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에서도 정월대보름을 쇠나요?

조미영-탈북 방송인 xallsl@rfa.org
2024.02.26
[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에서도 정월대보름을 쇠나요? 지난해 정월대보름 즐기는 북한 주민들.
/연합뉴스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충청도에 살고 있는 30대 여자입니다. 며칠 전이 정월대보름이었잖아요. 올해는 비구름에 가려 달이 안 보여서 아쉽긴 했는데, 보통은 정월대보름에 달 보면서 소원도 빌고, 오곡밥에 각종 나물도 먹고, 부럼도 깨잖아요. 북한에선 정월대보름을 어떻게 보내나요?”

 

(음악 up & down)

 

지난 토요일이 음력 1 15일로 정월대보름이었어요. 혹시 여러분이 사는 곳에도 비가 왔을까요? 서울에선 비구름에 가려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없었던 아쉬운 정월대보름이었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땐 워낙 거리나 사람들의 모습 등 많은 것들이 서구적으로 발전돼 있어서 전통적인 것들은 거의 남겨져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살아 보니, 문화재부터 음악과 놀이문화, 그리고 음식과 민속명절까지, 오히려 전통적인 우리 문화들이 북한보다 훨씬 더 잘 보존되어 이어져오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저는 오랫동안 내려져 온 정월대보름의 풍습을 여기 한국에 와서야 제대로 알게 됐는데요. 제가 북한에서 보냈던 것과는 비슷한 듯 좀 다르더라고요. 한국에선 정월대보름이 되면 오곡밥에 나물을 먹고 또 피부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호두를 깨서 먹거나 견과류를 먹기도 하고, 귀밝이술이라고 해서 덥히지 않은 찬 술을 마시는 풍습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달이 뜨는 정확한 시간을 확인한 다음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오늘 질문자 분은 북한에서 정월대보름을 어떻게 보내는지 질문해 주셨는데요. 북한에선 오히려 여기 한국보다도 더, 어떤 민속명절보다 정월대보름을 더 큰 명절로 쇠고 있습니다. 2024년 올해도 북한 달력엔 정월대보름이 빨간 날, 공휴일로 지정돼 있기도 하죠.

 

물론 정월대보름의 공휴일 지정엔 북한 특유의 의미가 들어 있긴 합니다. 2002년에 현지지도 길에 올랐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동행일꾼들에게 정월대보름의 유래를 설명하며, 인민들도 이날을 즐길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거죠. 그래서 북한 신문에선 '정월 대보름날에 비낀 숭고한 민족애'라며 민속명절 역시도 지도자의 치덕으로 선전하게 됐고, 이후 정월대보름은 지도자에게 감사하면서 즐겨야 하는 의미의 공휴일이 된 겁니다

 

하지만 사실 예전부터 달이 밝은 정월대보름은 북한 주민들에겐 특별한 날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밤이 긴 겨울 밤, 조명 하나 없는 북한의 캄캄한 밤을 특별히 환하게 해주는 날이었으니까요. 유독 둥글고 환하게 떠있는 달을 보면 왠지 이 날 만큼은 밤길이 여느 때보다 안전할 것 같고, 도둑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안심하게 되는, 그래서 마음에 평안이 깃드는 그런 밤이 바로 정월대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도 여기 한국이나 북한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에선 오히려 한 해의 첫 일출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 보단 정월대보름에 달을 보면서 소원 비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저희도 북한에 살 때 하늘에 뜬 큰 달을 보면서 먼저 집을 떠난 아버지가 무사히 잘 지내게 해달라고, 그리고 우리 가족 언젠가 모두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었는데, 정말 달이 소원을 들어준 건지 저희 가족은 이제 여기 한국에서 모두 만나, 함께 하는 일상을 살고 있네요

 

함경남도에서 온 친구의 얘길 들어보니 거기선 정월대보름이 되면 큰 보름달을 볼 수 있는 강가 다리로 몰려든 사람들로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그 사회를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을 향해 간절하게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빌었을 지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정월대보름 얘기를 하다 보니 음식문화도 조금씩은 다른 것 같은데요. 제가 살았던 함경북도 청진에선 명태 한 마리를 머리까지 통으로 쪄서 그대로 접시에 올려 한 사람이 한 마리씩 먹었더랬습니다. 그리고 꼭 명태 눈알까지 파먹어야 했죠. 귀밝이술 대신 명태 눈으로 눈이 밝아지길 기원한 겁니다.

 

아마 올해도 북한의 고향에서 보냈던 풍습대로 정월대보름을 즐기고, 또 달을 보며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한 탈북민들도 많을 겁니다. 올해 첫 보름달이 여기 와 있는 탈북민들의 소원을 꼭 들어주길 바라며 이만 줄일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인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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