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내 꿈의 증인

서울-박소연 xallsl@rfa.org
2023.09.18
[우리는 10년 차이] 내 꿈의 증인 지난달 26일 본머스 경기장 밖에 손흥민 선수를 응원하는 배너가 보인다.
/REUTERS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그래도 선배님이 이번 휴가에서 좋은 경험을 두 번이나 하셨다고 하니 다행인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좋지 않은 것도 있어야 우리 방송이 재밌잖아요. 휴가 갔다 와서 너무 좋았다고만 말하면 방송이 10초 만에 끝나요. (웃음) 휴가 얘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갔어요. 다시 북한 얘기로 돌아와서 북한 TV를 보면 어죽을 써먹는 장면을 보여주며 인민들이 휴가를 즐긴다고 선전하고 있어요. 북한 주민들의 진짜 모습일까요?

 

이해연 : 일부 주민들은 자체 비용을 부담하면서 휴가를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 바로 앞에 강이 있어서 가족끼리 모여서 고기를 잡아서 어죽도 끓여 먹었어요. 강 주변에서 동생과 같이 마른 나무를 주어 불을 피우고남한에서 휴가는 며칠 동안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자고 오잖아요? 북한은 휴가라기보다는 놀러 간다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차를 타고 멀리 어디 가서 하룻밤 자고 오는 건 비용 문제로 부담스러워요. 대중교통도 좋지 않고요.

 

박소연 : 맞죠. 보통의 일상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는 어려워요. 노동자들도 1년에 14일 동안의 정기 휴가가 있지만 정작 휴가를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휴가 기간은 다 농촌 동원을 나가고 쉴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없는 거죠.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도둑이요휴가를 간다고 남한처럼 온 가족이 다 집을 비웠다가는 도둑들 때문에 집안에 남아나는 게 하나도 없을 거예요. 옆집에다 밤이 되면 집 대문 앞에 좀 앉아 있어 달라고 하고 나중에 국수라도 한 다발 사줘야 하죠.

 

이해연 : 그래요. 북한에서는 휴가를 갈 수 없는 이유가 많습니다. 비용도, 도둑도. 그렇지만 남한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건 80년대 후반, 그리고 휴가를 활발하게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가고 해외도 가는 문화는 90년대 후반에 가능했다고 하죠. 결국 경제가 문제죠.

 

박소연 : 오늘 벌어서 내일 사는 사람들이 며칠 동안 어떻게 휴가를 가겠어요. 가장 중요한 건 경제죠. 두 번째는 환경입니다. 휴가는 집을 떠나야 하잖아요. 그런데 교통수단도 힘들지만 지금 북한은 지역을 벗어나려면 통행증이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국경 지역은 군에서 군을 넘어가려 해도 통행증이 필요합니다.

 

이해연 : 맞아요. 남한은 통행증이 없이도 쉽게 다닐 수 있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박소연 : 북한 정부는 지역 간 이동을 막는 이유가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합니다. 국경을 통해 간첩이 들어올 수 있고, 나라를 음해하려는 나쁜 놈들을 모조리 잡는다는 구실로 단속초소를 세워놓고 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을 통제하고 단속하기 위해서죠. 국경 지역은 중국을 통해 남조선으로 가는 주민들을 잡기 위해 단속이 더 심해요. 결정적으로는 북한에서 경제가 성장해야 사람들이 휴가를 갈 여유가 생기지만 그것을 위해서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이죠. 그래야 유통이 되고 경제가 나아지죠.

 

이해연 : 먼 데서 찾을 것도 없어요. 저희가 살던 곳은 국경 지역으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생필품이 없으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국경 지역 단속으로 중국 물건이 들어오지 못해 주민들이 힘들죠. 수요자는 많고 물건이 없으면 결국은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주민들은 더 힘들게 살게 되고

 

박소연 : 그래요. 우리가 휴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딱 한 가지 바람에 도착하는 것 같아요. 하루빨리 북한 주민들도 여기 있는 우리처럼 여행 증명서 없이 자유롭게 다니고 휴가도 가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요. 저희뿐 아니라 남한에 와 있는 3 4,000여 명의 모든 탈북민의 같은 바람일 겁니다. 이런 말들이 항상 반복되지만 현재로서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풀지 못하는 숙제인 것 같아요. 이 숙제는 잠깐 미뤄두고 다른 얘기를 좀 해볼까요. 해연 씨, 이제 남한에 온 지 3-4년이 되는데 이제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어요?

 

이해연 : 제가 거의 가본 곳이 없어서 가보고 싶은 곳을 하나씩 검색해서 저장을 해놓고 있습니다. 그 중엔 다음엔 강원도 양양으로 가고 싶습니다. 가깝더라고요. 해수욕장도 있고 서핑도 할 수 있답니다.

 

박소연: 서핑이면 바다 위에서 타는 스키를 말하죠?

 

이해연 : 북한에서는 서핑을 티비로만 봤습니다. 이번에는 실제로 해보고 싶습니다. 상상만 했던 걸 한번 진짜 해보고 싶습니다. 선배님은요?

 

박소연 : 제가 축구를 좋아하는데이게 가능할진 모르겠어요. 북한 사람들도 손흥민 선수를 다 알고 있어요. 북한에 가서도 경기했잖아요. 그분이 뛰고 있는 팀이 영국 런던의 토트넘이라는 팀이에요. 역사가 100년이 넘는 축구단인데요, 저는 그 팀의 홈구장에 가서 경기를 직접 보고 싶어요. 영국은 세계적으로 축구를 잘하는 강팀들만 있는데, 남한의 손흥민 선수가 이번에 토트넘 주장이 됐어요.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이죠. 축구로 인해서 국뽕이라고 해야 하나? 북한에선 그렇게 애국심을 가지라고 했을 땐 하나도 안 가졌는데, 지금은 손흥민 선수만 나와도 같은 핏줄이란 생각에 뿌듯합니다. 그래서 꿈에 불과하지만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직관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요. 우리는 이루어질 수 있는 꿈만 꾸는 건 아니잖아요. 아직은 그냥 꿈이지만 뭐언젠가는? (웃음)

 

이해연너무 멋있는 꿈입니다!

 

박소연 : 사실 저만 꿈을 꾸는 건 아니죠. 해연 씨도 그렇게 생각해 보던 것, 꿈꾸던 것들은 하나씩 가보고 해보고

 

이해연 : 저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선배님이 보낸 방송 질문지를 보고 답변을 생각할 때 가끔 울컥합니다. 그때는 그냥 생각만 했던 건데, 이렇게 현실이 됐으니 나는 더 행복해야겠다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가끔 눈물도 납니다. (웃음)

 

박소연 : 저도 그래요. 그렇게 우리가 북한에서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소박한 꿈이 불씨가 된 것 같아요. 이게 그게 불꽃이 됐죠. 그래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들께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상상 항상 가슴속에 간직해주세요. 우리도 모르게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희망을 안고 오늘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해 주신 북한 주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해연 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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