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가장 시원한 남한의 ‘12번째’ 여름

서울-박소연 xallsl@rfa.org
2024.08.12
[우리는 10년 차이] 가장 시원한 남한의 ‘12번째’ 여름 삼성전자 비스포크AI 에어컨 [삼성전자 제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 요즘 정말 안녕하신가요? 제가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올해가 너무 덥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내려서 방송국까지 오는데도 더위에 지쳤습니다. 해연 씨,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이해연 : 저도 요즘 너무 더워요. 어쩔 수 없이 차를 갖고 왔습니다. 길에 또 돈을 뿌렸나요? (웃음)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정말 많고 그러면 더 더위에 지칩니다.

 

박소연 : 잘했습니다. 남한에서는 지하철을 탈 땐 에어컨을 너무 세게 트니까 북한말로 얇은 자켓트, 남한에서는 가디건이라고 하는데 그걸 갖고 다녀야 해요. 그런데 지하철에서 내려서 방송국까지 한 5분에서 10분 거리를 걷는 데도 그냥 땀이 줄줄 흐르는 겁니다. 문득지하철도 없는 북한에서 어떻게 40년을 살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연 : 북한에서는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버스에 사람을 아주 꾸겨 넣죠. 정말 지짐(부침개)처럼 납작하게 눌려서 가잖아요. 거기에다 북한 버스에는 에어컨은 고사하고 그 흔한 선풍기도 없어서 정말 찜통입니다.

 

박소연 : 제가 남한에 와서 가장 놀랐던 점이 남한에는 여러 방송국이 있잖아요. 그중에 KBS, SBS, MBC 등 주요 방송국들은 날씨 예보 시간에 꼭 북한 날씨도 알려줘요. 북한에서는 남조선 날씨를 알려주지 않거든요. 정착 초기에 TV에서 북한 날씨를 알려주는 걸 보면서 ', 저렇게 북한 날씨 알려주는 데 나라에서 안 잡아가나?'라고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살고 있습니다. 방송국에서 북한 날씨를 알려주니까 남한에 있어도 고향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평양, 원산, 평성, 함흥, 자강도, 혜산 등 주로 큰 도시들만 알려주는데 며칠 전에 양강도 낮 기온이 33도였답니다. 남한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이해연 :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제일 높았던 온도가 32도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덥다고 못 느꼈어요. 살았던 곳이 추운 지방이라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남한에서 32도 정도면 정말 사람을 거의 익혀 놓죠.

 

박소연 : 우리가 남과 북에서 다 살아보며 느끼는 건데, 북한은 대부분이 땅집(단독주택)이잖아요. 제가 북한에 살 때도 낮 기온이 29도에서 30도 정도였지만 앞뒤 창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은 불었거든요. 그러면서 더위를 견딜 수 있었죠. 그리고 북한은 저녁이 되면 일교차가 커서 시원하고요. 아침에 두부 사러 갈 때는 여름에도 뜨개옷을 걸치고 가서 두부를 사 오고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녔거든요. 거기에 또 북한은 포장도로가 많지 않고 주로 흙으로 된 도로이고 남한은 농촌집 앞까지도 아스팔트가 다 깔려있어서 더 더운 느낌입니다.

 

이해연 : 남한은 거기에 농촌보다 도시가 많고, 인구도 많아서 더 덥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물론 북한도 도시가 있지만 인구는 남한보다 훨씬 적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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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그렇죠. 남북의 토지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북한이 절반 정도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에 심리적인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왜냐하면, 남한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고 찬 음료수를 마시면서 더위를 식히는 게 최고의 방법인데 북한은 에어컨이 뭡니까? 선풍기도 없는 집들이 많았어요. 제가 탈북하기 전에는 저희 동네에서 잘 사는 집들이나 겨우 선풍기가 있는데 전기가 와야 돌아가죠. 제가 이런 얘길 하면, 남조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럼 어떻게 여름을 나셨어요?' 물어봐요. 사실 그럴 때마다 머리가 갑자기 3초 동안 멈춰요. (웃음) 그냥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며 산 것 같습니다.

 

이해연 : 그게 정답일 듯 싶습니다. 더위에 적응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 적응해 살았던 것이죠. 남한은 길거리를 가다가 너무 더우면 커피숍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 좀 쐬다가 나올 수도 있고, 편의점에 살짝 들어갔다 나와도 되고, 웬만한 실내에는 다 에어컨이 작동하기 때문에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방법이 많잖아요.

 

박소연 : 남한도 옛날에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을 때는 북한과 상황이 비슷했다고 하는데 그건 진짜 옛날 얘기고요. 며칠 전에 제가 서울 잠실에 갔다가 유리창으로 된 정류소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오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에어컨이 나옵니다. 또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답니다. 그런 곳에서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게 일이 없겠죠.

 

이해연 : 남한 사람들은 희한하게 더운 날인데도 마치 간첩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도 쓰고, 눈 밑에 뭘 붙이기도 합니다. 모두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것이랍니다. 어쨌든 여름 나는 방식이 남북이 많이 다릅니다.

 

박소연 : 해연 씨는 올해로 남한에서 몇 년 차 여름을 보내고 있어요?

 

이해연 : 올해로 네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어요.

