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있어요] 북한 주민에게 김 씨 일가 초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조미영-탈북 방송인 xallsl@rfa.org
2024.06.03
[질문있어요] 북한 주민에게 김 씨 일가 초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김정은 초상화 등장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금수산지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에 참석해 기념 연설을 했다고 지난 22일 보도했다. 교실 벽에 김정은 초상화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와 나란히 걸려있다.
/ 연합뉴스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서울에 살고 있는 30대 남자입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까 북한에 김정은 초상화가 등장했다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사실 북한 관련 보도에 등장하는 그 큰 사진들은 신도 아니고, 볼 때마다 좀 불편하고 이상하던데, 실제 북한 주민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음악 up & down)

 

북한을 벗어나 외부 세계에서 자유롭고 넓은 시각으로 북한 사회를 바라보면 정말 기괴하다 느껴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말씀 여러 번 드렸었죠. 그리고 이런 생각은 저 뿐만 아니라 많은 탈북민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와, 우리 저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하고 말입니다.

 

살았던 사람도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니 민주주의 사회에서 태어나서 쭉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북한은 정말 이상하고 절대 이해 안 되는 사회인 것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북한 동포 분들 중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신 분들이 꽤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보셨던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가정집이나 회사 내부의 풍경을 한번 떠올려 보실래요? 뭐가 생각나시나요?

 

보통의 정상적인 나라에서 집은 가족이 쉬는 공간이고,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며 꿈을 키우는 공간이며, 직장은 아주 기본적으로는 로동력을 통해 이익과 보람을 얻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국가에선 각각의 공간들은 그 고유의 특성에 맞춰져 있죠. 그냥 쉽게 말해 집은 가족이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가족들만의 아늑한 공간이고, 직장에선 일을 잘할 수 있는 장비나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가정집의 경우 그래서 들어가는 입구부터 가족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어떤 집은 크게 뽑은 결혼식 사진을 정면에 걸어 두기도 하고, 또 어떤 집은 아이가 생기고 나선, 아이의 백일 사진, 돌 사진, 그리고 학교 졸업 사진과 가족 사진까지, 그렇게 가족들이 함께 기념할 만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 집에 걸어두고 있죠.

 

물론 가족 중 누군가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 등의 사진을 가져다가 자신의 방 안 곳곳에 걸어 두기도 합니다. 일종의 취미생활 중 하나죠. 그리고 그런 사진들은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자리로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달라져서 사진이 교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어나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늘 걸려 있었고, 그 위치는 늘 공간의 정 중앙이고, 집뿐 아니라 학교, 직장 할 것 없이 지붕이 덮여 있는 모든 건물의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늘 봐야 하고, 떼 내거나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는 자신의 목숨줄까지 내 놓을 수 있는, 바로 그런 사진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개인 우상화의 표본 김씨 일가 초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질문자 분이 북한 주민들에게 초상화가 어떤 의미인지 물어 보셨는데요. 아마 여전히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답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에 살고 있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죠. 북한에선 건물에 화재가 나면 사람보단 초상화부터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 초상화 하나 구하겠다고 화염 속에 뛰어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이미 한둘이 아니니까요.

 

북한이 정말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초상화에 관련된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을 '초상화'라고 높여 부르며 모든 인민들의 공간에 걸어두고 언제든 우러러 모시고 충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세뇌를 시키고 있죠. 한번쯤 북한 동포 여러분께서도 그냥 당연하게 말고, 왜 늘 아침에 눈 떠서 잠들기 전까지 저 사진을 봐야 하는지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정은의 초상화는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 처음 등장했는데요. 김정은에 대한 본격적인 우상화 사업의 일환으로 간부들을 중심으로 단계적인 배포가 시작되겠죠. 아마 북한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김정은 사진을 먼저 모실 수 있어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을 거고요. 또 누군가는 자신도 어서 김정은 초상화를 집에 모시고 싶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세뇌는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조정 당하게 되니까요. 북한의 말도 안 되는 우상화와 독재 체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 세뇌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아마 그때서야 북한도 진정 살기 편한 세상으로 가는 변화의 물꼬가 터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김정은의 사진 제작에 보급할 돈이면 배급이라도 며칠 분 더 보급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오늘 이만 줄일게요.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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