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이 게임을 금지한 진짜 이유
2024.09.02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게임을 가장 좋아하고 즐겨하는 나이는 주로 초·중·고 시기로 남북한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 나이 때가 되면 게임 때문에 엄마들한테 욕먹고, 들킬까 게임기를 꺼놓고 모르는척 하는 상황도 남북이 정말 비슷한 것 같아요. 크면서 좀 철이 들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이 생기면서 점차 게임을 멀리하게 되는 것 같고요.
박소연 :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상은 항상 바쁘잖아요. 일하고 공부하고… 저 같은 경우는 이제 가정까지 꾸려야 하니까 더하죠. 어떤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 멈추고 지금까지 못 해봤던 한 가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겐 그 한 가지가 게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연 : 바로 그런 마음이죠. 요즘은 남한의 젊은 세대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연인으로 만난다고 해요. 집에서 같이 게임도 하고, 심지어 부부끼리도 같이 하고요.
박소연 : 일리가 있어요. 부부든 연인이든 서로 취향이 같은 사람이 만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처음에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즐기는 취미라고 이해를 못 했는데, 지금 얘기하며 조금 생각이 바뀌네요.
이해연 : 진짜 우리가 살면서 맨날 일만 하며 살 순 없습니다.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좋아하는 것을 하며 여가생활을 하면 좋잖아요. 그게 게임이든, 좋아하는 운동이든, 자전거 타기이든 일상을 좀 더 재밌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도 게임하죠? 어떤 게임을 좋아하세요?
이해연 : 제가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라 혹시 게임에만 빠질까 봐 조절하면서 즐기고 있어요.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배웠던 게임이 '배틀그라운드'예요. 이 게임은 총을 쏘는 게임입니다. 대신 혼자 아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연결해 3대3이나 5대5로 팀을 묶어서 상대 팀과 싸우는 거예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남한에서 즐기는 다양한 게임들을 소개해 드릴까요? 여러가지가 있는데 비디오 게임은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 많이 접한 거예요. ‘닌텐도’라는 게임기는 양손에 도구를 쥐고 스위치를 누르면서 하는 게임이고요. 그중에 '마리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유명해요. 또 컴퓨터나 핸드폰 할 수 있는 게임이 있어요. ‘아케이드 게임’은 진행 과정이 수월해서 초보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간단하게 설해드리면 여러 가지 모양의 막대기 같은 게 밑으로 막 내려오면 그걸 아래 빈틈에 채워서 메꾸기도 하고, 틈새를 다 채우면 맞춰진 조각들이 깨지면서 그게 다 사라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이에요. 이 외에도 풍선 터뜨리기 게임, 스포츠 게임, 액션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 등 다양한 게임이 있습니다.
박소연 : 스포츠 게임과 액션 게임을 제일 알아듣기가 쉽네요. 스포츠 게임은 저도 압니다. 축구게임 같은 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입장해서 서로 팀을 나눠 경기인데요, 자기가 어떤 선수가 될지 정할 수 있어서 메시 같은 유명한 선수가 팀에 막 몇 명씩이죠. (웃음)
이해연 : 권투 게임 같은 경우에는 북한에서 제가 어린 시절에 많이 했던 게임입니다.
박소연 : 1990년대 초반에 북한에도 격투를 하는 액션 게임이 있었는데요, 다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죠. 북한은 국내에서 게임프로그램들을 자체로 만들어 낼 만한 기술력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남한은 해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서 발전시키고 그래서 게임 종류도 엄청나더라고요. 지금은 게임을 세계적으로 ‘E-스포츠’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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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 : 제가 알기로는 올림픽에도 종목으로 채택된다고 들었습니다.
박소연 : 정확하게 작년 항저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처음으로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어요.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아직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게임을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 축구대회가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것처럼 E-스포츠 대회도 별도의 대회로 준비하자는 입장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세계에서 최고 실력자가 한국 프로게이머라는 사실 알고 계세요?
이해연 : 페이커라는 선수가 있죠.
