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한 골목장 활성화 배경은?
2024.06.27
-장마당 통제로 골목장, 개인집 광고 등장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
-골목장 단속이 어려운 이유
메뚜기장으로 불리는 골목장이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북한 당국이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계속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개인집에서 광고판을 내걸고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장마당 통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이예진: 최근 북한 당국이 장마당을 통제하면서 자취를 감췄던 골목장이 다시 살아나는 모양입니다. 문성휘 기자, 먼저 이 골목장이라는 게 ‘메뚜기장’으로도 불리던데 장마당과는 어떻게 다른 겁니까?
문성휘: 북한의 골목장은 당국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적인 시장을 의미하는데 ‘메뚜기장’은 북한 주민들이 지은 이름입니다. 2000년대 들어 장마당에서 장세를 낼 형편이 못 되는 장사꾼들, 장마당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 장사꾼들이 길거리에 불법 시장을 형성하면서 골목장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북한 당국은 장마당을 허용하는 대신 보안원(경찰), 지금의 안전원이죠. 안전원들을 동원해 길거리에 형성된 불법적인 시장을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불법적인 시장에 붙은 이름이 ‘메뚜기장’이었습니다. 불법적인 시장을 없애기 위해 안전원들이 출동하면 장사를 하던 주민들이 순식간에 커다란 배낭에 물건들을 모두 집어넣고 도망을 쳤는데요. 물건을 팔던 장사꾼들이 갑자기 메뚜기처럼 껑충 뛰어 달아난다고 해서 ‘메뚜기장’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골목장을 없애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지 않고 무작정 단속만 하니 단속을 피해 여전히 골목장은 살아남았는데요. 김정은 집권 후 골목장에 대한 단속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집권 후 돈벌이를 위한 외국인 관광에 큰 관심을 돌리던 김정은에겐 골목장이 눈엣가시였는데요. 돌격대 간부들과 군지휘관들이 대원들에게 공급되는 식량을 빼돌려 골목장 장사꾼들에게 넘겨주는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김정은은 2015년 6월 17일, 골목장을 모조리 없앨 데 대한 지시를 당, 사법기관에 내렸는데요.
이 지시로 생겨난 것이 ‘6.17 상무’입니다. ‘6.17 상무’는 국가 양곡의 유통과정을 감시 통제하는 조직이었는데요. 식량이 빼돌려지는 기본 통로인 골목장을 없앨 임무도 ‘6.17 상무’에 주어졌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조직된 ‘6.17 상무’는 골목장을 없애기 위해 그야말로 혈안이 되었는데요. 이들의 집요한 단속으로 2019년경에는 대낮에 골목장을 볼 수 없었습니다. ‘6.17 상무’가 퇴근한 뒤인 늦은 저녁부터 밤에만 골목장이 운영되었는데요. 이후 코로나가 확산되자 주민들의 이동을 밤낮으로 통제하면서 사실상 골목장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그렇게나 단속했던 골목장이 다시 살아난 걸 보면 아무리 북한 당국이 무능력해도 주민들은 항상 살아갈 방도를 잘 찾아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방도 중 하나가 물건을 팔기 위해 개인이 만드는 광고가 아닐까 싶은데요. 손혜민 기자, 집 앞에 붙인다는 상품 광고, 효과가 있는 겁니까?
손혜민: 네. 효과가 있다기엔 좀 원시적인 방법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광고 개념은 상업 광고, 일반 상품 광고, 간접 광고 등 여러 가지 아닙니까. 상품과 서비스 등 관련 정보를 영상이나 간판으로 전달하는 기능에 비해 북한의 비공식 광고는 원시적인 방식인데요. 종이나 나무 판자에 상품명을 써서 살림집 대문에 붙여 놓거나 지붕 위에 글자를 적은 판자를 꽃아 놓는 형식입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각적 효과를 줬다고 볼 수 있죠.
이러한 방식은 해마다 모내기전투와 가을전투 등 북한 당국이 무보수 동원을 조직하는 동시에 장마당을 통제하면 골목장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골목장과 광고의 공통점을 본다면 둘 다 당국의 단속에 대응하려는 주민들의 비공식 행위라는 것이고, 다른 점이라면 공간 영역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골목장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나 역전 등 공공 영역이라는 특징을 보인다면 광고는 개인 살림집이라는 사적 공간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특징을 보이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장마당 통제에 대응하여 개인 상인들이 살림집 대문에 ‘쌀 판매’, ‘신발 판매’, ‘가전기구 판매’ 등 글자판 형식의 광고를 써 붙이면 쌀이나 신발을 당장 사야 하는 고객들이 지나가다가 그 광고를 보고 찾아옵니다. 이 경우 구매자의 시급함을 해결해준다는 측면에서 광고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지만, 부작용 요인도 작용합니다. 광고를 보고 개인 살림집으로 들어가면 상인 한 사람의 상품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장마당처럼 가격 흥정과 품질 비교가 제한되므로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죠.
반면 개인 상인, 즉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공식 장마당 운영이 통제되어 살림집에서 상품을 판매하면, 매일 시장관리소에 바쳐야 했던 세금을 내지 않고도 장사를 할 수 있어 유리합니다. 북한에서 회자되는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는 대책이 있다’는 이 말처럼 오늘의 북한 실상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예진: 이런 상황 속에서 사법당국이 골목장 단속에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라고 하는데요. 문 기자, 단속이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문성휘: 네. 북한이 코로나 사태 종식을 선언하고 말단 방역지휘부를 해체한 2023년 7월 이후 골목장은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골목장이 되살아난 이유로는 무엇보다 장마당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2022년, 전국에 양곡판매소를 설치하고 대신 장마당에서 일체 식량 판매를 금지시켰습니다. 이렇게 되자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주민들은 골목장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6.17 상무’가 해체된 것도 골목장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2020년 10월, 기존의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 단속을 맡았던 ‘6.17 상무’와 ‘109 상무’, ‘114 상무’를 하나로 통합해 ‘82연합지휘부’를 새로 내왔는데요. ‘6.17 상무’가 해체되자 골목장 단속이 늦춰졌습니다.
