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있어요] 북한에도 ‘빼빼로 데이’가 있나요?
2024.11.11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 살고 있는 20대 여자입니다. 오늘이 빼빼로 데이잖아요. 저는 남자친구한테 빼빼로를 직접 만들어서 선물했어요. 빼빼로 만드는 법을 인터넷에 검색하다 보니까, 북한의 빼빼로 사진도 보이더라고요. 북한에서도 그럼 빼빼로를 즐겨 먹는 건가요? 그리고 정말 빼빼로 데이도 기념하나요?”
한 달 전부터 동네 편의점과 여러 상점들에서 ‘빼빼로 데이’를 맞아 선물용 과자를 판매하는 걸 봤었는데, 오늘이었네요. 11월 11일이 한국에선 빼빼로 데이입니다.
막대 모양 과자에 초콜릿을 입힌 빼빼로라는 이름의 과자를 선물로 주고 받으며 사랑과 우정의 마음을 확인하는, 주로 10대, 20대 청춘남녀들이 즐기는 기념일입니다.
저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땐 이런 재미 있는 기념일들이 마냥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 데이, 남자가 그 답례로 사탕을 여자에게 주는 화이트 데이 등 거의 모든 기념일에 남들이 하는 건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초콜릿이나 사탕, 빼빼로까지 사서 주변에 선물하기도 했는데요. 이젠 판매대에 나와 있는 상품을 보고 나서야 기념일임을 인지하는 정도로 한국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빼빼로 데이가 언제부터 어떻게 생겨난 건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딱 그 시작점과 원인을 알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보통 이렇게 자생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은 문화라는 게 어떤 법제도처럼 공표일, 시행일, 만든 기관 이런 것들이 나와있는 게 아니니까요.
일단 전해지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긴 한데요. 우선 빼빼로 데이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즈음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1월 11일이 빼빼로 과자의 모양과 닮아 있어 이 날짜가 기념일로 지정되었다고 하고, 또 가장 많이 알려진 얘기로는 부산의 10대 초중반의 여학생들이 친구들끼리 일자 모양 과자처럼 '날씬해지자'라는 의미로 서로 격려하며 빼빼로를 주고받던 것이 유행처럼 번져 전국으로 알려지고, 현재의 빼빼로 데이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빼빼로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이런 기념일을 홍보의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 기념일을 부각시키고 상품 판매의 기회로 삼으면서 빼빼로 데이가 11월을 대표하는 하나의 기념일로 자리잡게 됐다는데요, 이제 여기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연인, 친구, 가족과 함께 작은 과자 하나로 마음을 나누는 날이 바로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입니다.
최근엔 기업에서 판매하는 과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만든 빼빼로 과자를 선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과자까지 만드는 건 아니고, 보통 긴 막대기 과자와 초콜릿을 사서 초콜릿만 녹여서 과자에 부어 만드는 정도인데, 그러고도 기성품이 아니라 수제로 만든 거라며 선물 받는 사람에게 꽤 생색을 낼 수 있죠. 북한에선 기성품이 수제품보다 비싸지만, 여기 한국에선 기성품이 넘쳐나서 오히려 수제품을 선호하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북한에도 빼빼로 과자가 있는 걸 보셨다고 했는데, 맞습니다. 북한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과자를 생산합니다. 물론 이름은 다릅니다. '꼬치과자'라고 부르는데요. 땅콩을 붙인 건 '락화생맛 꼬치과자', 초콜릿을 묻힌 건 '초콜릿맛 꼬치과자'라고 부르는데, 초콜릿맛이 더 인기가 좋습니다.
북한에서 한국처럼 11월 11일을 기념하는지도 궁금하실 텐데, 네. 기념하고 즐기는 청춘남녀가 꽤 있다고 합니다. 현재 북한의 10대, 20대 청년들은 한국 사회의 많은 것들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넘어 동경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북한도 예외가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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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는 한국 청년들처럼 빼빼로 과자를 사서 친구들, 특히 연인에게 선물하면서 마음을 고백하는 그런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물론 평양이나 대도시 중심의 일부 청년 문화라고 할 수 있죠.
북한은 사실 한국에서 생산하는 과자뿐 아니라 라면까지 포장지의 색깔이나 모양을 비슷하게 따라 만든 상품들이 꽤 많은데요. 물론 가장 비슷해야 할 맛이 많이 다르다는 부분을 빼면 겉포장지부터 상품의 모양새 이런 건 정말 많이 비슷합니다.
북한 당국은 청년들의 한국 문화 상품 소비를 철저히 금지하고 통제하면서도 국가 단위 공장들에서는 한국의 제품들을 거의 그대로 본뜬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거죠. 이런 걸 보면 한류는 어쩌면 청년층에서보다 북한 사회 전체가 동경하고 모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문화라는 게 억지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억지로 막는 건 더 쉽지 않다는 걸 북한도 모르지 않을 겁니다. 사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소소하게 맛있는 간식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런 기념일들은 북한같은 삭막한 사회에 가장 필요한 날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 이만 줄이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