 

박소연 : 뉴스를 보면 해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고 해요. 제는 올해로 남한에서 열두 번째 여름을 맞아요. 근데 열두 번째 여름이 가장 선선합니다. 2012년 여름 기온과 지금의 기온을 비교하면 지금이 더 높은데도 제 마음속으로 느끼는 체감 온도는 정착 초기가 제일 더웠어요.

 

이해연 : 생각해 보니 저도 그랬어요. 정착 초기에는 날씨에 적응을 못 해서 첫해가 제일 더웠고요. 점차 적응하면서 괜찮아지다가 올해 들어와서는 확실히 좀 더 괜찮습니다.

 

박소연 : 남한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그런 차이가 탈북민들에게는 있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다 힘들어요. 하나원을 퇴소하고 사회에 나오면 심리적으로 불안하잖아요. 사회도 모르고, 일자리도 정해지지 않고, 거기다 혼자라 외로운데 덥기까지 합니다. 저는 정착 초기에 누가 쓰다가 준 선풍기를 저녁에 잘 때 끌어안고 잤어요. 세워놓으면 바람이 안 오잖아요. (웃음) 더위도 더위지만 뭔가 안정이 안 되니까 더위가 심리적으로 10 20, 더 덥게 느껴지는 거예요. 정착 년도가 늘면서 집에 에어컨도 사놓고, 사회도 알아가면서 또 자가용이 생기면서 여름이 덜 덥습니다.

 

이해연 : 선배님이 차 얘기를 하니까 북한에서 차 타던 생각이 납니다. (웃음) 에어컨이 없어서 너무 덥잖아요. 차를 타면 오히려 더 찜통이어서 창문을 다 열어놓고, 그 안에는 겨우 작은 선풍기를 달고 다니잖아요.

 

박소연 : 옆에서 조수가 운전수를 부채질해 줘야 가요.

 

이해연 : 또 남한은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휴대용 선풍기가 있어서 더우면 그걸로 잠시 더위를 식히지만 북한 어르신들은 애들이 쓰다 버린 책 표지로 나무 그늘 밑에서 부채질하죠. 할머니가 생각이 나네요

 

박소연 : 북한의 여름 풍경은 땀에 흠뻑 젖은 여성들이 배낭을 메고 다니고, 또 땀이 마르면 흰 소금기가 밴 배낭을 메고 산과 언덕을 오르내리는 풍경이 전부였어요. 남한은 여름이면 뉴스에서 무더위를 대비하라고 강조하지만 인터넷을 보면 여름방학을 어떻게 지낼까,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까, 어디 바닷가에 갈까 이런 것들 글들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여름을 즐긴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어디 여름이 즐길만한 것이었나요?

 

이해연 : 북한에서 12~3시까지가 제일 더운 시간대인데요. 그 시간 동안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더워서 집에 들어가고 안 움직이려고 하죠. 남한은 오히려 너무 더우면 계곡이나 바다로 물놀이나 해수욕을 하러 떠나는 사람이 많고요. 이러니 여름을 즐긴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겠죠.

 

박소연 : 그런데도 남한 뉴스 보도를 보면 가끔 농촌의 어떤 어르신이 밭에서 일하다가 쓰러졌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떻게 남조선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시골에 가면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고 어르신들이 많아요. 그래서 아침마다 이장이 '낮에 야외에 나가서 일하지 말라'라고 방송하는데 어르신들이 이를 무시하고 나가서 밭에서 일하다가 쓰러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북한처럼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나갔다가 더위 먹어 쓰러지는 현상들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는 7~8월 그 뙤약볕에도 농장원들을 일하라고 밭으로 내몰죠.

 

이해연 : 무조건 밥만 먹으면 빨리 나가서 일하라고 그러잖아요. 북한에는 무더운 여름에 농장에서 밭일하다가 쓰러지시는 분들도 있지만, 여름철 행사장에서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정치행사 때 갑자기 더위 먹어 쓰러져도 남한처럼 119가 재빠르게 달려오는 것도 아니에요. 의사도 아닌 일반인들이 그냥 얼음을 사다가 머리에 올려놓는 것이 전부죠.

 

박소연 : 북한에는 정치 행사가 없는 달이 없어요. 7 8일은 추모행사, 7 27일은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날이잖아요. 탈북 전에 저는 여맹 조직에 속해있었어요. 해마다 7 27일이면 동 여맹원들이 줄을 서서 거리를 행진하면서 앞에서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라고 외치면, 뒤에서 '소멸하라 소멸하라'고 외치면서 따라갔어요. 앞줄에 섰던 언니가 갑자기 더위 먹고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적이 있어요. 그 언니를 부축해서 동사무소 앞 그늘에 앉아서 우리끼리 ', 미국 놈 죽이려다 네가 먼저 죽겠다'라고 얘기하며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북한의 여름이죠.  

 

[클로징] 8월은 남과 북 모두 방학 기간입니다. 한창 뛰어놀기도 바쁜 북한 소학교 아이들은 이맘때면 방학 숙제를 하느라 바쁘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한낮 뙤약볕에 쉬지도 못하고 농촌에 동원돼 죽도로 일합니다. 남한 학생들의 여름방학은 어떠냐고요? 남한에는 방학 숙제도, 강제 농촌 동원도 없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방학이 더 바쁘다는데남북한의 여름 방학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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