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나의 첫번째 ‘교통사고’
2024.10.21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 요즘 제가 참 안녕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어요.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지금은 병원을 오가며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해연 : 공교롭게도 저도 얼마 전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제가 할 말이 많아요…
박소연 : 그럼 오늘은 이 얘기해야겠네요. (웃음) 아니, 언제 어쩌다 사고가 났습니까?
이해연 : 얼마 되지 않았어요. 사고는 고속도로에서 났는데 다행히 차가 막혀서 천천히 가고 있었습니다. 한 40~50km? 보통 차가 막히면 차와 차 사이 정해진 간격을 지키지 않고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움직이게 돼요. 뒤차가 자꾸 가까이 따라와서 걱정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결국엔 제 차를 들이박았습니다. 다행히 속도가 빠른 상태가 아니라서 큰 부상은 없었습니다.
박소연 : 막혀서 정말 다행이네… 차 속도가 빠르지 않은 덕분에 살아있는 혜연 씨를 보는 것 같습니다. (웃음) 그런데 우리 북한의 청취자분들이 40~50km라고 하면 혹시 휘발유 키로 수를 말하는 건지 착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연 씨가 말하는 속도는 차가 시간당 달리는 속도를 말합니다. 북한 기준으로 도시를 달리는 자동차 시속은 보통 30km 정도일 것 같고 시골은 도로가 나빠 10~20km 정도일 겁니다. 고속도로는 보통 100km 이상이니 사고가 나면 정말 크게 나는데 차가 천천히 가고 있어서 다행이었네요.
이해연 : 맞습니다. 북한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속도를 못 내요. 그래서 차 속도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보통은 운전수의 실수로 차가 전복되거나 도로 사정 때문에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납니다. 또 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충돌사고나 접촉 사고는 많이 나지 않습니다.
박소연 : 저도 해연 씨처럼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는데요, 남한 정착 10년 선후배일 뿐 아니라 교통사고 선후배가 됐습니다. 순서가 좀 바뀐 것만 빼고요.(웃음) 저는 운전 시작한 지 7년 차에 사고가 났습니다. 지금까지 사고가 나고 운전한 비결은 절대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한의 고속도로는 최고 속도와 최소 속도가 정해져 있는데요, 보통 최고 속도가 120km, 최저 속도가 80km일 경우가 많은데 저는 보통 80km로 달립니다. 그리고 끼어든다고 하는 차에 양보하고 최대한 조심하죠. 이번 사고는 밤에 고속도를 달리다가 다른 도로로 진입하려고 속도를 낮춘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쏠렸는데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충격이었어요.
이해연 : 충격이 그 정도로 심했으면 혹시 에어백이 터지지 않았나요? 에어백은 자동차가 충돌할 경우 운전석을 비롯해 조수석, 뒷좌석에서 터지지 않은 풍선 재질로 된 공기주머니가 터지면서 충격을 완화해 주는 보호 장치를 말합니다.
박소연 :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어요. 그 정도 충격은 아니었나 봐요. 사실 저는 에어백 같은 보호 장치는 비싼 차에만 장착돼 있는 줄 알았는데 후에 알고 보니 모든 자동차에 전부 장착돼 있더라고요. 그 정도까진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러모로 잘 찾아서 해결하는 해연 씨는 사고가 일어난 뒤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네요.
이해연 : 저는 다행히 어느 정도 대비한 상황에서 사고가 났고 사고 시 대처 방법들을 미리 숙지하고 있어서 크게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차를 멈춘 뒤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어요. 현장 상황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고 위험한 고속도로를 벗어나 갓길로 자리를 옮긴 뒤에 보험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한참 후에 양쪽 보험사들이 현장에 도착해 자동차에 부착된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과실 비율은 상대 쪽이 100, 저는 0으로 확정됐어요. 상대편에서 완전히 잘못했고 제 잘못은 없다는 얘깁니다.
박소연 : 설명이 필요한 말이 많이 나오네요. (웃음) 일단 자동차 과실 비율이란 사고 발생의 원인 및 손해 발생에 대해 사고 당사자와 피해자 사이에 누가, 얼마큼 잘 못 했나 그 비율을 평가한다는 얘깁니다. 이것에 따라서 사고 당사자들이 지불해야하는 비용이 달라지고요. 그리고 이 과실 비율을 계산할 때 필요한 블랙박스는 차 안에 설치돼 있는 감시카메라를 말하는데요. 감시카메라는 주행 중이나 주차 중에도 전후방 상황을 전부 영상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사고가 날 경우 감시카메라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해연 씨가 차 사고 직후 갓길로 이동했다고 했는데, 갓길은 고속도로에서 옆으로 빠져있는 안전한 길을 말합니다. 남한 고속도로는 차들이 100킬로가 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갓길 같은 안전지대가 필요해요. 저도 사고가 난 뒤에 갓길로 나와 가해자 차량을 확인했는데 하늘이 안 보이게 큰 대형 차량이었습니다. 건설장에 필요한 몰탈을 혼합하며 이동해 부어주는, 대형 혼합차였어요. 사고 현장에서 운전자분이 본인 보험사에 100% 본인 과실이라고 전화했더니 잠시 후 사고접수번호가 적힌 메시지가 제 손전화기로 전송되더라고요. 해연 씨는 사고 현장에 양측 보험사가 왔지만 저는 전화로 확인하고 처리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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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 : 보험사 분이 현장에 오지 않았다고요?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해마다 내는 자동차 보험료는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해서 내는 돈인데…
박소연 : 해연 씨 말도 일리가 있네요. 저는 굳이 보험사가 현장에 오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어요. (웃음)
이해연 :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과실 비율이 100대 0이라서 다행이지만 사고가 나면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상대방이 과실을 인정하면 괜찮지만 서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길 경우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박소연 : 그런데 저 같은 경우 상대측에서 사진이나 현장 영상을 요구하지 않았고 순순히 본인이 100% 잘못했다고 인정해서 수월하게 넘어가게 된 것이지만 저는 혜연 씨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고에 대처하지 못한 것 같아요. 상대 운전자가 60대가 넘으신 분이었는데 사고나 난 다음에 그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내려서 저에게 와서 문을 두드렸어요. 창문을 내렸더니 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부모님 생각이 나서 미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거기다 순순히 본인이 100% 잘못했다고 인정하길래 그대로 넘어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상대 측에서 병원비를 전부 부담하고 있습니다…
[클로징]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는 일반 도로 대비 치사율이 높습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니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해연 씨와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자동차 사고가 납니다. 운전기사의 잘못도 있지만 대부분 열악한 도로와 도로 안전시설의 부재로 발생하는데요, 사람들은 교통사고로 인명피해가 나도 ‘죽은 사람이 불쌍하다’ 혹은 ‘운이 없다’고 말합니다. 간혹 운전기사가 재력이 있거나 기업소가 힘이 있을 경우 유가족에게 어느 정도 보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런 경우도 많진 않습니다. 남한은 어떠냐고요?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