더욱이 북한은 농사철이 시작되자 장마당 운영을 단축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확산되고 있던 골목장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0시간인데요. 그런데 밭갈이가 시작되던 4월 중순부터 북한은 장마당 운영시간을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로 단축했습니다. 또 농촌지원이 시작된 5월 초부터는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로 하루 4시간만 장마당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장세는 하루 1,500원씩 받았는데요. 장마당 단축운영으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다 장세까지 높게 받으니 장마당 장사꾼들은 시간 제한이 없는 골목장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마당 장사꾼들이 모두 골목장에 앉으니 장마당에서 생필품을 해결하던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골목장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엔 북한의 모든 골목들이 장마당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건데요. 소식통들은 “사법기관들도 손을 못 쓸 만큼 골목장의 규모가 방대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설령 사법기관이 단속을 한다고 해도 단속을 하는 순간뿐이지, 단속을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골목장이 원상태로 돌아간다고 하는데요. 사법기관들 역시 골목장 단속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골목장 단속에 나선 사법기관 일꾼들은 장사꾼들의 뇌물로 생존합니다. 그들로선 장마당 한 곳에서 뇌물을 받는 것보다 골목장 여러 곳에서 뇌물을 받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거죠. 골목장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입이 더 늘어나니 골목장을 없앨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예진: 골목장은 역사가 긴 만큼이나 북한 당국이 통제하려고 안간힘을 써왔던 게 사실인데요. 손 기자, 북한 당국이 왜 이렇게 골목장을 없애려고만 하는 겁니까?
손혜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북한 당국이 골목장을 통제하는 이유는 모든 주민들을 농촌 지원과 사회 동원에 총동원하려는 명분도 있지만, 중요하게는 정부 세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국가가 허용한 ‘종합시장’ 공간에서 모든 상인들이 장사를 해야 정부가 매일 세금을 빠짐없이 거두니까요. 종합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대상으로 매일 징수하는 장세는 적지 않습니다. 장세를 전문 징수하는 시장관리원이 각 지역 시장마다 적게는 5명, 많게는 20명 이상인데요. 그만큼 지방예산으로 충당되는 장세 규모가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종합시장 개장이 공식적으로 중단되거나 지연되면 비공식 골목장이 확장되지 않습니까. 이 경우 지방정부는 골목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증가해도 장세를 징수하지 못합니다. 비공식 골목장에서 정부가 장세를 징수하는 자체가 모순이니까요. 그러니 사법당국은 정부가 징수해야 할 장세 원천이 골목장에서 빠진다고 생각하고 기를 쓰고 통제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골목장이 장세를 징수하지 못하는 영역은 아닙니다. 도시의 경우 종합시장 입구나 주변 일대 주택단지 골목마다 음식 장사나 과일 장사가 바닥에 앉아 장사하는 모습이 진풍경인데요. 이 골목은 매일 시장관리원이 돌면서 장세를 징수합니다. 단 종합시장이 공식 운영되는 시기에만 징수가 해당되므로, 종합시장이 통제되는 시간에는 어느 골목이든 통제 대상에 들어갑니다.
이예진: 일단 사법기관이 뇌물 때문에 크게 단속할 마음이 없고, 북한 당국의 별다른 지시가 없다면 골목장이 이대로 쭉 이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문 기자, 김매기가 끝나는 7월 중순 이후, 장마당 단축 운영이 끝나면 골목장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문성휘: 네. 7월 중순, 김매기가 끝나고 장마당을 정상 운영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방대해진 골목장을 한꺼번에 정리하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만큼 장사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골목장이 커지는 이유는 주민들이 지금의 장마당 규모에 만족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장사할 사람도 많고, 장마당에 의지하는 사람도 많은데 장마당 면적은 제한돼 있으니 골목장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요.
골목장을 없애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존권, 식의주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사실 북한은 농경지 면적으로 보나 인구 밀도로 보나 식량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하고도 남을 나라입니다. 식량 문제가 해결되면 생필품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원인은 명백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거죠. 권력을 유지하려면 주민들을 꼼짝 못하게 통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민들이 굶주려서 힘을 못써야 합니다. 또 식량을 꼭 움켜쥐고 있어야 주민들을 통제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골목장을 완전히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골목장을 적당히 유지시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예진: 골목장이 다시 활성화 된 이유가 북한 당국이 곡물 유통 및 판매를 독점하기 위해 장마당을 축소하면서 생긴 일 아닙니까? 손혜민 기자, 결국은 장마당이든 골목장이든 축소한다고 해도 북한 당국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손혜민: 지난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한 이후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복원하고 시장을 없애려는 다양한 시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30년 간 북한 정치와 경제, 사회 곳곳에 시장경제가 뿌리 깊이 내려 있어 장마당이든 골목장이든 비공식 광고든 시장 자체를 축소하거나 없애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설사 북한 당국이 배급을 준다고 해도 자본주의 시장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이제는 북한 주민들이 장사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노임 가치입니다. 국영공장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은 노동력에 대한 제대로 된 급여가 아니라는 점이죠. 즉 생활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시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된 것인데, 달리 평가하면 북한 사회의 계몽 수준이 상당히 진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회주의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세뇌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김정은 정부가 우려하는 점도 보이지 않는 시장의 힘이기에 장마당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미 늦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박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