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단속 피해 귀걸이 하는 법?
2024.09.09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 근데 오늘 기가 차게 예쁜데요?
이해연 : 쑥스럽게 왜 그러세요. (웃음) 오늘 제가 달라진 게... 목걸이 한 거밖에 없는데요.
박소연 : 제가 방송하면서 해연 씨를 몇 년 동안 지켜봤잖아요. 그런데 해연 씨는 장신구를 몸에 치장하고 다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이거이거 북한에서 온 것 맞습니까? (웃음)
이해연 : 당연하죠. 저도 반짝반짝 금을 정말 좋아하지만 관상용으로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 목걸이를 보니까 오늘은 금에 관한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어요. 금에 대한 쓰임이나 인식도 남북이 다르니까요.
이해연 : 네, 좋습니다. 주변에 저희 또래 친구들을 보면 몸에 주렁주렁 많이 달고 다니더라고요. 요새 유행이랍니다. (웃음) 북한에서는 금을 사치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남한에선 딱히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보세요?
박소연 : 맞아요. 그런 인식이 차이가 느껴집니다. 저도 남한 정착 12년 차지만 아직도 목걸이나 귀걸이, 팔찌 등을 사치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남한 분들한테 그런 얘기를 했다간 혼납니다. (웃음) 사치품이 아닌 단순히 액세서리로 나를 그냥 예쁘게 꾸며주는 물건인 거예요. 우리는 북한에 있을 때 금은 누렇다고만 생각했어요. 남한에는 하얀 금도 있고 심지어 ‘로즈’라고 약간 붉은 빛이 나는 금도 있습니다.
이해연 : 남한에도 금은 비쌉니다. 장신구는 금으로 모양을 만들기 때문에 더 비싸지만 남한 사람들은 여러 개를 사서 착용합니다. 남한에선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나가지 않듯이 목걸이나 귀걸이도 거의 매일 바꿔 달아요. 물론 이게 다 금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요. 남한의 지하 상점이나 백화점에 가면 액세서리만 파는 곳이 있는데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금도 있지만 모두 순금이 아니라 가격은 합리적으로, 은이나 금도 있지만 겉에만 살짝 금색으로 도금한 것도 있어서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여러 개를 구입해서 돌려가며 착용하는 거죠.
박소연 : 12년 전, 남한으로 입국하기 전 태국 이민국 감호소에 있을 때 이야긴데요. 탈북민들이 감호소에서 생활하면서 금목걸이를 사고팔았어요. 당시 목걸이를 판다고 한 사람이 한국 돈으로 8만 원 정도를 불렀어요. 달러로 하면 약 70달러 정도죠, 저는 속으로, 저게 금인지 아닌지 어떻게 믿고 사나 의아했는데, 자세히 보니 한쪽에 18k라고 씌어 있었어요. 그때는 18k가 뭔지도 몰랐죠. k는 금의 함량을 표시하는 화학 기호인데 순금이 24k, 18k는 75%가 금이라는 의미입니다. 북한에는 이런 게 없었습니다. 남한 입국 후 하나원 과정을 마치고 금방 사회에 나오잖아요. 저희 동기생들이 한 150명 됐는데, 선물 받은 금목걸이며 팔찌, 반지를 인터넷 공개 메시지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모두 다 순금... (웃음)
이해연 : 저는 순금은 약간 촌스럽다는 생각이... 너무 누렇잖습니까.
박소연 : 이미 중국에 살면서 금을 아는 사람들은 촌스러워도 24K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거예요. 처음에 저도 금을 그냥 사치품으로만 봤어요. 이왕이면 하얗게 반짝거리고 금목걸이 같으면 가운데 밥알같이 작고 세련된 장식품이 붙어있어야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재산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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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 : 저도 제3국을 거쳐 왔잖아요. 특히 중국 사람이 금을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대부분 중국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얇고 세련된 금목걸이나 금팔찌를 착용하지 않고 정말 두툼하고 뭉툭하게 만들어 무겁게 착용하고 다닙니다.
