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있어요] 북 고위급 탈북, 북한 체제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2024.08.12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이 방송이 북한에 계신 분들에게 전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먼저, 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라고 인사말씀부터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최근 연이어 해외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이 여기 한국이나 제3국으로 탈출하고 있잖아요. 이런 연이은 고위급의 탈북이 북한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탈북민이 한국에 와서 놀라게 되는 순간은 사실 아주 많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무엇을 예상하고 왔든 그 이상의 발전과 다름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되니까요. 그 중에서도 정말 상상 이상의 상황에 당황스러우면서도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 또 있는데요. 바로 탈북민이 사회 곳곳에 많다는 사실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일명 '고난의 행군'과 더불어 확산된 탈북행이 20년 넘게 이어져 오면서 이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수는 4만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생활을 갓 시작한 탈북민들은 “아니, 나도 힘들게 사선을 넘었고, 대단한 결정을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먼저 그런 용감한 결정을 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진짜 다들 대단한데?” 하며 서로 놀라워 합니다.
일반적인 탈북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했지만 한국에 와서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하진 않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건 물론, 북한의 가족, 친지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자본주의를 먼저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 정보들을 전수하기도 하죠. 함경도나 량강도 등 탈북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한국에 와 있는 가족 중 한 명이 북한에 있는 여러 가족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정도입니다. 물론 오늘 질문에 나온 북한 외교관 출신이나 고위층들의 경우는 어쩌면 조금은 다릅니다.
일단 2023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196명이고, 이 중 10명이 고위층이라고 합니다. 쿠바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지난달 언론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리일규 전 참사도 한국에 입국한 건 지난해 11월이라고 합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단속과 통제가 강화되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한해 수천 명에 달하던 탈북민 수는 크게 급감했는데요. 한국 입국 탈북민 수는 전체적으로 줄었지만, 고위급 인사들의 망명은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고위급은 북한 사회 내에서의 그 역할만큼이나 한국 및 세계 언론에서도 크게 조명받고 있는데요. 어쩌면 고위급 한 명의 망명이 일반 주민 몇 천명의 탈북보다 더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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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을 떠받치고 있던 고위급 인사의 탈북은 북한 체제에 흠집을 낼 뿐 아니라 탈북 이유 역시 정치적인 경우가 많아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죠. 더구나 그들이 북한 정권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 역시 그 깊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고,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에겐 북한 사회에 대해 전할 만한 일명 '정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 살다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북한 주민의 삶을 이해할 정도의 내용인 거죠. 오히려 한국에 와서 알게 된 북한 관련 정보가 훨씬 많습니다. 8.15해방, 6.25전쟁, 김씨일가의 민낯 등 북한에서는 알 수 없었던 진짜 진실들은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됐거든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북한 사회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들 합니다. 1인 독재, 3대세습, 주민 감시, 통제, 몇 십년 째 이어지는 식량난, 그리고 철저한 개인우상화...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하냐고 말이죠. 사실 저 역시 북한에 살 땐 이해하려고 조차 안 했지만, 한국에 오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고위급이라 불리는 사람들, 북한에 살았더라면 절대 얼굴 볼 수도 없었던 저 머리좋고 유능한 사람들이 북한에선 북한체제 유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구나, 그렇게 그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겠구나... 하는 걸 말입니다.
한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제도와 체계일 겁니다. 하지만 그 제도와 체계를 만들어가는 건 결국 사람이겠죠. 쿠바대사관 리일규 전 참사는 인터뷰에서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언론 앞에 나선 이유는 자신처럼 생각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 여전히 그 체제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체제에 순응하고 더 나아가 그 체제를 유지시키는데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바꾸고 다른 선택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는데요.
그 누구보다 당에 충성했던 고위급 인사들의 탈북 행보가 계속 이어진다면 북한 체제에도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먼저 온 고위급 인사들의 활동이 현재 북한 체제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북한 체제의 변화로도 이어지게 될지 아직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