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남한에서 공부 잘 하는 법, 질문하세요!
2024.05.13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가 사이버 대학에 입학한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절반이 넘게 지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남한에서 처음 경험하는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합니다.
이해연 : 좋습니다. 사실 대학 입학 전에는 할 말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신기하고 새로운 것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어떤 것들이 신기했어요?
이해연 : 다녀보니까 남북한의 대학 운영 체계가 많이 다르고, 그래서 새롭고 재미있어요. 우선 제가 기대했던 OT와 MT가 있어요. OT는 오리엔테이션의 약자로, 대학 입학 초기에 대학 생활 전반을 소개하는 모임을 말합니다. MT는 멤버십 트레이닝의 약자로, 1박 2일 정도 어떤 장소를 잡아서 학우 및 선후배 간의 친목과 화합을 위한 수련회입니다. 학우들이 자기소개도 하고 궁금한 것들을 주고받으며 친해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남한에는 대학 생활의 꽃은 MT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예전에 해연 씨가 MT에 대한 기대감으로 많이 설렌다고 했는데 다녀오셨어요?
이해연 : 안타깝게도 못 갔어요. 솔직히 엄청 기대를 했지만 다 사연이 있습니다. (웃음) 타치폰에서 학우 전체들이 통보문(문자)을 주고받는 단체방이 있습니다. 거기서 엠티가기 전에 참석 여부를 물었는데요, 가만히 지켜보니까 신청하시는 분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또래 학우들과 즐겁게 놀다 오려고 생각했는데 저만 어려서 눈치가 보일 것 같은 거예요. 회장님도 거의 50대분이시라 결국 용기를 못 내고 안 갔습니다.
박소연 : 충분히 이해돼요. 해연 씨 또래가 아닌 조금 나이가 있는 분들과 함께 가는 게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이해연 : 저는 M.T를 통해 대학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배우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좀 있어요.
박소연 : 그만큼 학우들의 평균 연령대가 높다는 얘기네요. 그래서 해연 씨! MT는 단호하게 결근하시고, 공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이해연 : 열심히 하지만 그래도 어렵습니다. 다행히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이 사이버 대학이라서 직접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지 않고 집에서 시간 제약 없이 컴퓨터로 할 수도 있고, 어떤 장소에서든 핸드폰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박소연 : 뭐가 제일 어려워요?
이해연 : 일단 용어가 가장 어렵습니다. 제 전공은 세무회계 학과인데요. 남한은 세무회계에서 쓰는 용어가 따로 있어요. 북한에도 회계에 관한 용어가 있다는 걸 아실 거예요. 근데 거기에 ‘세무’가 들어갔기 때문에 되게 복잡합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아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 중 두 문장을 가지고 왔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사업자가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사업장 관할 세무서장이 조사하여 등록할 수 있다’. 선배님, 이해되셨어요?
박소연 : ‘하지 아니한'이란 표현은 했다는 거예요, 안 했다는 거예요?
이해연 : 남한 사람들도 일상 대화에서 ’하니 아니한‘이란 표현을 쓰진 않아요. 이게 법률 용어라서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법률적 표현이 등장하는데요. 그래도 이건 좀 양호한 편입니다. 두 번째 문장은 더 어려워요. '사업자등록 신청 전에 매입세액은 매출세액에서 공제하지 아니하나, 공급 시기가 속하는 과세 기간이 끝난 후 20일 이내에 등록 신청한 경우, 등록 신청일로부터 공급 시기가 속하는 과세 기간의 기산일까지 역산한 기간 이내의 매입 세액은 공제받을 수 있다’… (웃음)
박소연 : 정말 조선말이 맞아요?
이해연 : 조선말입니다. (웃음) 매입이랑 매출은 익히 들어서 아실 거예요. 매입이란 구입을 얘기하는 거고 매출은 팔았을 때를 말해요. 세액은 세금의 액수를 말합니다.
박소연 : 문장 첫 시작이 ‘사업자등록 신청 전’이라고 했잖아요. 남한에는 사업자등록이란 말이 너무 익숙해요. 일반 식당이나 가게에 가면 ‘사업자등록증’을 수령님 초상화처럼 정중하게 걸어 놨더라고요. 사업자 등록은 이 가게가 또는 사업이 공식적으로 등록된 업체라는 일종의 증명이죠?
이해연 : 북한에도 ‘사업자 등록소’라는 건 있지만 개인은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남한은 법인이든 개인이든 사업체를 열 수 있고 그런 경우 모두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필수로 해야 합니다. 사업자 등록을 함으로써 사업 활동을 통해 발생한 수익에 대한 세금이 계산될 수 있고 이것은 의무이기 때문에 등록 자체도 의무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사업을 할 때 세금을 내고, 환급, 공제받는 방법 등을 제가 배우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박소연 : 해연 씨 얘기를 들어봐도 세금 문제가 정말 복잡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배우는 희열이 훨씬 클 것 같아요.