박소연 : 그 얘기 알아요? 중국에서 페이커 선수에게 자기 나라에 와서 E-스포츠 선수로 뛰면,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주겠다면서 백지수표를 제시했답니다. 백지수표라면 내가 원하는 만큼 0을 그려도 되는 거잖아요. 저는 한 20개쯤 그릴 수도 있겠는데… (웃음) 그런데 페이커 선수가 거절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정도로 이제는 게이머들도 유명한 운동선수 못지않다는 거죠.
이해연 : 그럼 게임에서도 북한은 예외죠. 남한에서는 게임을 하면서 상대방과 얘기하고 함께 게임도 하거든요. 모르는 사람이지만 함께 게임에 참여해 영어로 대화하면서 같이 게임을 합니다. 북한은 남한 사람들이 하는 똑같은 게임이 노트컴에 설치돼 있어도 나라 사람들과 함께 연결해 게임을 할 수 없잖아요.
박소연 : 북한은 비교가 안 되죠. 북한에서 게임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오락으로 하지만, 남한은 거의 모든 사람이 재미나 오락으로 하고 잘하면 직업이 될 수도 있고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어요. 프로게이머라고 해서 전문 E-스포츠 선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수가 예상외로 많아요. 북한은 많은 부분에서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져 있고 게임도 마찬가지죠.
이해연 : 중요한 건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이 돼야 게임을 접속해 여러 나라 사람들과 같이 소통도 하고 그럴 텐데 그것 자체를 할 수가 없으니 게임 분야가 발전할 수가 없는 거죠.
박소연 : 발전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북한 당국이 싫어할 수도 있어요.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재미있는 것에 빠지게 되어 있어요. 이게 인간의 기본 심리인데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면 머릿속에 있는 혁명 정신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죠. 그러잖아도 당의 사상체계를 교양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게임에 빠져 그런 시간을 원하지 않는다면 큰일인 거죠. 그걸 염려해서 애초부터 북한 내부에 게임 같은 것들을 활성화되는 걸 원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연 : 북한에 있을 때는 그렇게까지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사회주의 행동으로써 안 좋은 거니까 안 보여주는 건가 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남한에 오고 나서 생각해 보면 인터넷 접속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큰 변화를 불러오기 때문에 강하게 막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 그런데 최근 북한 손전화기 소개 영상을 봤더니 게임 앱이 있더라고요? 솔직히 많이 놀랐어요.
이해연 : 종류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간단한 게임 종류가 몇 가지는 있어요. 손전화로도 하지만, 노트컴으로도 하고 있어요. 물론 옛날처럼 게임기에 연결해서 하는 게임도 있지만요.
박소연 : 근데 북한 주민들이 일반 폴더 폰으로는 게임을 할 수 없잖아요. 타치폰이 있어야 하고 시간적 여유도 필요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에도 바쁜데 언제 앉아서 게임만 주구장창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해연 : 어른들은 돈을 벌어야지 게임 할 새가 없잖아요. 그러나 애들은 게임하고 놀다가 욕을 먹더라도 놀 때이고, 그나마 시간이 많으니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진정한 게임은 북한 국경을 넘어야만 즐길 수 있다… 이렇게 결론이 나네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진정한 게임이 실천 불가능하죠. 만일 다른 나라 사람들과 접촉하면 다 탈북할텐데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하게 하겠죠. 그런데 왜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즐기는 일들을 싫어할까요? 해연 씨는 북한에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이해연 : 의문을 정말 많이 가졌어요. 게임뿐 아니라 머리를 기르지 말라, 청바지를 입지 말라 그러는데 청바지를 안 입어도 사상이 변할 건 변하는데 이렇게까지 억지로 막는다고 될 일이냐며 계속 의문을 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예 처음부터 인민들의 그런 욕구에 대한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가 아녔을까…
박소연 :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비사회주의를 북한 당국의 뜻으로 풀이하면 사회주의를 반대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 모두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되는 건가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이렇게 다양한 게임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게임이 있고 E-스포츠라는 운동 종목으로까지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오늘 방송을 통해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해연 : 방송 말미 때마다 우리가 서로 같이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항상 남잖아요. 그래도 희망은 놓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함께 게임을 할 날이 분명 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박소연 : 그날이 반드시 오기를 바라면서 오늘 방송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 이현주, 웹편집 :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