박소연 : 중국 사람들이 금을 착용하고 다니는 것은 과시용이라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돈이 많다는 것을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거죠. 탈북민 중에도 30~40대에 남한에 오신 분들은 금에 대한 환상이 남달라요. 주변에 아는 탈북민 여성분이 있는데 남한에 오자마자 소개팅을 남한 남자랑 했는데, 그분이 필요한 게 뭐냐고 물어보더래요. 여성분이 금목걸이, 반지 해주면 시집도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웃음) 그분들 지금 결혼해서 잘 삽니다. 어쨌든 여성분은 남자분이 선물해 준 목걸이를 들고 너무 좋아서 꼬박 밤을 새웠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는 금이라고는 구경도 못 했던 시골 출신이었답니다. (웃음)
이해연 : 북한에서 금덩이나 금으로 된 장신구를 소유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박소연 : 지금 남한에 온 탈북민 대부분이 북한에 있을 때 금을 직접 만져보거나 금으로 된 장신구를 못 차봤죠. 그리고 여기서 12년을 살다 보니, 남북이 확실히 다른 점이 남한은 20대엔 간단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50대 엄마들은 장신구가 늘어나는데, 금목걸이뿐 아니라 새하얀 진주 목걸이 등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장신구들을 많이 착용하고 다니더라고요. 북한은 완전 다르죠. 20대 아가씨들이 꼭 금은 아니어도 몸에 장신구를 많이 달고 다니고 30대부터는 중년으로 취급하니까 30대 중반부터 4~50대 엄마들은 거의 귀걸이나 목걸이를 하고 다니지 않아요.
이해연 : 맞습니다. 북한은 아주머니들보다는 젊은 여성들이 장신구를 많이 사고 서로 선물을 하죠. 특히 남자 친구들이 많이 사주는데 주로 도금된 액세서리를 선물합니다. 좀 여유가 되는 사람은 18K 액세서리를 선물로 많이 주고요. 그리고 선배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어머니들은 장신구 같은 걸 착용할 여유가 없습니다. 귀금속을 차고 나가서 장사하다가 강도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고...
박소연 : 사실 그걸 착용하고 나가면 사회적 인식이 좀 따가워요. 무슨 나이 40이 넘은 게 몸에다가 누런 걸 저렇게 달고 다니냐는 소리를 듣죠. 과거에도 20대 여성들은 직장에 나갈 때나 친구들과 함께 기념탑에 놀러 갈 때 금은 아니어도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고 가는 애들이 있었어요. 귀찡(작은 귀걸이)이라고 하는 걸 착용하면 지나다가 반사돼서 ‘반짝’하는 거예요. 그러면 뒤에서 단정한 애가 아니라고 흉을 봤어요. 해연 씨가 남한에 오기 전에 분위기는 어땠어요?
이해연 : 요즘은 귀찡을 착용했다고 단정한 애냐 아니냐를 구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박소연 : 우리 때는 왜 생살에 구멍을 뚫고 난리냐고 비난했거든요.
이해연 :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북한에서 귀에 구멍을 뚫고 왔어요.
박소연 : 북한에서 하고 왔다고요? 단정하지 못했네... (웃음)
이해연 : 그런 분위기가 아니고요! 저희 또래 친구들은 거의 다 뚫은 것 같아요. 찡도 있고, 귀걸이 모양도 예전 같지 않게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것 등 다양하게 많이 생겨서 착용하고 다닙니다.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는 게 단정하고 단정하지 못하고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박소연 : 요즘은 귀걸이나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걸 노동자 규찰대가 단속 안 해요.
이해연 : 당연히 하죠.
박소연 : 그럼 어떻게 해요? 머리로 가리고 다니는 거예요?