이해연 : 그렇기도 하고 실제 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경제 뉴스를 듣고 이해할수 있고요, 내가 최근에 배운 내용이 나오면 반갑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도 그런 말 있잖아요. 배우는 게 남는 거다, 배워서 남 주냐! 그런데 사이버 대학의 경우 학우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못 하잖아요. 그냥 각자 인터넷으로 편한 장소에서 수강하면 모르는 부분을 물어볼 사람이 없어요. 그런 경우, 어떻게 해결하세요?
이해연 : 남한이 어떤 세상입니까? (웃음) 모르는 게 있으면 핸드폰에 있는 ‘네이버 어학사전’에 검색해서 모르는 용어들을 해결합니다. 어학사전을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어요.
박소연 : 인터넷을 많이 활용해서 이해한다는 거죠? 저도 12년 전에 사이버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어요. 동영상을 보면서 공부하는데 한 문장에 '클라이언트'란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 겁니다. 북한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서 클라우스라는 미국 배우 이름은 들어봤지만 클라이언트라는 단어는 처음이었어요.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고민하는 데, 교수님은 수업 중에 모르는 게 있으면 공개 채팅방에다가 물어보라고 하시는데… 저는 올렸다가 자존심만 상할 것 같아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봤어요. 별 게 아니었어요! ‘고객’을 가리키는 단어라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더라고요.
이해연 : 저는 그래서 사이버 대학이 좋아요. 일반 대학은 수업 도중에 모르는 게 있으면 강의 중간에 손을 들고 계속 물어볼 수가 없잖아요. 사이버대학 강의는 모르는 용어가 나올 경우, 듣고 있던 동영상 강의를 멈추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박소연 : 남한에 와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모르는 게 죄가 아니라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게 죄래요. 근데 사실 북한에서는 모르면 무식하다고 했거든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다른 애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워했어요. 모르면 모른다고 정정당당하게 물어보고 알고 넘어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괜히 움츠리면서 안 물어보는 분위기였어요. 남한에 온 다음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모르니까 이렇게 배우는 거지, 내가 모든 걸 다 알아야 되냐며 당당하게 물어봅니다.
박소연 : 정말 다른 점도 있어요. 우리 때는 정말 전체 아파트에 컴퓨터 쓰는 사람이 한 명 정도? 휴대전화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게 정말 서툴렀죠. 해연 씨는 그나마 좀 적응돼 왔잖아요?
이해연 :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나올 때는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북한에서부터 이미 컴퓨터를 다뤘기 때문에 남한에 와서도 모르는 것은 바로바로 컴퓨터로 찾아보는 게 익숙합니다.
박소연 : 그렇습니다. 진짜 석기 시대에서 갑자기 현대 사회로 나온 정도였죠. 그런데 해연 씨, 수업은 일주일에 얼마나 됩니까?
이해연 : 현재 제가 신청한 과목은 6과목으로 한 과목에 일주일에 세 개의 강의가 있어요. 총 18개 강의를 한 주 동안에 다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퀴즈를 냅니다. 말하지만 시험이죠. 강의 내용을 잘 습득했는지 중간에 검토하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요즘 다른 일반 대학은 중간고사 기간인데 저희 학교는 중간고사는 없고, 학기 중에 계속 퀴즈를 봅니다.
박소연 : 시험 보는 것도 학교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제가 다니던 사이버 대학은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었어요. 남한 대학은 북한과는 좀 달라요. 북한은 학기 중간에는 중간고사가 없어요. 학기 말과 학년말 시험이 있거든요. 그런데 남한은 진도가 절반 정도 나갔을 때 치르는 중간고사 시험이 있고 기말고사가 따로 있죠.
이해연 : 지금은 매주 긴장해서 강의를 잘 습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다음 주 강의를 듣고 이해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 뿌듯하지만 한 주가 너무 바쁘게 흘러갑니다.
박소연 : 생각보다 학습 분량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어때요?
이해연 : 일하면서 공부하다 보니 예전에는 집에서 TV 예능도 보고 드라마도 봤지만 지금은 그런 시간들이 없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예전에 유튜브를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유료 서비스에 가입했는데 지금은 해지했습니다. 볼 시간이 없어요. (웃음)
박소연 : 사이버 대학도 대학이기 때문에 공부가 쉽지 않죠…아까 혜연 씨가 동기생 중에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있다고 했는데 학우들 연령대는 어느 정도예요?
이해연 : 제가 가장 어리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일 나이 많으신 분은 60대입니다.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지만 단체 대화방에 학우들이 올리는 글을 보고 알게 되었어요. 수업이 어렵다 그러니까 60대분들도 하시는데… 이러면서 서로 격려하곤 하더라고요.
[클로징] 여러분은 혹시 ‘제2의 인생’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북한에서 제2의 인생이라고 하면 다시 태어난 이후의 새로운 삶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봐요. 남한에서는 보통 은퇴 이후의 삶을 ‘제2의 인생’이라고 합니다.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이니 은퇴 이후엔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는데 그 시기를 이렇게 부르는 거죠.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이 생각하는 ‘제2의 인생’은 50대부터이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새로운 직업’을 갖는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사이버 대학과 ‘제2의 인생’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그 속사정은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 총괄,제작:이현주
에디터:양성원
웹팀: 김상일