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뱀 나오는 여름방학 동원에서 살아남는 법?
2024.08.19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북한에서는 해마다 7월, 8월을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고 그때는 병원에서 수술해도 행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행사가 열리는 기념탑과 동상 주변은 대리석으로 꾸려져 있어서 정말 더워요. 그렇다고 가자마자 바로 인사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학교별로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어요. 양산이 있어도 동상 앞에서는 아무리 더워도 쓰면 안 돼요. 그때 겪은 더위에 대한 곤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납니다.
박소연 : 북한의 여름 얘기를 하다 보면 저도 힘들었던 기억만 나요. 남한은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하기 위한 좋은 장소, 산이나 바다로 피서를 갑니다. 피서, 더위를 피한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또 여름 하면 방학을 빼놓을 수 없죠. 무엇보다 대학생인 해연 씨가 그 주인공 아니에요? 지금 방학을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해연 : 요즘은 방학이라 여유가 생겨 얼마 전에는 바다에 놀러 갔다 왔어요. 계곡은 아직 못 갔지만 꼭 시간을 내서 한번 가볼 계획입니다.
박소연 : 남한은 방학 기간이 길다고 북한보다 좀 길지 않아요?
이해연 :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방학은 1달 정도고요, 대학은 1달 반 정도입니다. 실제로 북한과 차이가 나는 것은 기간이 아니라 방학을 보내는 방법이죠.
박소연 : 맞습니다. 솔직히 방학은 놀기만 하는 기간이 아니잖아요. 남한의 학생들 특히 대학생들은 방학 동안에 공부하죠?
이해연 : 남한의 초중고 학생들은 방학 기간에 특별히 방학 숙제라는 게 없더라고요. 대신 자율적으로 공부합니다. 그러면 공부를 안 하고 놀기만 하지 않나 생각하실 텐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개인마다 시간표를 짜서 공부할 사람들은 공부하는 거죠. 예를 들면 학기 중에 모자라는 학점을 따기 위해서 계절 수업을 들을 수도 있고 영어 학원을 다기도 하고요. 다행히 저는 계절 수업은 없어서 방학을 제대로 즐기면서 쉬고 있습니다.
박소연 : 그렇지만 해연 씨는 방학에도 일을 하잖아요?
이해연 : 방학이라 수업이 없어서 좋긴 하지만 뭔가 일상이 허전한 느낌이 들어요. 학기 중에는 수업도 듣고 일도 했는데… 그런데 점점 공부를 안 하는 지금이 익숙해져서 걱정도 됩니다. (웃음)
박소연 : 저도 남과 북에서 각각 전문학교, 대학을 경험하고 저희 아들도 남한에서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잖아요. 방학 기간에 강제적인 학습 과제가 없는 남한이 좋긴 하지만 스스로 하는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은 지금 방학인데 쉴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제 일,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아침 9시에 가서 저녁 11시 와요. 대학 다니면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방학 기간 일하는 시간이 더 길더라고요.
이해연 : 진짜 공감합니다. 남한의 방학은 그냥 노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부할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본인이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경력을 쌓을 수도 있고, 공부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쌓는 시간이죠. 어찌 보면 사회에 좀 더 빨리 적응하는 기반이 될 수도 있어요. 남한은 방학이 되면 가족 여행도 가지만, 엄마들이 초중고 자녀 학생들을 위해서 영어 캠프, 수학·영어학원에 엄청 많이 보내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도 남한 학생들은 평상시보다 방학 때 더 힘들게 공부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남한이 이렇게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하는데 노력하지 않고 부지런함이 없이 가능했을까요? 주변에 보면 대학생 중에 노는 학생들이 거의 없고요. 방학 때 젊은 아르바이트 학생이 와서 고기 썰어주면 '혹시 몇 살이세요?' 물어보면 대학생이라고 하더라고요. '왜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세요?' 웃으면서 물어보면, 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에 베트남 여행을 가는데,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일한다는 거예요. 해연 씨도 어떻게 보면 20대 대학생이잖아요. 혹시 방학 기간에 배낭 하나 턱 매고 여행 가고 싶지 않아요?
이해연 : 항상 가고 싶죠. 나중에 여유가 생길 때 가도 늦지는 않을 것 같아서 지금은 그냥 일을 합니다. 부러운 마음은 있는데 꼭 지금이 아닌 나중에라도 갈 기회가 많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박소연 : 혹시 신혼여행? (웃음)
이해연 : 꼭 신혼여행이 아니더라도 남한에서는 결심만 하면 갈 수 있죠. (웃음) 우리가 지금까지 방학을 다양하게 즐기면서 알차게 보내는 남한 학생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북한은 또 다르잖아요. 북한은 방학이면 무조건 방학 숙제가 있습니다. 초중고는 물로 대학까지 다 방학 숙제가 있어서 방학에는 공부도 해야 하고, 짬짬이 놀기도 하면서 부모님 일손도 도와야 하고… 정말 남한과는 완전히 다른 방학을 보내는 것 같아요.
<관련 기사>
[우리는 10년 차이] 가장 시원한 남한의 ‘12번째’ 여름
박소연 : 지금도 그런가요? 저희 때는 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들도 방학 때면 무조건 농촌 동원을 갔어요.