이해연 : 정답입니다! 역시 같은 북한 출신이시라 잘 아시네요. 작은 찡 같은 거는 하고 다녀도 괜찮아요. 근데 귀걸이가 길거나 화려한 걸 하고 다니면 단속하는 거죠. 비사회주의로 걸립니다. 그래서 머리가 긴 친구들은 가리고 가는데 가린다고 또 가려지나요? 가리면 더 이상하게 여기고 계속 따라와서 기어이 확인하고 적발하죠. 저도 규찰대에 단속당한 적이 있거든요. 결국, 불려 가서 반성문 쓰고 귀걸이까지 뺏기고 왔답니다.
박소연 : 북한은 정말 안 변하네요. 그래도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사람들이 하고 다닌다는 거죠. 우리 때는 기껏해야 한두 명이었어요. 시장에서 보면 귀에다 찡을 했는데, 머리 스타일도 커트 머리에, 바지는 약간 짧게 입고 다녔어요.
이해연 : 단속해도 사람들은 하고 다녀요. 그리고 반지 같은 경우는 결혼했거나 남자 친구가 있다는 징표로 끼고 다닙니다.
박소연 : 지금은 연인들끼리 반지도 해요?
이해연 : 네, 커플 반지를 합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 지금 커플 반지를 한다고요? 와! 저희 때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이해연 : 금액이 그렇게 비싼 건 아니라서 그래도 커플이라는 증표로 둘이 똑같이 맞추거든요. 거기에 하트나 이름을 새기는데, 그것도 한글이 아닌 영어로 새겨서 서로 끼고 다닙니다.
박소연 : 해연 씨 웃지 마세요. 지어 우리 때는 사귀는 사이에도 연애한다는 표현을 안 했어요. 그냥 쟤네 둘이 친하다는 정도였죠. 데이트하는 장소도 지정돼 있잖아요. 수원지나 유원지, 동상 아래가 전부였죠. 그런데 거기 가면 항상 클로버가 많았어요. 제가 연애할 때는요, 나무 의자에 앉아서 클로버를 뜯어다 줄기 사이를 벌려서 끼운 다음에 반지나 팔찌, 머리띠를 서로 만들어줬던 기억이 선하네요.
이해연 : 너무 낭만적인데 오글거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웃음)
박소연 : 웃지 말랬잖아요. (웃음) 그때는 커플끼리 반지를 맞춰 끼는 문화는 없었어요. 겨우 클로버 반지를 만들어주는 낭만이 있었을 뿐이죠.
이해연 :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젊은 층들도 금을 좋아합니다. 금은 색깔부터 다르고 오래 껴도 색이 변하지 않죠. 근데 도금한 것은 오래 끼다 보면 색이 검게 변하면서 티가 나거든요. 그래서 돈이 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금목걸이를 해줘요. 그걸 받은 사람은 괜히 뿌듯해서 자랑하려고 착용하고 다닙니다.
박소연 : 북한도 시기별로 추세가 있어요. 2000년대 중반에 중국에서 도금한 반지와 팔찌가 북한으로 많이 넘어왔어요. 근데 이게 물만 닿으면 녹이 슬어서 피부에 시커멓게 묻어요. 처음 살 때는 되게 반짝거려서 사치스러운데 예뻐요. 누런 게 누가 봐도 금반지같이 보이는데 비싸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북한의 빨랫비누가 양잿물이 좀 세요. 처음에 살 때 금처럼 누렇던 반지가 빨래 한 번 하면 금 새 하얀색이 되었어요.
북한에는 ‘황금덩이와 강낭떡(강냉이떡)’이라는 아동 영화가 있습니다. 한마을에 사는 지주와 머슴 군이 큰물을 피해 나무에 올라갔다가 황금덩이를 가진 지주는 굶어 죽지만, 강낭떡을 가진 머슴은 살아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북한 당국은 아동영화를 통해 금은 물욕에 가득 찬 자본주의 상징으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민들을 교양하지만, 실제로 ‘고난의 행군’ 시기 전국의 금을 당 자금 명목으로 빼앗아 간 장본인은 누군지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시죠? 금에 숨겨진 남은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