 건데, 솔직히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 손전화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중국과의 밀수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게 북한 현실이니, 국경경비대 군인은 물론 중국과 연결된 밀수상인들이 거의 대부분 중국산 손전화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가족들이 살기 어려우니 중국 손전화로 한국에 전화해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당국이 식량문제를 풀어준다면 누가 목숨을 내걸고 국경지역에서 통화하겠나요. 하지만 국경에서 중국산 손전화로 한국과 5분 이상 통화하면 국가보위부가 마을을 순찰하며 사용하는 이동식 감청설비에 탐지돼 간첩으로 몰리는 겁니다.
2015년경에는 북한이 독일에서 수입된 감청 설비와 이동식 감청 설비를 도입했습니다. 결국 국경지역 주민들의 생계 수단인 손전화 통화를 국가기밀유출죄로 처벌하고 있으니 생계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지난해 신도군에서는 한국에 정착한 딸에게 살기 힘드니 돈을 조금이라고 보내달라고 통화하다 이동식 감청설비에 걸려 수용소에 끌려간 주민도 있었습니다. 이 여성이 사용하던 중국 손전화에서 한국 번호가 나오자 그 여성은 간첩으로 몰린 건데, 이런 사례가 늘어날수록 김정은 체제를 불신하는 민심이 폭발하지 않을 지 우려됩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