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있어요]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은 소감이 어떠신가요?
2024.07.15
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 살고 있는 50대 직장인입니다. 어제가 북한이탈주민의 날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사실 한국에 탈북민이 이렇게 많이 와 계신 줄 어제 뉴스보다가 알게 됐어요. 탈북민들을 위한 기념일이 제정된 건데, 이런 공식적인 기념일 제정을 탈북민들도 반가워하고 있는 걸까요?”
어제 7월 14일이 제 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이었습니다. 혹시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말이 좀 낯선분이 계실까요?
대한민국에는 '북한이탈주민법'이 있습니다. 이 법에서 '북한이탈주민'은 군사분계선 이북, 그러니까 북한에 주소나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6.25 전쟁 때 북한에 고향을 두고 남쪽으로 내려오신 분들,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잃은 '실향민' 분들과는 구분되는, 먹고 살기 위해, 억압과 통제를 피해, 또 누군가는 자유를 위해 북한을 탈출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여러분들이 '탈북민'으로 알고 계신 바로 그들이 이번 기념일의 주인공들, '북한이탈주민'인 겁니다.
19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거쳐 오면서 한국으로 내려온 북한 사람들은 계속 있었습니다. 간첩조로 남한에 파견됐다 전향한 김신조 씨, 비행기를 몰고 그대로 남쪽으로 내려온 이웅평 씨 등 물론 당시엔 군인이나 특수 계층에서의 탈북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남북의 체제 경쟁이 이어지던 시기다 보니 당시 그 분들은 '귀순자' 또는 '귀순용사'로 불리며 TV뉴스에도 등장했었고, 이들의 귀순은 사회적으로도 아주 크게 다뤘는데요. 그래서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한국 분들은 '귀순용사'들에 대해선 한 명, 한 명 그들의 이름이나 당시 상황들을 꽤 많이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연평균 10명 이내로 이뤄지던 탈북이 1994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생기는데요. 일명 '고난의 행군'으로 불렸던 북한에서의 심각한 식량난 시대,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까지 발생하게 되면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연속적인 북한 탈출이 이어지게 된 겁니다.
탈북민의 수가 급격하게 높아지자 1997년 한국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그러니까 북한이탈주민법을 제정하게 되고요. 법이 첫 시행된 날인 1997년 7월 14일을 기념해 같은 날을 2024년 북한이탈주민의 날,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게 된 겁니다.
현재 한국에는 3만 5천명 정도의 북한이탈주민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정부의 주요 부처에서 일하는 사람, 경제 분야에서 사업가로 멋지게 활약하는 사람, 또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비롯해 변호사, 의사, 법무사, 화가, 작가 등 다양한데요. 정말 그동안 탈북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 과정은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울컥한 감정이 듭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은 소감에 대해 질문주셨는데...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탈북의 역사와 이번 기념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북한이탈주민으로서의 자긍심도 느끼게 되고요. 무엇보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과정에서 정부의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지원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많은 분들이 느끼고 계실 텐데, 개인적으론 이 기회를 통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질문자 분이 한국에 이렇게 많은 탈북민들이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사실 대부분의 분들이 모르고 계시죠. 4만명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니... 정말 많은 탈북민들이 가족을 데려오고 또 친척, 친구를 데려오면서 어느새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큰 구성 조직이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현재 북한에 살고 계신 북한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 지원과 사회적 포용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이번 기념일 제정은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다가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오늘 이만 줄이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