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있어요] 남북의 추석 풍경 어떻게 다른가요?
2024.09.16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서울에 살고 있고, 부모님은 강원도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에 추석연휴를 맞아 부모님 얼굴을 뵙고, 오늘은 바로 공항으로 갑니다. 3박4일로 일본여행을 다녀오려고요. 예전엔 추석 당일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냈는데, 요즘엔 당일 차례를 지내지 않아 연휴를 좀더 즐길 수 있거든요. 한국의 추석 풍경은 이렇게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북한에선 요즘 추석을 어떻게 보내나요?”
북한동포 분들 역시 여기 한국의 추석 풍경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겁니다. 8.15 해방 후, 혹은 6.25 전쟁 이후 언제까지 남과 북이 비슷한 추석을 보냈는지, 저도 잘 알 순 없지만 남과 북에 다른 체제가 들어서는 그 시기부터 추석 풍경은 조금씩 계속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단 여기 한국은 1년 중 설과 추석을 가장 큰 민족대명절로 보내면서 고향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설과 추석엔 당일 하루가 아니라 앞뒤로 3일 연속으로 쉬는 연휴가 제공됩니다. 올해 추석은 17일 화요일이 추석 당일이다 보니 여느 때처럼 앞뒤로 하루씩 해서 기본 3일 연휴에 지난 주 토요일, 일요일 쉬는 주말까지 더해지면서 총 5일 정도의 연휴를 보내게 되죠.
북한에선 어떻게 보면 5일도 기차 연착이나 여행증명서 발급, 검문소 통과 등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어디 길 떠나기에 그리 충분한 날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여행증명서'라는 말 자체도 없으며 고속기차부터, 도와 시를 넘나드는 버스, 자가용차까지 교통편 걱정 없고, 어느 지역을 가든 일반인들의 통행을 막는 검문소 같은 건 존재조차 하지 않으니 끝에서 끝으로 이동해도 반나절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습니다.
여기서 탈북민들이 보고 깜짝 놀라는 추석 풍경이 만들어지죠. 고향을 찾아, 가족 친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수많은 사람들로 그 많고 넓은 고속도로들이 모두 차들로 가득 차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정체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북한에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장면,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을 보며 ‘대한민국에 차가 정말 많구나’ 하고 한번 놀라고, 또 보도에 등장해 ‘도로가 막혀 7시간, 8시간 걸리는 귀성길, 귀경길이 너무 힘들다’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8시간 운전에 저 정도로 힘들어 한다고?' 절대 공감 못할 이야기에 또 한번 놀라기도 합니다.
물론 이 외에도 남과 북의 추석 풍경은 달라진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질문자 분도 얘기하셨던 것처럼 여기 한국에서만도 세월이 흐르면서 추석을 보내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할아버지, 할머니에, 그 자녀들의 자녀들까지 모두 모여 대가족을 이뤄 함께 보내던 예전의 추석에서 지금은 오로지 직계가족 위주로 함께 하는 가정이 늘고 있고요. 또 종교의 자유가 있는 사회다 보니, 기독교 같은 종교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교리에 따라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집들도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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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여성들 입장에서 제일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몇날 며칠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해야 하는, 그래서 추석이 오는 것조차 두려웠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추석 음식이나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을 간편하게 사는 경우가 늘면서 예전에 비해 여성들의 수고가 훨씬 줄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녀들 입장에서 본다면, 오늘 질문자 분 얘기에서도 잠깐 나왔지만, 이제는 가족 친지가 모두 함께 보내야만 하는 민족대명절이 아니라 각자 휴식과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휴일로써의 기능이 조금은 커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호텔에서 푹 쉬는 호캉스를 즐기는 등 추석을 보내는 모습 또한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북한동포 분들은 '확실히 우리와는 추석 분위기가 많이 다르구나' 느끼셨을 텐데요. 오늘 질문자 분에게 북한의 추석 풍경도 좀 더 설명해 드리면 어떤 부분이 왜 다른지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나마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북한에서 민족대이동이 없는 건 앞서 말한 교통에 대한 부분도 크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선 대부분 태어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일명 '혁명의 수도'라 불리는 평양에선 서울처럼 누구나 와서 살면서 생기는 엄청난 인구 밀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대부분 평양에서 태어나야 평양에서 살 수 있기에 명절이라고 해서 지방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진풍경이 펼쳐지는 일 또한 없다는 거죠.
또 한 가지, 북한에선 아직까지 추석 명절에 조상께 예를 갖추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이는 먹고 살기 어려운 북한의 형편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하고 고단한 세상에서 제발 조상께서 집안 사람들 무탈하게 해주시고, 또 먹을거리 풍족해 질 수 있게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조상께 올리는 상을 차리는데, 가장 큰 정성을 들이는 날이 지금 북한의 추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풍경은 몇 십년 째 그대로 계속되고 있죠.
남과 북의 달라진 추석 풍경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길 바라고요. 북한동포 분들 올해 추석 무탈하고 풍성하게 보내시길 기원하며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