이해연 : 지금도 똑같습니다. 여름방학에는 호프 동원과 들쭉 동원을 많이 갑니다.
박소연 : 호프는 맥주를 만들 때 들어가는 열매를 따서 바치는 동원을 말합니다. 들쭉은 북한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에 열리는 열매로 술이나 단묵(젤리)을 만듭니다. 북한이 이걸 많이 수술하죠. 그래서 항상 8월 방학 때면 고등중학교 학생들이 들쭉 동원을 가는데, 큰 화물차 적재함에 학생들을 가득 태우고 백두산 아래 무봉으로 갔어요.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무조건 하루치 할당량을 채워야 했어요. 매일 저녁 피곤한 아이들을 우등불 앞에 모아놓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비판해요. 그러면 아이들이 어떡하겠어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뱀이 무서워 비닐 박막을 다리에 둘둘 감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다니면서 채취했어요. 숙소도 형편없는 귀틀집에서 지냈어요. 어느 날에는 잠잘 때 담장을 넘어 뱀이 침실로 들어왔는데 잠자던 아이들이 갑자기 놀라서 울고불고 난리였어요. 한 번은 같은 학년 여학생이 뱀에 물려 죽기도 했고요. 고등학생들이라고 해봐야 겨우 16~17살이잖아요. 남한 같으면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그렇게 산으로 가서 지내는 거죠.
이해연 : 저도 들쭉 동원에 자주 갔어요. 일단 동원 기간에 먹을 식량은 자체로 마련해야 해요. 조미료는 개인적으로 가져갈 수 없으니까 돈을 모아서 단체로 샀어요. 식량을 마련하기 어려운 부모님들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못 보내겠다고 항의하기도 해요. 자녀들에게도 보수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가지 말라고 성내기도 해서 못 가는 학생들도 몇몇 있어요.
박소연 : 지금 엄마들이 대단하네요. 우리 땐 감히 그렇게 못했어요.
이해연 : 지금은 그런 부모님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한 학급에 2~3명 정도밖에 안 돼요. 대부분의 부모는 어떻게라도 마련해서 보내려고 하거든요. 못 보내면 방학이 끝나고 개학했을 때 자녀들이 대중 앞에서 창피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동원된 학생들 중에는 가끔 손이 빠른 애들이 있는데, 이런 애들은 하루 할당량을 다 채우고 더 많이 따서 현지에 들쭉을 사러 오는 어른들에게 돈을 받고 팔거나 빵으로 바꾸기도 했어요. 저도 그중에 한 명이었답니다. (웃음)
박소연 : 제가 동원되어 갔을 때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이었어요. 그때는 중국과 들쭉 밀수를 안 했어요. 해연 씨가 동원되어 갔을 때는 밀수가 활성화됐던 때일 겁니다. 우리 때는 일반인이 감히 동원 장소에 들어오지를 못했어요. 그리고 저희 때는 동원 기간 먹는 쌀은 학생이 자체로 부담하진 않았어요. 그리고 열흘에 1번씩 사탕 1kg씩을 간식으로 줬는데… 중요한 건 사탕 봉지를 교원들이 가위로 오려서 양을 조절했어요. 받아 든 간식 봉투가 다 터져 있었어요. (웃음)
이해연 : 저는 선배님처럼 동원에 대해 그렇게 나쁜 기억만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국가 일도 하면서 생활비도 벌었잖아요. (웃음) 그래서 저에게는 동원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박소연 : 들쭉을 팔아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뭘 했어요?
이해연 :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이렇게 벌었다고 자랑하고, 절반을 드리고 절반은 내가 좋아하는 옷과 신발을 샀습니다.
박소연 : 대단하십니다! 사실 북한 들쭉 동원 얘기만 해도 하루가 짧을 것 같아요.(웃음) 같은 방학인데도 남북한이 많이 다르다는 걸 방송하면서 이렇게 또 알게 되네요.
이해연 : 북한은 방학도 강제적이네요. 북한 학생들도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인 선택을 통해서 일을 하거나 공부하거나 하면 얼마 좋을까요. 사실 무엇을 선택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자율적인 선택은 인생을 살면서 어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흔들림 없이 선택할 기회를 줍니다. 북한도 방학 기간에 본인의 선택으로 잘 짜인 방학을 보내기를 바라지만 상황이 쉽진 않겠죠.
박소연 :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천천히 가능하다고 봐요. 저희 때는 동원을 가라면 고지식하게 순종했지만, 해연 씨 세대는 동원에 순종하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실현했잖아요. 북한 기준으로 봤을 때는 이기적인 행동이지만 사실 정당한 거예요.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것은 정당한 행위입니다.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합당한 잇속을 다양한 방법으로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이해연 : 저희가 이런 얘기를 안 해줘도 북한 주민들은 사회 안에서 알아서 자기 이익을 잘 챙기고 살아가더라고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지만, 그런 모습은 어찌 보면 생존 본능입니다. 그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소연 : 북한 주민들과 학생들이 건강하고 지혜롭게 여름방학을 보내기를 바라며 방송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함께 해주신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