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에는 곡창지대가 없나요?
2024.05.27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전라도에 살고 있는 50대 주부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농촌이라 지금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그래도 가끔 뉴스에서 북한 관련 내용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고 보는데, 특히 농촌이나 식량 관련된 내용에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사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탈북민 분들이 거의 없어서 직접적으로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없거든요. 요즘도 북한에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는데요. 북한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곡창지대가 아예 없나요?”
(음악 up & down)
한반도는 반으로 딱 잘려 있죠. 남과 북으로 두 동강 나 있습니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이렇게 발전되고 잘 사는 대한민국은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마저도 북한보다 훨씬 많습니다.
특히 전라도 지역은 여기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꼽히는 곳입니다. 호남 평야, 나주 평야라고 부르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농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한반도에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에 오고 나서 얼마 안 돼 고속도로를 타고 지방을 내려가다, ‘이곳은 논과 밭이 다 조그마하게 잘려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해마다 농촌 동원을 다녔기에 모내기 때 끝이 안 보이는 논에서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감수하면서 모내기를 했었던 북한의 농촌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마주하는 경기도, 충청도 지역의 논과 밭은 작게, 작게 다 나뉘어 있었으니까요.
알고 보니 한국은 협동농장이 아니라 땅 자체도 개인 소유이다 보니 그렇게 나뉘어 있던 거더라고요. 하지만 충청도를 거쳐 전라도에 도착하는 순간, 제대로 한국 농촌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와, 여기가 정말 한반도의 곡창지대구나’ 바로 알 만큼 드넓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거든요.
이렇게 드넓은 평야와 북한보다 온화한 기후에서 한국은 벼농사의 수확량 또한 북한보다 훨씬 높습니다. 게다가 자유무역 경제 속에서 더 눅은 외국 쌀을 수입할 수도 있다 보니 정말 쌀이 넘쳐나고 종류도 많습니다. 물론 쌀을 비롯해서 농산물은 여전히 한국산이 질적으로 훨씬 더 높게 평가받긴 합니다.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나오는 쌀들은 명품쌀로 인정받는데요. 나주쌀, 함평나비쌀, 고흥쌀 등으로 밥을 지으면 그 실한 쌀알이며 찰기가 '역시 우리 쌀이야' 라는 말이 바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산량에 비해 쌀 소비량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벼농사를 안 지으려는 농민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고기나 빵 등 밥 말고도 먹을 것이 너무 많고, 또 무엇을 심어서 수익을 낼 건지는 철저히 개인들의 의지와 자유, 역량에 달려 있는 사회이다 보니, 보통은 수익성이 좋은 농산물들을 키우려는 분들이 많은 겁니다.
실례를 들면, 강냉이 하나를 심더라도 최근에 아주 높은 당도로, 일반 강냉이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리는 '초당옥수수' 라는 품종을 심는다든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귀리의 수요가 높다 싶으면 다음해엔 잘 팔리는 귀리를 심는다든지, 또 품종 개량된 딸기를 심어 해외로도 수출해서 수익을 올린다든지… 그렇게 농촌과 농민들의 삶도 변화에 맞게 적응하고 있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근간인 쌀 같은 기본적인 농산물 수량은 유지하면서도 농민들의 수익을 높일 수 있도록 국가가 여러 가지 지원 정책 제도를 펼치고 있다는 겁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벼농사를 하는 분들이 손해가 나지 않도록 과잉 생산된 쌀을 국가가 가을에 직접 사들입니다. 이렇게 사들인 쌀은 시장 상황에 따라 저렴하게 풀거나 학교 급식용, 재난 구호 등에 쓰입니다.
북한에도 곡창지대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평안도, 황해도 지역이죠. 그런데 여기서 나온 쌀들을 이 지역 사람들은 배불리 드시고 계실까요? 사실 저는 청진에서 살면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의 쌀을 자주 접하지 못했거든요. 곡창지대 사는 분들마저도 북한에선 자신들이 일년내내 고생한 노력의 대가를 국가에 바치고 이맘때쯤 아마 보릿고개를 보내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아마 함경도 량강도에 계시는 분들은 황해도, 평안도 쌀보단 이제 중국쌀에 훨씬 더 익숙해져 있죠.
여전히 북한에선 식량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당장 내일 먹을 거리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여기 한국 사람들에겐 아마 들으면서도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일 겁니다. 한국에선 쌀 소비가 점점 더 줄어들면서 쌀이 남아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의 문을 열고 외부의 식량 원조를 받아들인다면 북한 주민들이 배를 곯고 어린아이가 굶어 쓰러지는 일 같은 건 생기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배고픈 자식을 두고 자존심을 세우고 이념과 사상을 들먹이는 부모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는 그 존재의 의미를 이미 잃어버린 겁니다. 북한의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로 배고픔을 모르고 지내고 있는 북한의 권력층에게 주민들의 배고픔 호소는 제대로 가 닿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